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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Jul 01. 2024

당신의 운명론을 믿지 않아요

하얀 양 가운데 섞인 검은양. 그 거짓말.

과거 내 옆에는 운명론을 항상 이야기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한 것은 내 뜻이 아니었어.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랬어. 내가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뭘 할 수 있었겠니? 나는 그의 운명론에 관한 말을 들을 때마다, 과연 그 사람이 그렇게 선택한 것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까? 옆에서 관찰해보면 말을 하시는 분이 그렇게 무기력한 분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충분히 좋아하는 것도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항상 잘먹고 잘사는 편.


나는 이제 안다. 운명론이란 것의 진짜 실체를. 나도 크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인생의 양가적 선택 (예를 들면

한 가지를 가지면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한다는 법칙 아래) 내가 후순위로 밀린 것이라는 걸. 즐거움과 의무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또는 돈과 사람 중에 가지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그분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은 결정적인 순간에 터지고, 나에게 너무 치명적이라서 문제라는 것.

그 외에도 사람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가치들은 너무나 많고 그게 그렇게 엄청나게 멀거나 어려운 선택도 아니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연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매일 가족얼굴 대신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살지 않은가)


지금도 돈이냐 사람이냐의 양가적 선택이란 나를 항상 괴롭히지만, 직접적으로 경쟁에 노출되어 있었던 학창 시절이나 직장 시절에는 그런 선택이 직접적인 날들도 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그런 순간들.

그래서 양심을 팔고 주변에 아무리 나쁜 짓이 벌어져도 눈을 감은 채로 살았던 날들. 나만 살면 돼라고 

자기 주문을 외웠던 날들. 그런 시간에도 늘 자신과 남에게 변명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내 뜻이 아니라는 것. 그 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성공이라는 사다리가 어느 순간엔 자기가 처음 자기 자신을 저격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대체 내 자유를 어디다가 팔아먹고 그 모습으로 살았던 걸까?


 처음으로 백만 부 이상 책을 판 사람은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성공신화를 칭송하는 주변의 관심에 감탄하고 놀라워하지만, 책을 내기 위해서 만약에 부정한 짓을 했다면,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그랬다고 어쩔 수 없는 변명을 한 사람은 책의 덫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오해는 가급적 안 하고 싶지만, 모든 성공의 사다리가 항상 옳은 방향으로만 뻗어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여기서 칸만 오르면 대박을 같은데, 번만 뭔가 남모르게 뭔가를 하면 성공을 것이 확실한데

거기에 손을 대겠는가? 아니면 그냥 적은 수익으로 살거나, 수익 없이 살 것인가. 인생은 항상 선택을 요구하고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을 요구하니까. 적어도 성인이라면  자기가 선택에는 항상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게 당연하다. 절대반지는 대가를 항상 요구한다.

정말로 이 사회에서 성공의 가치를 빛나게 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화려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을 수도 있다. 너무 정직해서 생각보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생각보다 적은 것도 숨기지 않고 보여줄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만이 아니라 여타의 조건과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는 것도.


왜  그때 나를 만나지 않았어?라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을 해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변명 대신 정직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너를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는 식의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거짓이니까. 


나는 부모니까 내 아이들에게 적게 먹고 살더라도 남을 속이지 말라고 말해줘야 겠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남에게 안 속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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