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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sun Cho Aug 23. 2019

변호사의 신언서판

-내가 보여지는 모든 것을 의뢰인에게 맞춘다 

운이 좋은 변호사의 경우에는 소속변호사로 일하면서 대표나, 상급자로부터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을 들으며 하나의 인격체로, 그리고 법률전문가로 성장해나간다.


나의 경우 역시 돌아보면 감사하게도 대표님과 상급 변호사들로부터 많은 도움과 조언을 들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었던 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신언서판(身言書判)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표변호사는 내가 쓴 칼럼을 고쳐주면서 변호사는 보여지는 모든 것이 의뢰인에게 호감을 살 수 있어야 하고 의뢰인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1. 글은 간결하게 적어도 이해가 될 수 있는 말끔한 문장으로 적을 것 (書)

2. 말은 뉴스 아나운서와 같이 완벽한 맞춤법과 표준어로 이야기할 것 (言)

3. 외관은 최대한 의뢰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되, 의뢰인의 취향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할 것 (身)

정도였다. 


8년차가 된 요즘에도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들은 이 말은 지금까지 항상 마음에 담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표님의 말씀에 내 경험과 생각을 조금 덧붙여보자면 이렇다.


#1. 변호사로서의 문장 


변호사는 글로 판사를 설득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요건사실에 사실관계를 끼워넣는다고 해서 법률서면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은 1-2줄의 문장으로 주어와 술어가 명확하고 수식어가 적은 문장들이다.

기존의 판결문의 문장들을 보면 매우 심각한 경우에는 1페이지에 걸쳐서 한 문장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문장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이어지면서 법원의 경우도 문장 간결하게 쓰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필요없는 경우에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판단해버리기도 한다.

가령 단독판사들이 

"원고는 .........라고 주장하나 종합적으로 판단건대 원고의 주장은 이유없어 기각한다"라고 써버리면

변호사 입장에서는 뒷목을 잡게 된다. 


무튼 변호사는 글을 팔아서 판사를 설득시키고 원하는 판단을 받아서 의뢰인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주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의 경우에는깔끔하고 간결한 문장을 선호하고 비문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유의하는 편이다.


가끔 사건을 진행하다보면 매우매우 글을 못쓰는 변호사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동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려고 노력 중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검찰 전관 변호사와 공동수임으로 형사사건 변호를 한 경험이 있는데

내가 작성한 변호인의견서를 여러 명이 있는 변호사들 앞에서 2번 낭독시켰다.

그리고 모든 문장을 다 점검하고 띄어쓰기, 들여쓰기, 넣어쓰기를 모두 고쳐 주었는데

그 과정을 마치는데까지 1주일 정도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과정에서 넌더리가 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그 서면을 제출하고 난 후에 

검찰을 방문했더니 담당 검사가 본인이 최근까지 본 서면 중에서 가장 좋은 서면이었다고 칭찬을 했다.

물론 결과도 매우 좋았다(증거불충분 무혐의).


#2. 변호사로서의 말 


서면은 변호사 업무의 최종 결과물이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회의와 설득, 보고가 이어진다.

나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 이른바 웅변이라고 하는 스피치 훈련을 몇년간 했지만

그래도 의뢰인은 어렵고, 판사는 더더욱 어렵다.

나도 모르게 내 머리속의 말과 다른 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운과 노력의 결과로 발음이나 목소리 톤 자체가 많이 차분해서

그 점이 의뢰인들에게 많은 호감을 불러오는 것 같다.


#3. 변호사로서의 용모 


생각보다 변호사들이 본인의 외관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는 것 같다.

특히 남자변호사들의 경우에는 전투용 양복 몇 개로 돌려서 입고, 외모를 꾸미는 데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하지만 전에 있던 회사에서 느낀 점은

의외로 의뢰인들이 변호사의 외모를 통해서 신뢰감과 공감대를 많이 형성한다는 점이었다.


예전 회사의 대표의 경우에는 50대 초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운동을 해서 탄탄한 몸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누가 봐도 예쁜 이탈리아 수트를 입고 상담을 들어갔는데

여성 상담자들의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장면을 정말로 많이 목격했다.


그 대표님은 항상 어쏘 변호사들에게도 잘 꾸미고 다니라는 말을 했는데

그건 단순한 의미라기보다는 의뢰인을 설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 중에서 외관도 상당히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성적인 요소를 부각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가끔 법정에 가보면 여성 변호사들이 너무 짧거나

속옷 라인이 다 드러날 정도로 밀착되는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변론을 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런 것보다는 전문가로서의 깔끔하고 지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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