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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덕 Mar 15. 2020

23살, 유학에 대해 후회하다. (6)

다시

한 달 여 남은 시간도 빠르게 지나, 결국엔 8월이 오고, 다시 미국으로 떠날 시간이 왔다.

엄마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셨지만, 여전히 엄마를 두고 다시 먼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슬펐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분명 엄마의 건강 악화와 친구의 죽음 등 정말 가슴이 무너질 정도의 슬픈 일들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공황 약에도, 술에도 크게 의지하지 않고,

잘 버텨냈다.

2019년 여름은 나에게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최근 몇 년간 내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느낀 적이 있던가?

최근 몇 년간 내가 이렇게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있던가?


딱히 특별한 것, 새로운 것을 하지 않았는데도, 참으로 내가 오랜만에 안정되고 행복하다고 느꼈다.

동네 친구들과 피시방 가서 게임 한 판하고 저녁에 술집에 가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는 일,

부모님과 밤에 운동 겸으로 동네 산책을 나오는 일,

혼자 동네 코인 노래방에 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일,

동네 학원에 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


내가 오랜 시간 동안 해왔던 익숙한 일인데도, 이것들이 나에게 이렇게 편안함을 줄지 몰랐다.

일단 동네가 참으로 많이 그리웠던 것 같다.

'이런 게 바로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라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혼자 가끔씩 웃곤 했다.


매일매일이 스트레스고 지옥이었는데, 가족과 집, 우리나라를 떠나 타지에서 이렇게 오래 생활한 것이

처음이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며 조금 더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름에는 우연인 건지 한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 지인들, 감사한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내 근본에 대해서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고나 할까.

꽤나 나에게 많은 생각과 통찰을 하게 해 준 경험과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미국에서의 학교를 옮겼다.

일단 지난 1년 동안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고 편입이 비교적 활발한 미국의 특성 덕분에,

나는 큰 어려움 없이 뉴저지에서 뉴욕에 있는 대학교로 지원을 해 합격을 할 수 있었다.


비록 뉴욕의 정말 이름 있고 유명한 대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내 전공에서는 뉴욕 근방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나 또한 과거의 경험들을 살려 이번에는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이 학교에서도 열심히 하다가 좋은 기회가 또 오게 되면 그때 다음 단계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학비도 미주를 통틀어서 유학생 치고는 정말 싼 편이었고, 차가 없어도 크게 교통에 제약받지 않는

뉴욕의 특성 등.. 여러 가지가 잘 맞아떨어져 뉴욕으로 학교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조건들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엄마였다.

엄마랑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 붙어있다 보니, 도저히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내가 계속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 사회복무요원, 즉 군 복무도 해야 하고, 어차피 중간에 한국에 들어오게 될 것인데,

나중에 기회를 봐서 적절한 시기에 미국 대학에서 졸업을 하지 않고 중간에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군 복무 동안 2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니, 다음 계획을 세울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


기어코 떠나는 날이 오고 말았다.

정신없이 자고 있던 나를 깨우는 엄마. 그리고 나가려는 찰나, 엄마의 한 마디.


"이제 아들, 다음에 오면 이 집이 아니라 다른 집으로 오겠구나."

"...."


이사를 가기로 하여 내가 미국에서 1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오면 다른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괜히 마음이 울적해졌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내 방 사진을 찍었다.

미국에 갈 짐을 다시 싸서인지 방이 꽤나 많이 비어 보였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 집에 올 때부터 참으로 힘들었다. 고3 시절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시작할 때쯤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와서,

삼수 도전을 하고, 한창 공황 장애를 겪고, 미국 유학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 까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는데, 항상 내 방에만 오면 마음이 참으로 편안해졌었다.


항상 마음이 어지럽거나, 슬플 때면 창밖으로 동네 모습을 멍하니 1시간씩 쳐다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좋은 추억으로 남겨둬야 했다.


나에게 소중한 공간을 다시는 못 볼 생각을 하니 좀 많이 아쉽고 슬펐다.


차에 타고 다시 한참을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1년 전 떠나던 날처럼 잠이 덜 깨서인지, 아니면 떠나기 싫어서인지 그냥 멍했다.


수속을 위해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오고, 부모님과 인사를 해야 했다.


"건강하고 잘 지내세요."

"응 그래.. 아들 잘 가.."


"잘 지내라. 도착하면 전화하고."

"응."


나는 무뚝뚝한 대답과 함께 엄마와 아빠와 포옹을 한 번씩 하고

들어가는 동안 다시 돌아가는 두 분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엄마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이고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 멋쩍게 웃어 보이시며 농담을 하시는 게 보였다.


나도 그런 두 분의 뒷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수속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도착한 뉴욕.


이번에는 아무래도 두 번째 오는 것이라 그런지 지난번보다는 적응이 좀 더 빨리 되었다.

반갑게 사촌동생 제이슨과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고, 적응하는 시간을 좀 가졌다.

그래도 며칠간은 시차와 가족들,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조금은 우울하고 힘들었다.

특히 부모님이 참으로 많이 그리웠다.


"에휴.. 그래도 어쩌겠어.. 기왕 온 거 또 최소 1년은 열심히 해야지 뭐.."


라는 다짐과 함께 나는 우울한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뉴욕에 있는 학교에 나가 필요한 서류들을 처리하고

오랜만에 뉴욕 여행을 하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학교는 조금 작고 협소하긴 했지만 그래도 뉴욕 맨해튼 중심에 있다는 이 나에게는 꽤나 멋지게 다가왔다.

유학생 사무실에 가 필요한 서류 작업이나 절차들을 처리하고, 학교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적응을 하려 했다.


이제는 사촌동생인 제이슨의 도움 없이 학교 생활을 혼자 다 해나가야 한다는 것에 퍽 겁이 나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다가올 일이었고, 언제나 그랬듯 나는 또 이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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