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검사가 되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연수원 성적이 점지해주는 대로 변호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
여성 변호사들은 어떻게 옷을 입을까?
8년째 내 고민이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0. 변호사의 옷차림, 칼정장
최근에는 대부분의 직장이 스마트 캐주얼 정도의 가벼운 옷차림을 권고하지만
변호사, 특히 법원에 출입하는 변호사들은 매우 단정한 정장 차림을 권유받는다.
매우 더운 여름에도 법원에서 공지해주는 기간이 아니면 여름에도 자켓을 입고 법정에 들어가고
자켓의 단추도 다 잠그고 들어간다.
구두는 샌들은 불허, 슬링백은 조금 모호, 앞뒤 다 막힌 구두가 가장 안전하다.
너무 꽉막힌 복장규제가 아닌가 싶고 때때로는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도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법정에 들어가보면 이러한 복장규제에 대해서 스스로 수긍하게 된다.
법정에서의 의상은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사법체계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갖추는 수단이다.
실제로 판사와 검사는 목까지 잠근 셔츠에 타이, 그리고 법복을 입고 재판에 임한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변호사 역시 다른 곳은 몰라도 법정에 갈 때는 가장 단정하고 차분한 의상을 입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1. 그러면 정장, 뭘 살까
-요새 위아래 칼정장 사는건 정말 쉽지 않다
90년대 후반의 대학생들은 정장바지에 정장니트를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구호 G보티첼리 미스지 같은 브랜드도 성업했다.
그 때는 위아래 칼정장을 파는 브랜드도 꽤 많았기 때문에
정장을 사는게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대부분의 직장이 유니폼이나 칼정장 대신 스마트캐주얼을 입게 되었고
자연히 아주 포멀한 정장을 팔던 브랜드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난 옷을 정말 좋아한다.
네이버 블로그 닉네임이 '칠면조'일 정도로 옷을 매우매우 좋아해서
사는 것도 좋아하고 남들이 입은 걸 보는 것도 좋아한다.
대학교 때도 고시실에 언니의 미우미우 메리제인을 신고 갔다가
구두소리가 시끄러워서 고시실에서 쫓겨날 뻔 했고
고시공부를 하러 신림동에 갈 때도 갈 때는 청바지를 입고 갔다가
독서실에서 레깅스로 갈아입은 다음 집에 갈때 다시 청바지를 갈아입을 정도의 지극정성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오랜 고시생활을 접고 연수원에 입소하려고 보니
강산이 변하여 살 만한 정장브랜드가 없었다.
정장, 뭘 사지?
#2. 정통 정장이나 예복 브랜드
-Armani, 손정완, 구호, Hugo boss Women, 예복 브랜드
아직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Armani
가장 쉬운 방법은 Armani 산하 브랜드의 정장을 사버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이런 부류의 정장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약간 내가 입기에는 올드한 디자인이어서 내가 입으면 엄마 옷을 빌려입은 느낌이었다.
손정완도 하나의 대안인데, 손정완은 약간 소녀스럽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는 있지만
대부분의 정장자켓 칼라가 동글동글해서,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느낌이 있다.
구호, 호리호리하고 가는 여성체형에 참 좋을 듯하다
아니면 아예 KUHO를 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구호의 대부분의 디자인은 키가 좀 크고 마른 여성들을 위한 디자인이 많아서
단신의 여성들이 소화하기에는 버거운 면이 있다.
심플하고 간결한 Hugo Boss Women
이 글을 쓰고 나서 피드백을 받고 생각해보니,
Hugo Boss Women도 예쁜 자켓이 많이 나오는 브랜드였던 걸로 기억한다.
Hugo Boss는 워낙 남성복이 유명하지만, 여성 라인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고
남성복과 유사하게 매우 단정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주로 내놓는다.
요새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서 아보아보가 예복 디자인을 많이 내보이는데,
여성 변호사들 중에서 아보아보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예복 브랜드에서도 너무 화려한 색이 아닌 차분한 무채색 계열의 정장이 나오니
이런 브랜드에서 입을 만한 정장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3. 정장브랜드는 아니지만 심플한 브랜드
-Theory, Ellie Tahari, Vince, Joseph, Max Mara
완전히 정장만 파는 브랜드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브랜드 특징상 심플하고 무난한 디자인을 가진 브랜드라면
적당한 수준의 블레이저를 만날 수 있다.
차분한 디자인의 Theory
나는 Theory에서 다양한 아이템을 구매하는 편이다.
Theory는 어디 하나 튀는 곳 없이 차분하고 단정해서 법원에 들어갈 때도 입기 무난한 편이다.
자켓 뿐 아니라 슬랙스나 스커트도 정장으로 맞춰 입기에 매우 무난해서 어쩌다보면 Theory가 옷장에 꽉꽉 찰 때가 있다.
Ellie Tahari 역시 Theory처럼 차분하지만 조금 더 여성스럽기 때문에, 정장 원피스를 살 때는 이 브랜드를 고르는 편이다.
Vince는 정말 기본에 충실하고 소재가 훌륭하기 때문에 셔츠나 니트를 고를 때 이 브랜드를 선호한다.
Joseph도 같은 이유에서 좋아한다.
Max Mara의 Madame 코트
Max Mara는 다른 아이템은 차치하더라도 코트만큼은 반드시 이 브랜드 코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테디베어 코트같은 부한 디자인이 아닌 단정한 디자인의 캐시미어 코트는 언제 입어도 자신있는 스테디아이템이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자리에 입고 나가는 편이다.
#4. 그래도 조금은 여성스럽고 싶다
-Pauel Ka, Anne Fontaine
정장차림처럼 지겹고 지루한 스타일이 없다.
정신을 차려보면 계속 검정, 네이비로 주구장창 돌려입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조금 여성스러운 아이템을 추가해보기도 한다.
케이트 미들턴의 Paule Ka 착장
최근에 산 Paule Ka의 울 코트
Paule Ka는 디자인에 따라서는 굉장히 화려하지만, 잘 고르면 정말 단정하면서 여성스러운 디자인이 많다.
특히 원피스 코트나 스커트가 정말 예쁜 편이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가 공식석상에서 입고 나오는 브랜드기도 한데, 단정하면서 여성스러운 스타일이 많다.
최근에는 살짝 톤다운된 딸기우유색 코트를 샀는데, 온통 검은색 위주인 겨울 정장이 지겨울 때 꺼내입기도 한다.
화이트 셔츠에 강한 Anne Fontaine
Anne Fontaine은 프랑스의 배우가 만든 레이블인데, 셔츠에 주력하는 브랜드이다.
다른 아이템들도 있기는 하지만 주력은 아니고, 셔츠가 메인 아이템이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스럽고 러플과 프릴로 장식된 셔츠인데 여성스럽고 섬세하다.
프랑스에서는 고급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도무지 상승하지 않아
사는 사람만 사고 안 사는 사람은 절대 사지 않는 브랜드에 속한다.
#5. 조금은 재밌고도 싶다
-Paul Smith
Paul Smith의 자켓들. 대부분 원버튼으로 무난하고 단정하다
연수원에 막 입소했던 시절 폴 스미스 옷을 많이 모았다.
특히 폴 스미스 자켓들을 모았는데 폴 스미스는 한 눈에 봤을 때는 별로 특징이 없지만
자세히 보면 단추가 한두개 삐뚤어져 있거나, 안감이 미친듯이 화려한 특징이 있다.
가령 회색 자켓인데 안감은 새빨간 실크라던가....자켓 안감에 뜬금포 작은 리본이 달려있거나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