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영원

by 정혜원

02.


영원은 책을 쾅 닫고 일어나, 닫힌 문을 응시했다. 묘한 흥분감이 감돌았다. 소곤거림은 곧 고함으로 번졌고, 한 남자의 절규가 머릿속을 쾅쾅 두드렸다. 나이트가 반응한 건 엄청난 불안이었다.


영원은 저벅저벅 큰 보폭으로 걸어 닫힌 방문을 열어젖혔다. 거실로 통하는 벽이 있어야 할 곳에 낯선 공간이 펼쳐졌다.


천장까지 닿는 책장이 문을 제외한 모든 벽을 둘러쌌다. 각기 다른 크기의 칸마다 책들이 빼곡하게 자리했다. 그곳도 모자라 바닥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아 둔 책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라곤 입구에서 책상까지 걸어가는 길이 전부인 넓은 방.


남자는 등받이가 넓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손톱을 잘근잘근 뜯었다. 어두운 모니터에 비치는 제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 있었다.


웅크린 남자는 허벅지와 배 사이에 꼭 끼어 있는 작고 네모난 무언가를 힘껏 안으면서 연신 가쁜 숨을 쉬었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방은 매우 조용하고 건조했다. 책들이 내뿜는 기운에 잠식당할 듯 남자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때 조용히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건 빛이 아니다. 어둠 뿐인 집. 남자는 작은 인기척에 놀라 중얼거렸다.


“… 엄마?”


영원의 걸음은 미끄러지듯 부드럽고 존재감이 희미했다. 문이 내는 소리보다도 작은 기척에 손톱을 물어뜯던 남자, 강훈의 두려움이 영원과 나이트를 동시에 휘감았다.


나이트의 공명이 조금 더 강해졌다. 영원에게 들러붙는 무채색의 기운들을 거두며 그녀를 숨기는 나이트는 어두움으로 함께했다.


영원은 작은 숨을 뱉었다. 남의 것을 빼앗을 그릇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 왜 이런 짓을 벌인 걸까.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여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 감정을 활활 태우는 주제에 대체 왜?


- 사랑받고 싶어서.


하지 않은 질문에 나이트는 친절히 답을 해주었다. 영원을 휘감은 나이트의 기운으로 인해 강훈은 영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더 불안정해진 강훈의 감정들이 길을 잃고 이곳저곳으로 날뛰었다.


‘누구에게.’


- 그를 낳은 여자.


영원은 걸음을 멈추고 강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절박하게 나이트를 찾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을 찾고 있다. 그 감정의 파동에 나이트가 반응한 것이다. 영원은 강훈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나이트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강훈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인영에 화들짝 놀라 쪼그리고 앉은 자세 그대로 폴짝 뛰어올랐다. 눈을 비비고 다시 저를 보는 모습이 한없이 연약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불쌍한 것은 아니다. 그의 사정은 그의 사정이고,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다른 문제니까.


영원은 손을 뻗어 그의 손등 위에 손바닥을 포개었다. 강훈의 눈이 스륵 감기며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이트는 강훈의 몸을 잠시 멈추었다가 가만히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의 미간이 펴지며 평온한 얼굴이 되었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가 싶더니 이내 딱딱히 굳었다.


영원은 강훈에게서 손을 떼며 바로 섰다. 이 자를 평생 괴롭히던 강한 불안과 집착, 욕망, 욕구 따위의 감정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계속해서 괴로워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라진 감정의 자리에 남아있는 죄책감과 후회, 아쉬움 등의 잊고 있던 것들이 자리 잡을 것이다. 엄마에게 사랑받으려 더는 노력하지도 죄를 짓지도 않을 것이다.


영원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다. 무언가 불편한 듯 짜증이 섞인 묘한 얼굴로 남자와 나이트 사이에 서 있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이 없던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신은 공평하지 않아. 보지도 않으면서 죄의 무게만을 두고 비교하는 건 이상해.”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나이트의 존재가 답이다. 정말로 내가 미쳐버려서 환영과 환청을 보고 듣는 상태가 아니라면 분명히 나이트는 존재하고, 그 존재가 무엇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괜히 속이 뒤틀리고 화가 치밀었다. 요 며칠 연달아 만난 억울한 죽음들 때문일까.


- 그들은 인간이야.


“인간?”


- 나와 나의 연인이 있고 우리가 만든 존재들이 있어. 그 존재들이 만든 영혼이 인간이고, 인간이 말하는 신은 우리가 만든 존재들에게 힘을 부여받은 인간의 영혼이야.


“역시 불공평한 건 인간이네.”


여인의 모습을 한 나이트가 영원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러자 영원은 강훈의 손을 잡기 전처럼 존재감이 옅어지고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렇게 작은 움직임으로 그의 집을 빠져나갔다.


문밖을 나가자 다시 책을 읽던 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영원이 넓은 소파에 몸을 던지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그녀의 곁으로 작은 바람이 불었다.


- 묻지 않아?


나이트의 질문이 귓가에서 울렸다. 영원은 피식 웃었다. 눈을 감고 그의 기척을 느꼈다.


‘당신이 무엇이든 상관없어. 말로만 듣던 천사나 악마 같은 거라도 아무 상관 없어. 지금 내가 선행을 하고 있든 악행을 하고 있든 상관없어. 두려웠던 적도 있었는데, 변하는 건 없어. 그날 내 손을 잡고 날 안아준 것이 악마였더라도 나를 살게 해줬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지금의 삶이 감사할 뿐이라고 한다면 나이트가 악마라고 하더라도 그를 부른 건 사실 악한 마음으로 가득한 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영원이었다.


‘나이트. 당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나를 지켜주니까 …. 그거면 돼.’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된 넓은 공간에 있는 거라곤 커다란 소파와 커다란 책상이 전부인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층 빌딩의 가장 높은 이곳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롯이 영원을 위해 만든 그녀만의 공간. 영원은 몸을 일으켜 창 앞에 섰다. 캄캄하지만 전혀 어둡지 않은 도심은 늘 그렇듯 빠르고 소란스럽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가만 서 있는 영원의 옆으로 여인의 모습을 한 나이트가 다가왔다.


시끄럽지 않은 곳, 시끄럽지 않은 시간, 시끄럽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그자는 빼앗긴 걸 돌려받을 수 없어.


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겁에 잔뜩 질려 신을 찾던 강훈이 빼앗은 작품은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알고 있다. 인간과 나이트 사이에 서 있는 동안은 신이라도 된 듯 잡은 손을 통해 한 인간의 삶이 그대로 들어온다.


강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불안정하고 불행하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겁쟁이를 만들었다. 자신의 의지는 하나도 없는 삶. 그저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엾은 인간. 영원은 그의 삶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힘들겠네.”


강훈에게 빼앗긴 소설의 주인의 부름이 점점 커진다. 눈살을 약간 찌푸릴 뿐 덤덤한 영원의 곁으로 작은 바람이 일었다. 하지만 영원의 긴 머리카락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하얀색인지 하늘색인지 구별되지 않는 천을 두른 여인의 모습인 나이트의 머리카락과 옷자락만이 나풀거렸다. 나이트는 두 팔을 벌려 영원을 끌어안았다. 한없이 작고 소중한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와 같았다. 영원은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느꼈다.


- 너 또한.


나이트는 진심으로 영원을 안타까워했다. 영원의 무릎이 스륵 무너졌다. 창 너머에서 들리는 무수히 많은 목소리가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걸 안다.


나이트의 움직임은 바람과 닮았다. 날리는 옷자락이 영원의 몸을 들어 올리듯 부드러운 움직임을 계속했다. 그녀의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아 올려 허공에 누운 모양새가 되었지만, 영원은 무심하게 몸을 맡길 뿐이었다.


“나이트.”


영원의 부름에 나이트는 답하지 않았다.


“알아. 내가 원할 때마다 이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게 해주는 거. 언제쯤이면 당신처럼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게 될까?”


나이트가 영원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볼륨을 줄인 듯 사그라드는 목소리들에 영원은 희미하게 웃었다.


고통에 찬 비명들, 분노에 찬 고함들, 슬픔으로 가득 찬 울음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또 헤집는다. 각오했던 일이었다. 나이트의 손을 잡았을 때부터 시작된 이 부름. 원하는 건 무엇이든 주겠다는 약속을 믿은 순간부터 감당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이트는 영원에게 고통스럽다면 들리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 목소리들은 분명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무의미하고 건조한 마음으로 ‘나는 살아 있는 게 맞긴 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마다 친절히 답을 해주었다. ‘넌 아직 살아 있어.’


영원의 의식이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며칠에 한 번씩 영원은 이렇게 기절하듯 잠에 빠진다. 아니 나이트가 그렇게 만든다. 10년 전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절하곤 했다. 가끔은 울거나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어린 영원은 다른 인간과는 확실히 달랐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는 신을 찾는 인간들의 온갖 외침을 함께 듣고 수많은 감정을 공유했다. 나이트의 예상을 벗어난 연약한 한 인간. 나이트는 잠든 영원을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 듣고 싶지 않다고 하면 돼. 느끼고 싶지 않다고 하면 돼.


영원은 고집스럽게 그 말을 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우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알려주었을 때 영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침묵으로 얻은 수많은 욕망이라고 했던가. 이를테면 오래 공부해도 남들보다 덜 피곤했던 일이라든지, 스스로 세운 계획대로 순조롭게 일이 풀리는 삶의 모든 시간 같은 것들.


욕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소하고 하찮았다. 그런데도 이 가여운 인간 아이는 특별하게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이트에겐 찰나라 부르기에도 짧은 시간이지만 인간에겐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아이는 스스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 노력했다.


인간을 이해하는 건 너무 어렵다. 아니, 이 작은 아이를 이해하는 일이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


5년 뒤, 영원 스물일곱.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나무 의자 위로 털썩 앉은 영원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봤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조용하고 서늘한 부검실도 좋지만, 한낮에 잠시 즐기는 뜨거운 열기도 괜찮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정면을 바라보니 영원의 하나뿐인 친구 선미의 차가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오전에 부검을 마친 중년 남성의 사인을 확인하러 오는 게 분명했다.


그 남자는 선미의 상사인 서울지검 부장검사 이민철의 동생 이한철이다. 검찰 서기관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갑자기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살했다고 했다.


현장에서 범죄 소견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유족의 요청에 따라 병원에서 부검을 진행하지만, ‘특별히 자살할 이유가 없다.’라는 이유로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다소 권력이 담긴 부검 요청서를 받았다.


빨간 원피스에 굵은 웨이브가 가득한 긴 머리카락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화려한 외모의 선미는 굽이 높은 힐을 신고 시원한 보폭으로 건물을 향해 걸었다. 영원은 그런 선미를 보며 히죽 웃었다.


‘누가 저걸 검사로 봐.’


영원은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꺼냈고, 곧이어 출입문 앞에 선 선미가 가방을 뒤적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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