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8) #어디로 가야 하죠?
#어디로 가야 하오
잠들기 전 깜깜한 방 속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보면, 가끔 군대 훈련소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정신없이 지나간 7주의 교육 과정,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30kg 군장을 메고 밤을 꼬박 새 산을 오르는 행운이었다. 심야의 산속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에 쥔 작은 손전등 빛에 보이는 것은 오직 앞서가는 동기의 군화 뒤꿈치 밖에 없다. 도대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건가? 이 길로 가는 게 정말 맞을까?
하지만 이런 고민할 시간은커녕, 잠시 숨을 고를 시간조차 없다. 앞사람의 발자취를 놓쳐서 깜깜한 산속에서 길을 잃을까 봐, 뒤에서 따라오는 다른 이들에게 순서를 빼앗길까 봐, 뒤쳐지는 것이 두려워 묵묵히 졸리고 피곤한 몸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아니 도대체 위에 뭐가 있길래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의문은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채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갔고,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었다. 소대별로 기념사진을 후딱 찍었고, 스케줄에 맞춰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우리는 산악 행군이라는 주어진 과제를 완료했고, 훈련소를 수료할 자격을 받았다. 그렇게 보람차진 않았다. 그저 정신없을 뿐이었다. 올라가라고 해서 올라갔고, 내려오라고 해서 내려갔을 뿐이다. 그래, 군대가 뭐 그런 곳이니까 어쩌겠어.
#성장에 대한 강박
대학 4학년 취업을 앞둔 지금, 나는 아직도 그 산을 오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도 나는 생각 없이 앞사람을 따라간다. 일단 대학을 가라고 해서 대학에 왔고, 군대나 가라고 해서 갔다 왔고, 봉사활동, 대외활동 하라고 해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정말 잘 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이번에도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어두운 산속에서 앞서가는 동기의 발자국을 따라간 것처럼,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성장이라는 그럴듯한 단어에 몸을 맡겼다.
‘이걸 배우면 내가 더 괜찮아지겠지, 이 자격증을 따면 더 나은 내가 되겠지?’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이거 하면 가산점 붙겠지? 어휴.. 이거라도 해야 뒤처지지 않겠구나.’ 나에게 성장은 그저 도태되지 않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과연 인생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를 때도, 훈련소처럼 끝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키는 것만 척 척한다면 과연 내 능력이 증명될까? 그래서 나는 사회에 인정받는 한 명의 구성원이 되어, 행복한 일생을 살 수 있는 건가? 우리의 인생은 과제물을 제출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고, 그걸 통해서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건가?
#무엇을 위해서?
나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 산을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한다.
인생의 목표가 정상을 정복하는 것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상에 올라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누구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행복을 찾을 것이다. 오래된 사찰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와 함께 오르는 것, 혹은 등반하는 그 자체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린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간다. 공부, 대학, 취업, 성공이라는 길고 긴 등산로 묵묵히 오른다. 본인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사회의 흐름에 따라갈 뿐이다. 사실은 그것도 너무 벅차다. 다른 길은 없을까 잠시 한눈을 팔아 보지만 손에 쥐어진 건 작은 손전등 하나뿐이라 도무지 옆길로 샐 수가 없다. 그러다 길을 잃어버릴까 봐, 혼자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산에서 헤매다 인생에서 실패할까 봐, 우리는 그저 쫓기듯 인생을 살아간다. 이 좁은 길을 따라 걷는 우리는, 그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서로 반목한다. 서로의 성공에 질투하고 조바심을 느끼며, 성공을 두고 다투며 성장할 기회를 두고 경쟁한다. 나는 도저히 우리가 하는 ‘성장’과 ‘자기 계발’이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 인정하지 못하겠다.
#셰르파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네팔 지역에는, 등반 안내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셰르파'라고 하는 이들은, 산을 등정하려는 도전자들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짐을 함께 들어준다. 모든 산악인은 험준한 산길을 오를 때 반드시 셰르파와 동행한다. 내 인생에도 셰르파가 있으면 한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조언해주고, 가끔 내 짐이 너무 무거워지면 조금 나눠서 들어주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가는 길 말고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고 내게 용기를 주었으면 한다.
산을 오르는 길이 하나라면 우리는 서로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가 하나가 아니라면, 정상에 오르는 것 외에 다른 목표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인생이라는 거대한 산에 어떤 행복이 숨어있는지 찾아보는 문제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산의 지도를 함께 그리며 채워나가는 동업자이다. 나는 목적도 없이 나를 성장시키고, 또 누군지도 모를 이들에게 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을 쏟고 싶지는 않다. 이 세상이 나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지, 내가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는 셰르파가 되고 싶고, 셰르파와 함께하고 싶다. 내가 발견한 행복을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주며, 같이 찾아 나서고 싶다. 그래서 정상에 오르는 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작가: 진
작가 소개:평범한 20대 청년이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생각을 합니다.
본 매거진은 청년들의 지식커뮤니티 눈랩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함께 작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