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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Aug 15. 2024

너는 나를 '습관적'으로 만나고 있니?

느슨한 인간 관계 속 뜻밖의 당황스런 순간들. 

더위 속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면서

인터넷에서 한동안 의미없이 이것 저것 서핑하면서 돌아다니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남긴 법정 스님의 글이 나를 다시 깨어나게 했다.

그 내용은 '습관적으로 절이나 교회를 다니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법정 스님의 말은 무언가 목적 없이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종교기관의 재정에는 보탬이 될 지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비록 여러가지 이유로 종교기관에 못다닌 지

오래되긴 했지만) 습관적으로 하는 여러가지 다른 행위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습관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왜 습관적인 행동들이 무서운 걸까. 다시 생각해 본다.  습관적이라는 것은

일종의 머리 대신 몸이 기억하는 일부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듯, 가까운

사람과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아이들을 챙기고 일터에 가고 퇴근을 하고 핸드폰을 보고, 몸을 씻고 잠자리

에 드는 것 처럼 머리를 충분히 쓰지 않고도 있는, 몸이 체득한 그대로의 행위를 말한다. 마치 

차가 자율주행을 하듯, 내 머리는 이미 자동생성모드가 저장되어있어서 고민하지 않고 같은 하루를 매일

반복하는 것이다. 딱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는 그런 일률적인 행동들의 모음. 스님의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일과에는 10년에서 20년 동안 매일 특별한 목표나 이유없이 이런 '습관'이 계속 포함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님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습관적 행동이 습관적이 되지 말아야 할 것에 스며들어가 있다는 것인데,

잘 생각해보면 이 습관적 행동들의 무서움을 깨달을 수 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일들이 마치 챗봇 상담사가

상담해주 듯 기계적으로 일어난 다면 일어날 일들 말이다. 나는 머리가 아닌 내 몸이 시킨 일들을 뒤늦게

감당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 친구관계를 생각해보자. 어떤 친구는 나에게 아주 좋은 존재도 아니지만 아주 나쁜 존재도 아니다.

대체로 그렇다. 딱히 화를 내거나 지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주 연락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래도 10년이상 지낸 친구는 습관적으로 만나고 안부를 묻고  채팅에서 잠깐 이야기 하다가 끊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관계이다. 한국인에게 밥 한번 먹자는 말이 일상인 것 처럼. 친구관계에도 특별히 좋고 나쁨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관계가 나쁠 수도 있는 걸까. 나는 양쪽의 측면이 다 있다고 본다. 너무 가깝거나 진지해서

피곤해지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너무 습관화 되서 생각이 필요한 그런 관계말이다. 늘 하던 말, 늘 하던 행동

새로울 것도 신기 할 것도 없는 그런 서로의 모습들. 

과거에 그러다가 이런 관계 속에서 마치 판이 튀듯이 누군가와 부딫히는 일이 종종 생겨나곤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내가 그들을 너무 습관적으로 대할 때 주로 생겨났다. 그 사람은 진지한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럴때 삐그덕 거리다가 긴장이 풀려버린 나사 처럼, 관계도 그렇게 헐거워지다가 점차 멀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그런 순간 조차도 내가 가는 그들을 잡아야 하는 이유를 딱히 대지 못했다는 것이, 어쩌면 습관적 인간관계의 제일 안타까운 점이 아닐까 싶다.

 


한국 사람들이 인간관계의 깊이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쓰는 독특한 척도를 하나 예로 들어본다. 장례식장, 결혼식장, 돌잔치 이런 행사에서 봉투에 얼마를 넣는가가 적절한 가에 대한 질문이다. 학교 졸업 후에도 만날 정도로 친한 친구인가? 아니면 직장동료나 같이 사업적인 것을 공유하는 사이인가? 얼굴만 아는 정도인가? 

인터넷에서는 돈의 액수와 인간관계의 척도 같은 것을 미리 정해줄 정도로 공식화 되어버린 것이 왠지 씁쓸하다. 혹시라도 내가 생각하는 액수와 그 사람이 생각하는 '그 액수'가 다른 것은 아닐까. 눈치 게임에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안 갈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그런 관계속에서, 우리는 아주 얇게라도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돈 봉투로 밖에 측정이 안된다는 것이 비극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 좋은 친구라면 우리가 과연 금액을 따질 것인가. 우리는 그런 친구를 갖고 있는가. 나는 늘 기계적으로 안부를 묻고 끝나는 그런 사람인가.

나역시도 지금까지 내가 해온 습관적인 행동들이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해봐야겠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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