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그녀는 나를 코끼리에 비유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훈련이 잘 된 코끼리'였다.
그녀는 유명한 일화에 나를 빗대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어렸을 때부터 다리에 밧줄이 묶인 채 훈련되고, 사육되어왔다.
아직 그 밧줄을 끊을 힘이 없어 코끼리는 밧줄을 끊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밧줄은 끊기지 않는다.
결국 이내 지쳐 포기하고 만다.
시간이 지나 코끼리는 힘이 세져 그 밧줄을 단번에 끊어낼 수 있는 힘을 지녔음에도,
그 밧줄을 끊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밧줄이 끊어져 자유를 얻더라도 다시 밧줄이 묶여 있는
통나무에 돌아와 앉아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갓 성인이 된 참이었다.
학생에서 성인이자 신분으로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생활은 참으로 달콤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자유와 독립을 누구보다 원해왔던 나였으니,
자유로운 성인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 기다려왔을 것이다.
더 이상 학생 때처럼 자유나 생활이 크게 통제받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통제가 줄어든 삶을 사는 것은 분명히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분명 밧줄을 끊어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와 차라리 다시 밧줄에 묶이길 바라며 통나무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내 발을 묶는다.
자유에는 책임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당시의 나는 그러한 책임의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지 몰랐으리라.
막상 내게 밧줄을 끊을 수 있는 힘이 있고, 끊어 본 경험이 있음에도
나는 밧줄을 다시 끊기를 망설였다.
지혜로운 그녀도 분명 그런 나를 쉽게 간파했으리라.
그녀는 누구보다도 내가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의 내가 인생에서 자유라는 것을 쉽게 얻지 못할 것이라 반박했다.
항상 나에게 상냥하고, 인생에서 나를 위하라 말했던 그녀였기에, 그녀의 말을 더욱더 차갑게 들렸다.
사람마다 자유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나 또한 자유를 내 인생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고의 가치로 두지만
자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 내리지는 못하겠다.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것을 근간으로 하는 나라에 유학까지 갔다 왔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설명은 가능할지 언정, 여전히 그것이 무엇이라고 똑 부러지게 정의는 못하겠다.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그때로부터 흘렀다.
그때 이후로 나는 더 많은 지식, 지혜와 경험을 쌓았다.
나는 여전히 통나무 근처를 맴돌고 있을까?
아니면 통나무를 벗어나 걸어 돌아다니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