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이트

by 정혜원



나이트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복잡하고 성가시다. 인간을 사랑했던 연인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관여하지 않았을 인간들의 삶이다.


인간은 영원한 삶을 부여받았으나 불완전했다.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미쳐갔고, 욕망에 잠식되었다. 영생을 원하면서도 죽음을 갈망하는, 모순 그 자체였다.


지난한 시간 동안 그들은 스스로 마음의 병을 키웠다. 결국 그들은 죽음을 만들어 냈다. 마치 그것이 삶의 도착지인 것처럼.


그런데도 그들은 영생을 원하고 또 원하며 늘 그것을 갈구하며 신(神)에게 애원한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기록한 어떤 것에서는 인간의 윤회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불안해하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불안과 두려움이 한곳에 모여 지옥이라는 꺼지지 않는 불을 만들었다.


나이트와 아르카에겐 인간들이 만든 그 불을 꺼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렇게 되면 영혼은 영원히 소멸한다. 아르카는 그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나이트의 소중한 친구이자 연인, 영원히 빛나야 했던 아르카는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을 너무도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삶과 죽음, 부흥과 멸망 따위의 이름을 붙여 인간들이 원하는 신을 만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계약이었다.


태초의 신이자 유일한 신인 절대적 존재 빛과 어둠, 아르카와 나이트는 여럿을 만들었다. 인간들이 말하는 천사와 악마 혹은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그것이다. 그들은 아르카와 나이트에게 있어 자식과도 같았다. 같은 모습 같은 능력을 갖춘 같은 존재이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힘. 서로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며, 느껴지는 그대로 느낀다. 아르카와 나이트의 기운을 보고 듣고 느끼고도 아무렇지 않은 존재는 많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힘의 크기가 정해지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존재들과 인간은 확연히 달랐다.


아르카와 나이트가 만든 존재들이 만들어 낸 인간의 영혼과 육신. 완전한 존재가 만든 불완전한 존재, 그 불완전한 존재가 만든 불안정한 존재가 인간이다.


소멸 직전의 영혼들은 중간층 신들에게 선택받아 어떠한 능력을 얻어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산다. 하지만 그들에겐 범위가 주어지고, 그 범위를 벗어난다면 죽거나 소멸하기도 한다. 범위란 공간적인 제약을 말하기도 하고 시간적인 한계를 말하기도 하며,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를 뜻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만들어진 신은 본래 인간으로 살아갈 영혼들이었기 때문에 인간처럼 사고하고 판단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많은 문제가 그들의 선에서 해결되고 정리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르카가 직접 나서려다 소멸시킨 영혼이 수없이 많아지고 나서야 찾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의 혼을 가진 신들은 선과 악을 나누어 그들의 잣대로 죄를 구분하고 그의 무게를 달아 인간의 혼을 지옥불에 던지기 시작했다. 소멸하여야 하는 영혼은 없다. 본래의 맑고 밝은 혼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연약하고 여린 탓에 다치고 상처받으며 조금씩 탁해질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혼을 가진 신들이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불에 던지는 것이다.


아르카는 안타까움에 몸부림쳤다. 운이 좋거나 무게가 가벼이 여겨지는 영혼은 억겁의 시간을 견디는 것으로 벌을 받는다. 후에 어렵사리 다시 태어나도 빛나지 못하고 죽기를 반복하다 결국 소멸할 그들을 지켜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인간의 신은 자비롭지 못했다. 나름의 얄팍한 기준을 세우고 충족하지 않는다면 악하다고 판단했다. 선하지 않다면 그것은 죄다. 그래서 인간의 혼을 가진 인간의 신은 계약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 안에서 자신을 돕는 존재를 만들어냈다.


자신들의 범위를 벗어나기 위해 소통이 가능한 인간들을 찾아 구원을 가장한 무자비함을 회개와 용서로 둔갑시켜 벌을 내렸다. 인간들이 말하는 전지전능한 신은 불쌍한 혼의 구원보다 악의 영원한 소멸을 택했다.


어둠이자 빛의 연인인 나이트는 내내 무관심했다. 그들 스스로 만든 문제다. 어느 것 하나도 강요한 적 없다. 죽음을 자초하였으면서도 영생을 바라다니 인간은 참 어리석고 나약하다. 그들의 행복이 무엇인지 진짜 신도 알 수 없는데, 무슨 수로 그들을 구원한단 말인가.


아르카가 모습을 감추고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졌을 때 나이트는 분노했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존재임을 잊은 것인가? 비뚤어진 채로 모든 것이 유지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무책임하다고 여겼다.


그래서였다. 그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한 번도 귀 기울인 적 없던 인간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 작고 작은 연약한 그 목소리들.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들이 감당하기 힘든 바람이 되어 숨을 턱 막았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신이라 불리는 혼의 소리, 그들과 함께하는 인간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지켜보았다.


그렇게 그녀를 만났다.


***


닫힌 창문 틈으로 기이한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바람이 반가울 지경이다. 영원은 세운 무릎 사이에 얼굴을 기대고 있다가 가만 높은 창문을 올려보았다.


겨울이 오고 있다. 아빠는 일주일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고 냉장고엔 물 한 병도 남지 않았다. 꼬물거리던 발가락 끝에 빈 생수병이 걸렸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간 플라스틱병 안으로 개미들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보였다.


“다른 곳으로 가. 여긴 아무것도 없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말을 괜히 한마디 뱉고는 다시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학교 가고 싶다.’


입을 옷도 먹을 음식도 없는 어둡고 추운 더러운 집을 떠올린 영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바라는 것이 많아지면 괴롭기만 하다는 것을 깨달은 열두살의 여자아이.


눈앞이 흐려지고 이따금 머리가 울렸다. 그 빈도는 점점 잦아지고 회복되는 속도가 느려진다. 어쩌면 영원도 알고 있다. 이렇게 잠들어 깨어나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철저한 방치와 방임 속에 홀로 죽어가는 어린 여자아이는 밖으로 나가 도움을 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말라가는 중이었다. 나이트는 아이의 곁에 머물다가 홀연히 사라지길 반복했다. 존재를 드러낼 수도 어떤 물리적인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니 할 수 있는 건 머무는 것뿐이었다.


바람으로 다가와 아이의 숨을 확인하고 한낮의 짧은 온기로 다가와 뛰는 심장을 느끼기도 했다. 며칠이나 그랬을까 나이트에겐 찰나보다도 짧은 시간이지만, 오랫동안 굶은 인간 아이에게는 억겁이었을 시간. 아이의 생명에 끝이 보이고 있었다.


이 작은 아이는 곧 죽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온화하기만 한 아이의 감정에 나이트 또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런 이유로 계속해서 아이의 곁을 맴돌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육신과 혼이 모두 연약하기 때문에 함부로 나이트와 마주했다간 그 자리에서 소멸하고 만다. 그럼에도 삶을 다 한 아이의 혼을 거두어 조금 더 빨리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하고 싶어?


초겨울의 찬 바람이 낡고 좁은 창문 틈으로 들어와 아이의 체온을 빼앗는 것이 싫어 그것들 틈에 섞여 약간의 온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나이트는 중얼거렸다. 어차피 인간 아이에겐 들릴 리 없...?


“모르겠어.”


퍼석하지만 얇고 앳된 아이의 목소리가 답했다. 놀란 나이트는 움직임을 멈추었고 찬 바람은 기회를 잡은 것처럼 아이의 몸을 휘감았다.


갑자기 느낀 한기에 영원의 몸이 한층 더 작아졌다. 무릎을 끌어안았지만 바닥에 닿은 어깨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 내 말이 들려?


나이트는 바람을 어루만지며 그만하라 타이르듯 달랬다. 아이의 곁으로 온기를 직접적으로 넣으면서 아이의 앞에 조용히 앉았다.


“응. 넌 누구야? 네가 오면 몸이 따뜻해져. 그래서 알아.”


- 누구일 것 같아? 뭐가 보여?


축 늘어진 고개를 조금 젖히며 드러난 영원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 엄마.”


짧은 단어가 나이트의 깊은 곳에 닿았다. 무엇인가를 그렇게 부르거나 불릴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 네 기억엔 엄마가 없어.


“날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했어. 내가 이제 엄마한테 갈 때가 되어서 엄마가 날 데리러 온 줄 알았어.”


영원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정확히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넌 나처럼 작은 아이네.”


영원의 모습을 한 나이트였다. 놀랐다는 얼굴을 한 나이트에게 영원은 짧은 손을 뻗었다. 고민했다. 어차피 꺼져가는 생명이니 잡아볼까? 하지만 백이면 백 손 쓸 틈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기엔 너무나 아까운 영혼이다.


- 안돼. 손은 잡을 수 없어.


“왜? 내가 너무 더러워서?”


- 아니. 네가 위험해져서.


힘이 빠지는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영원의 팔 아래로 작은 구름 쿠션 같은 것이 피어났다가 사라졌다.


“괜찮은데….”


지금 이 상황만으로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나이트다. 본래의 모습이랄 건 없지만 어쨌든 저를 느끼고 보는 인간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으니까. 아르카와 함께 만든 여럿의 혼 중에서도 기운이 강한 몇만이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 엄마 ….”


나이트는 영원이 막연히 상상하던 엄마의 모습을 하고 그녀의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영원의 눈엔 그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기도 하고 꿈처럼 흐릿하기도 했다.


보고 듣고 대화를 나누기까지 하는데 잠깐 닿는다고 먼지처럼 사라져버리진 않을 거라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나이트는 손을 뻗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환히 웃던 영원이 나이트의 뻗은 손 위로 덥석 작은 손바닥을 올렸다.


“잡았다.”


- … 어 … !


“엄마 맞잖아. 난 꿈을 꾸고 있어? 엄마랑 같이 가는 거야?”


나이트는 천천히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손길을 느끼는 영원의 뺨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앙다문 입술을 톡톡 두드려 보기도 했다.


- 아니. 넌 죽지 않았어.


아이다운 천진한 미소로 영원은 헤실거렸다. 다 상관없다는 듯이 다 괜찮다는 듯이. 나이트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구름처럼 모습이 흩어져 영원에게로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를 안고 허공에 띄워 선선한 공기로 감쌌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따뜻한 인간의 체온이었다.


까무룩 정신을 잃는 영원의 기억을 헤집어 그녀가 원하던 집을 찾아낸 나이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숨에 만들어냈다. 내 품에 안긴 이 아이는 끝내 살 것이다. 이 아이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 나를 보고 나를 만지고, 내가 안아도 죽지 않는 인간의 아이가 아르카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 아르카. 네가 왜 인간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알 것도 같아. 네가 본 것을 이제 나도 보고 있어.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