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dia Noon 미디어 눈 Feb 07. 2021

방황으로부터의 성장

코로나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6) #방황

나는 나의 경험을 통해 두 가지 종류의 성장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하나는 방황으로부터의 성장, 다른 하나는 습(習)을 통한 성장이다.



방황으로부터의 성장

 

방황하다(彷徨하다)

1.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니다. 2.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2020년 한 해는 꽤 많은 사람에게 있어 방황하는 한 해가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기존에 당연히 계속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일상과 계획들이 많은 부분 크게 틀어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랬다. 나는 코로나로 인해 방황하는 2020년을 보냈다.


나의 방황은 어쩌면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즐겨보는 유튜버가 많은 사람들이 25살 정도 되었을 때 방황하는 이유에 대해 꽤나 공감이 되는 설명을 해주었다. 일반적인 과정을 밟는 한국인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요구하는 ‘퀘스트’들을 적당히 잘 수행하기만 하면 진급과 진학과 같은 ‘레벨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략 25살 전후 대학을 졸업하는 등 이러한 시스템을 벗어나게 되면 고민할 필요 없이 수행하도록 주어지던 퀘스트들이 사라지고, 홀로 오픈 월드에 던져져서 나 스스로 내 인생의 퀘스트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가 온다. 사회적으로 괜찮다고 인정하는 틀 속에 안주하고, 대안적인 가치를 꿈꾸면서도 정작 틀을 벗어나기 두려워하던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딱 내 심정이 그랬다.


그래도 나는 해결책이 있었다.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국제개발 NGO에서 인턴을 한 뒤 아프리카 르완다로 1년 해외봉사를 나가려고 했었다. 외국에 나간다고 하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나중에 NGO나 국제기구에 취업할 때 좋은 스펙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턴이 끝나고 봉사단으로 선발되어 출국 준비를 할 때 거짓말 같이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졸지에 백수가 된 나는 집에만 있으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나의 방황은 흔들리는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울하고 삶의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보고 취업 준비나 알바도 해봤지만, 삶의 목표가 없으니 영혼이 없는 느낌이었다.



나 자신과의 치열한 대화 끝에 마음 한 켠에 있던 ‘농촌·농업을 배워보고 싶다’는 소망 하나를 발견했다. 그길로 청년의 귀농귀촌에 대해 알아보았다. 서울 청년으로 하여금 2주간 농촌에서의 삶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별의별이주OO’라는 프로그램과 청년이 농사를 배우며 살 수 있도록 비빌언덕을 제공하는 ‘젊은협업농장’을 알게 되었다. 별의별이주OO에 참가하고 약간의 자신감을 얻고서 홍성에 내려왔다. 젊은협업농장에서 일하면서 농업, 지역, 인문학 등에 대해 함께 공부하는 ‘평민마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지내보았다.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고 마을 공동체가 살아 있는 농촌의 생활이 나에게 맞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농업과 농촌에 대해 새로이 배우는 것들로부터 앞으로 삶에서 하고 싶은 것들과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고 열정 있는 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농촌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민간재단의 지원을 받아 1년간 지내보기로 했다. 나에게는 나름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내가 방황하지 않았다면, 원래 계획대로 순탄하게 흘러갔더라면, 그래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집요하게 물어보고, 틀을 벗어나 찾아볼 기회를 갖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해서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가 있었을까. 물론 나의 방황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잠시 머무를 곳을 찾았을 뿐 나의 방황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방황을 통해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습(習)을 통한 성장



방황으로부터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방황을 끝내고 자리를 잡았다면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철학자 김영민은 <김영민의 공부론>에서 글-말-버릇-희망으로 구성되는 공부의 4단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글과 말로 표현하는 것에 이어 버릇으로서 몸에 완전히 익게 하고 이를 통해 희망을 찾음으로써 비로소 공부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나는 한때 매번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매순간 성장해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반복되는 일상의 가치를 잊곤 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지루한 반복의 과정을 거쳐 몸에 익을 때까지 익히는 것, 즉 습(習)의 과정을 통해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늘 단순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농사일을 지루하게만 생각하지 않고 진득하게 해냄으로써 새로운 단계로의 성장을 이뤄내고 싶다.



작가: 은하수

작가 소개: 자연을 사랑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청년. 평생 서울에서만 살다가 농촌과 농업에 대해 배우고 싶어 농촌으로 내려와 살고 있음.


본 매거진은 청년들의 지식커뮤니티 눈랩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함께 작성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장한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