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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Apr 03. 2024

흔들리는 갈대가 참나무보다 강하데

강철 멘털로 가는 길은 나 자신의 이야기를  나 스스로 많이 듣는 것

유튜브에서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 소통>과 관련한 강의를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 남겨본다


만약 우리가 자아라는 영사기의 필터를 거쳐 스크린에 비친 나 자신을 '나' 라고 여겨왔다면, 그게 부정적인 감정만 불러일으킨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남들이 나를 지금껏 바라본 자신에 의해 판단되는 자신을 생각해 온 나.

그렇지 않은 원래의 나 자신은 과연 누구일까?


 존재론을 이야기한다면 결국 본질을 이야기한다는 것인데, 만약 그 성질이 강철로 태어나고 비닐로 태어나고 종이봉지로 태어났다면 그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보다 반드시 특수한 존재라고 설명할 수 있다. 시장에서 더 잘 쓰이고 철공소에서 더 잘 쓰인다는 차이. 하지만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더 복잡하다. 사람은 단지 특정 성질을 바탕으로 특정 상황과 대상에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 특별하다


다시 말해 사람에 대한 대상을 정의하는 것은 결국 어떤 (A)에 대한 (B)라는 반응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존재의 밑에는 그 존재만이 가진 어떤 '이유'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단서가 된다.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수밖에 없다. 무엇이 싫고 무엇이 좋은지..


우리가 정말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스크린에 비친 왜곡된 자아상을 원래 나 자신의 모습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왜곡된 이미지를 믿지 말고, 처음 상태로 다시 돌려 나 자신이 원래 순수한 의도를 갖고 진심으로 노력해 왔음을 나 자신 스스로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뭔가가 계속하고 싶지 않다면 그 이유를 내 내면에서 들어주는 것이다. 해결책을 찾으면서 타인의 기준이 아닌 본인의 기준에 맞춰 살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불안을 낮추면서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것이다. 


정신력을 키우고 강화하는 것은 첫째, 나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둘째  비뚤어진 내 자아상을 조정하고 셋째, 내 행동을 조정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계속해서 격려하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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