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구가 고철 마을로 변하는 게 빠를 지도 모르지만
‘대추락’ 이후 인류가 몰락한 2563년, 사람이 사는 곳은 두 군데밖에 남지 않았다. 하늘에 떠 있는 공중도시 자렘과 자렘에서 버린 쓰레기가 쌓여 만들어진 산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지상의 고철 마을이다. 사이보그를 고치는 의사 ‘다이슨 이도’는 쓰레기 산에서 머리와 상반신만 남은 사이보그를 줍는다.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천진난만한 사이보그, 나중에 이도가 잃은 딸의 이름, 알리타라 불리게 되는 소녀를. ‘알리타 : 배틀엔젤’은 그 소녀가 기억을 되찾고, 자렘에 맞서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사이보그(Cyborg)는 무엇일까? 사이버네틱 유기체(cybernetic organism)의 줄임말로, 간단히 말하면 사람 몸 대신 기계를 쓰는 존재를 말한다. 기계 팔이나 다리를 달거나, 신체 장기를 인공장기로 대체한 사람이다.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나 영화 ‘로보캅’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경찰이 유명하다.
알리타가 수리받고 다시 태어난 고철마을은, 인간과 사이보그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안경을 끼듯 신체를 기계로 바꾼 사람이 흘러넘친다. 보통 신체 일부만 바꾸지만, 주인공 ‘알리타’나 알리타의 적인 ‘자팡’, ‘그루위시카’처럼 전신을 기계로 바꾼 사람도 많다.
사이보그라는 말은 1960년 맨프레드 클라이네스(Manfred Clynes)와 네이선 클라인(Nathan S. Kline)가 ‘사이보그와 우주’ 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제안했다. 험난한 우주를 탐색하려면 보통 사람 힘으로는 어렵고,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가 필요하다고.
화성에 살고 싶다면 화성을 인간에게 맞게 바꾸기보다 화성에 맞는 인류로 개조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말이다.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환경 적응, 또는 진화라고 여겨도 좋겠다. 사이보그는 인류가 환경이 다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안된 몸이다.
우주도 아닌데 고철 마을에 사이보그가 많은 이유는 뭘까? 여기서 사는 게 화성에서 사는 삶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지상에 버려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험난한 장소다. 자원과 식량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법과 정부도 없다. 사람도 적고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세계에서 살기 위해선, 사이보그가 되는 게 평범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낫다.
알리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그녀는 ‘대추락’ 당시 지구와 맞서 싸우던 화성연합 공화국(URM)의 전사였다. 처음에는 평범한 보디를 가지고 있었기에 제대로 활약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추락한 함선 잔해에서 URM 군인용 예비 보디를 발견하고 몸을 바꾼 다음부터, 다른 사이보그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몸을 기계로 바꾸면 강해진다니, 정말 멋진 아이디어다. 그래서일까?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예전에도 많았다. 예를 들어 에드거 앨런 포가 쓴 ‘소모된 남자(The Man that was Used Up, 1850)’를 보면, 주인공을 경악하게 만드는 남자는 아무리 봐도 사이보그 같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도나 헤러웨이는 과학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의지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이보그라고 선언해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미래학자 호세 코르데이로는 기술에 의한 인간 진화, ‘트랜스 휴머니즘’을 얘기하며 이게 바로 인류의 진화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물론 언제나처럼, 현실은 상상과 다르다. 처음 사이보그가 제안될 때와는 다르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사람을 바꾸는 것(=사이보그화)보다 환경을 바꾸는 게(=더 좋은 우주선 만들기) 더 쉬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이보그를 꿈꾸는 기술은 현실에선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뉜다. 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기기와 외골격 슈트, 인공장기 등이다. 뇌를 스캔해서 보관, 재생하는 ‘마인드 업로딩’이란 기술이 제안되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아직은 공상 과학에 속한다.
근전전동의수는 빠르게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센서를 이용해 절반 부위에 남은 근육에서 나오는 근전신호를 이용해 쓰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전동 의수를 움직이는 장치다. 영국 오픈 바이오닉스 만든 ‘히어로 암’은 23만 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전동 의수를 만들고 있다. 외형을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처럼 보이게 만들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점차 가격이 내려가고 있지만, 아직 근전전동의수는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탈리아 국립 연구소(IIT)에서 연구 중인 인공 손 모델 한네스(Hannes)는 인간 손 움직임을 90%에 가깝게 모방한다. 진짜 손에 가깝게 쓸 수가 있다.
삼성전자에선 외골격 로봇 삼성 젬스 힙(GEMS Hip)을 공개한 적이 있다. 근력이 부족한 사람과 환자들을 위한 장치로, 허리와 종아리에 착용하면 걷는 것을 도와준다. 프리프리오풋(Proprio Foot)같은 인공지능 칩이 탑재된 의족도 있다. 이 밖에 감각을 느낄 수 있는 터치 스킨, 귀에 넣어 뇌파를 감지하는 기기도 연구 중이다.
세포 기반 인공장기는 개발이 더디다. 다만 인공 폐, 인공 신장, 인공 피부와 혈관, 인공 자궁 연구까지 일정 부분 개발에 성공했다. 전자 기기 인공장기는 이식 수술을 받기 전까지 사용하는 임시 인공 심장, 보청기를 대체하는 인공 와우 등이 이미 쓰이고 있으며, 인공췌장과 인공 눈등을 개발하는 단계다.
오래전 우주개발을 위해 제안된 사이보그라는 개념은, 현실에서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 크고 있었다.
유기체와 기계를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는 인공장기, 인공 보조 기기 등의 개발로 이어졌다.
큰 변화는 아니겠지만, 성형이나 치료를 위해 보철물/이식물을 삽입하거나, 수술을 위해 사용하는 인공혈관, 신체 개선을 위해 사용하는 인공 수정체, 임플란트 치아 등을 거부감 없이 누구나 ‘가능한 대안’으로 생각하는 상황까지는 이미 도달했다.
인간 능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정상 상태로 돌려놓거나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 줄기세포 기술과 3D 프린팅 기술 발달로 인한 영향을 크게 받고 있어서, 앞으로 많은 성장을 하리라 예상한다.
인간을 강화한다는 아이디어는 머니퓰레이터 같은 로봇 팔부터 시작해 외골격 슈트 같은 ‘입는 로봇’ 분야로 이어지고 있다.
외골격 슈트는 일부 상용화되었으며 앞으로 점점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인간 능력을 강화하는 기술이지만 직접 붙이거나 신체 일부를 대체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보그에 가깝지만 사이보그는 아니다.
다만 이 분야는 수술 같은 신체 훼손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신체 훼손이 필요한 기술은 사용자 저항이 크다. 치료가 목적이 아닌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다. 반면 앞으로 기계에 인공 근육 시스템이 장착될 가능성은 크다. 실제로 2018년 2월 포스텍에선 전력 공급 없이도 움직이는 인공 근육을 개발했다.
과연 알리타 같은 사이보그는 만들어질 수 있을까? 기술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아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살기 어려운 환경이면 굳이 거주할 필요가 없다. 환경도, 인간도 바꾸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재생이 어려운 신체 부위를 인공장기로 대체하거나 보조 기기를 이용해, 지금보다 편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변한 우리 자신을, 사이보그라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 2019년 5월 삼성 디스플레이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