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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Sep 02. 2021

방콕 글쓰기로 떠나는 마사지 여행

예전에 즐겁게 했던 일에 대해


그동안 묻어두었던 꿈과 기쁨을 찾기 위해 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의식적으로 연습해보는 거니까 재빨리 대답해본다. 속도를 내야만 잠재적인 억압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으므로, 다양한 각도로 생각을 하며 예전에 만족했던 것들에 대한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끌어내는 

방법으로 써본다.



1. 재미있을 것 같은 취미를 다섯 가지 적는다.

가죽, 옻칠공예, 가구 공예, 클라이밍, 테니스


2.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해볼 엄두는 나지 않는 일을 다섯 가지 적는다.

스쿠버다이빙, 승마, 스카이다이빙, 개 키우기, 유튜버


3. 갖고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은 재주를 다섯 가지 적는다.

스케이트보드, 비보이, 첼로, 성악, 댄스


4. 예전에 즐겁게 했던 일을 다섯 가지 적는다.

스파 마사지, 요트, 베이킹 클래스, 플라워 클래스, 유화 페인팅


5.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바보스러운 일을 다섯 가지 적는다.

집 셀프 페인트칠하기, 핀란드에 도착하여 몇 시간 동안 놀다가 한국 돌아오기, 갑자기 비행기표 끊고 여행 가기, 갑자기 비행기에서 내리기, 명품 충동구매



찾았다!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마사지다. 방콕에서 가장 좋았던 아로마 마사지가 기억났다.

생생한 배경으로 특별한 의미가 기억되고 있다.

승무원이었을 때 방콕 비행하러 가면 풀바디 마사지를 부담 없이 할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꽤 비싼 가격이라 엄두가 잘 안 나는데, 안 가본 지 한참 된 아로마 오일 마사지가 지금 당장 

가고 싶다.

레몬그라스 향이 나는 분위기로 압도하는 공간이다. 접수실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진한 컬러 아이섀도와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직원이 웃고 있다. 마사지 종류가 가격별로 쓰인 안내

책자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차분한 자세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쿠션을 덧댄 푹신한 소파로 안내하며 슬리퍼로 갈아 신으라고 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인테리어에

긴장이 풀린다. 어두운 다크톤의 목재로 된 가구와 의자들, 화려한 민속 문양 패턴이 그려진 테이블보와 패브릭 제품들, 어두운 천장에서 은은하게 주광색 조명이 내려와 잔잔한 자연의 소리가 있는 명상 음악과 함께

안락한 공간을 구성했다.

상품 진열대 위에 놓여있는 스파 제품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니 매장 안에서 나고 있는 라벤더, 로즈메리,

유칼립투스, 레몬그라스 바로 그 향들을 팔고 있다.

나는 방콕의 향기를 간직할 수 있는 라벤더 아로마 오일과 향초를 샀다. 나의 시끄럽고 자잘한 에너지를

순식간에 흡수해버리고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나무 트레이 위에 올려진 유리잔에 담긴 따뜻한 자스민차를 마셨다. 그 한 모금이 여행의 피로를 풀고

몸을 따뜻하게 해 줬다. 대기실도 이 정도인데 마사지는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감으로 두꺼운 카펫을 밟고

탈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한 고동색의 수납장에서 습한 냄새가 난다. 거울 앞에 전혀 쓸 것 같지 않은

헤어 제품과 일회용 세면도구가 놓여있다. 가운으로 갈아입으니 모든 무거운 마음과 생각을 벗어버렸다.

가운이 벌어지지 않게 단단히 두르고 마사지 침대에 조심스레 누웠다. 멋쩍고 조금은 창피해서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본다. 내 옆에 회전 스툴이 있고, 은쟁반에 바디 오일과 로션이 놓여있다. 마사지용 까만 돌,

수건을 데우는 기계도 한쪽에 보인다.

에어컨 바람이 강해서 몸이 써늘하다. 온도 조절 장치가 벽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리다 푹신한 타월로 감쌌다. 피부를 쓸어내릴 듯한 두꺼운 수건을 하나 더 덮었다. 마사지사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나 손길로 어떤 사람일까 상상해본다. 근육을 주무르고 당기는 전문가의 손길에 근육들이 놀라며 적응 중이다.

얼마 만의 휴식에서 오는 극도의 안도와 희열 위에 따뜻한 돌이 올라갔다. 오일로 문지르는 피부에

설움이 보상받는 것 같다. 내가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마음은 혼란스럽고 요동치는 일들로 분주한데 몸은 평온하고 차분해있었다.

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대하는 경험을 하고 나니 나도 나를 부드럽고 고급스럽게 대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90분이 지나갔다.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에 잠시 앉아서 아쉬움을 달랜 후, 탈의실로 가서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팁을 안 주기에 민망할 정도로 내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그 공간을 나왔다.

이 도시는 여전히 방콕의 쨍한 핫 핑크 택시처럼 활기차고 흥겹다. 나는 에너지를 충전하려고 뚬양궁과 맛있는 망고 스티키 라이스 디저트를 먹으며 방콕 24시를 즐겁게 보내고 온 기억이 난다.


외국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향수병 대신, 내가 선택한 것은 여행이 일상이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 대가로 오늘 나는 글을 주물럭주물럭 마사지하고 있다.

내 글도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소중하게 대해 줄 마사지가 필요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방콕 마사지



바꾸려고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대가는 무엇일까?
습관, 성향, 성격, 집, 가족, 사람, 직업 그리고 모든 선택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글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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