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나 도착했어! 올라갈게!”
선미의 밝은 목소리에 영원은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학교 다닐 땐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면서 홀연히 법대에 들어가 친구들을 놀라게 했던 괴짜 녀석.
“뒤돌아봐. 나 벤치에 있어.”
영원은 선미의 답을 듣지 않고 통화를 종료했다. 빌려준 돈 받으러 오는 사람처럼 보폭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는 선미의 얼굴엔 성난 걸음과 대비되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커피를 크게 한 모금 마시는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선미는 영원의 손에 들린 커피를 낚아채며 털썩 주저앉았다.
“어때?”
선미는 등을 깊이 기대고 큰 숨을 내쉬었다.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그 형태가 어떻든 쉽지 않은 일이니까. 영원이 물었다.
“달라지는 게 있을까? 불의의 사고를 당했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든, 스스로 숨을 끊었든.”
영원은 법의관이 된 뒤로 자주 생각했다. 결론은 늘 같았다. 죽음은 똑같다. 영원도 선미처럼 큰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녀의 질문을 곱씹는 선미의 시선이 조금 전 영원처럼 나무 위를 향했다.
“의지로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죽음도 의지로 이를 수 없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고든 질병 때문이든 노화든 뭐든. 자살과 타살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야.”
선미의 말을 듣고 영원은 생각했다.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으니 악착같이 살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영원은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가족들이 타살이라고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목을 그었으니까.”
보통이라 말하긴 뭐하지만,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정했을 때 흔히 하는 행동이 있다. 목을 매달거나, 독극물을 마시거나, 손목을 긋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 정도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 칼을 들고, 깊고 길게 목을 그었다.
“도박 빚이 많아. 월급은 압류되고 채권자들이 매일 집이고 회사고 가리지 않고 찾아오니 힘들었을 거야. 그동안은 여기저기 빌려다가 돌려막기도 하고 그러면서 버텼는데 이제 한계가 왔던 거지. 가족들 눈치가 이전 같지 않으니까. 모두가 다 알아버리기 전에 끝낸 것 같아. 근데 부장님은 그거지. 도박 빚이 수백억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갚아줄 능력이 충분히 되는 가족이 있는데 왜 도움을 구하지 않았느냐는 거야.”
씁쓸함이 묻어나는 선미의 목소리에 많은 감정이 덧입혀졌다. 밥 먹듯이 사건 현장을 들여다보면서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그녀에게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일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다.
“채권자들이 해코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럴 수도 있지. 가족들은 애가 탈 거야. 누굴 원망하고 싶을 텐데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라면 그럴 수 없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비극이야.”
영원은 말을 잇기 전 잠시 뜸을 들였다.
“… 스스로 목에 칼을 대고 죽을 만큼 강하게 그었어. 피가 사방으로 뻗어나갔을 거야. 경동맥이 완전히 잘렸거든.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걸까? 스스로가 너무 끔찍해서 아주 잔인하게 죽여 버리고 싶었던 걸까? 어떤 것이든 제정신으론 할 수 없어 ….”
영원은 말끝을 흐렸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선미는 영원의 커피를 반 이상 빨아들였고, 영원은 조심스러웠다.
“마약이 검출됐어. 죽기 전 15시간 이내에 몸속으로 들어간 거야. ”
선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계속하라 재촉했다.
“들어봤지? 아주 소량으로도 엄청난 환각을 일으키는 신종 합성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양의 3배가 넘는 양이었어. 시신이 발견되고 부검할 때까지의 시간을 고려했을 때 실제 투약은 적어도 그의 10배.”
약에 취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검찰에선 한국이 더는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오명을 씻어 보겠다고 법률제정이나 처벌 수위를 높이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 중인데, 현직 부장검사의 가족이 그것도 같은 검찰청 직원이 마약을 복용하고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언론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선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스스로 목을 그은 건 사실이지만, 그가 스스로 목을 그을 수 있도록 도와준 약물도 스스로 투약한 거라고 장담할 수 없어.”
선미가 고개를 홱 돌려 영원을 쳐다봤다.
“무슨 말이야?”
“위장이 녹을 만큼 많이 먹었어. 혈관을 타고 들어간 양도 어마어마한데 주사 자국은 하나뿐이야.”
혈중 농도는 높았지만 주사 자국은 단 하나. 그마저도 귓불 아래 흉쇄유돌근 라인. 보통의 자리와는 어긋나고 있었다. 영원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여 귓불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목선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멀미약 정도를 붙일 법한 위치.
“여기. 너 여기로 주사 맞는 놈 본 적 있어? 마약사범 많이 보잖아.”
선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스로 제 목을 찔러 마약을 주입한다? 본 적 없다.
“두꺼운 바늘이야. 주사기 자체가 크다는 소리겠지. 괴로움에 못 이겨 스스로 목을 벤 거야. 고통을 끝낼 방법은 죽음뿐이라고 누군가가 손에 칼을 쥐여줬을지도 모를 일이고.”
영원이 이번엔 팔을 들었다.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의아한 눈빛을 보내던 선미의 시선을 제 팔꿈치로 유인했다. 잠시 생각하는 듯 입술을 깨물던 선미의 시선이 영원의 눈동자에 닿았다.
“잡았구나!”
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꺾인 영원의 팔꿈치를 잡은 선미의 손가락 끝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대로 힘주어 네 목을 그으면 된다고, 위장이 녹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을 겪는 사람의 팔을 잡아줬구나.
“자살은 맞지만, 그것을 종용하고 거들었던 누군가가 분명히 있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벌떡 일어난 선미는 늘 그렇듯 성이 잔뜩 난 걸음으로 멀어졌다. 영원은 그녀의 멀어지는 등을 보며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수고해.”
점심시간은 짧기에 매력적이다. 놓칠 수 없는 달콤한 시간이다. 선미를 보내고 영원은 얼음들 사이사이 찰랑거리는 커피를 호로록 소리를 내면서 마셨다.
잠시 잠잠했던 매미가 다시 구애 활동을 시작했는지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영원은 고개를 젖히고 늘어진 자세로 눈을 감았다.
“나이트. 또 무서운 일이 벌어졌어.”
바람 한 점 없는 여름의 한 낮. 영원의 주변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일었다. 등줄기를 타고 맺히려던 땀이 조금씩 사라졌다. 나이트는 바람이 되어 나뭇가지와 나뭇잎들 사이를 노닐었다.
평화로운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나이트보다 영원이 먼저 반응하는 경우도 있을 만큼 둘은 하나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
바람이 잦아든 자리, 누군가는 칼을 들었다.
“말해.”
당장 입을 열지 않으면 눈빛에 베여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 만큼 서늘하고 날카로운 태영의 눈이 빛났다.
“정말 몰라.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게 누군지 말해.”
발목을 잘린 남자의 입에서 울컥하고 토사물이 넘어왔다. 무릎과 허리에 힘이 빠져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은데 태영이 잡은 셔츠 깃의 움직임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남자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입은 절대 열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아래로 내려 자신의 안쪽 주머니를 가리켰다. 태영은 천천히 남자의 옷 안으로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뒤집힌 전화를 돌려 화면을 확인한 태영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컥!
태영은 남자를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곳곳에 쓰러졌던 남자들이 꿈틀거리며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태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원하는 걸 얻었으니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할아버지야? ]
케인. 태영의 귓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작은 기기 속에 사는 하나뿐인 친구.
“응. 유감스럽게도.”
[ 예상했던 일이잖아. ]
태영이 소매를 툭툭 털면서 일어나 눅눅하고 크기만 한 낡은 건물을 나서자 하얀 승용차 한 대가 그의 앞에서 멈추어 섰다. 여러 생각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딸과 사위를 잔인하게 죽인 것으로도 부족한 건가? 15년을 찾아다니는 정성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다. 차에 올라탄 태영이 거칠게 타이를 흔들어 늘어트렸다.
“사무실로 가.”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짧은 답을 끝으로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태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비서를 지나쳐 사무실 손잡이를 잡았을 때 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사망 하나. 중상 여덟 부상 열넷. ]
“응.”
태영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살인자 따위, 그 살인자의 추종자들 그 짐승같은 놈들의 목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열기가 식지를 않는다. 하나뿐인 핏줄을 죽이고 싶어 혈안이 된 늙은 영감탱이. 손주를 죽이고 싶어 하는 주제에 본인은 죽고 싶지 않은지 꼭꼭 숨어 찾아낼 수가 없다.
‘꼭꼭 숨어라. 반드시 죽일 거니까.’
말없이 담배만 피워대는 태영의 모습을 빼곡한 모니터를 통해 다양한 각도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잔뜩 화가 난 친구의 꼴을 보니 어쩐지 케인은 안심이 되었다.
아직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충분히 보호받고 있다. 이태영은 벽장 속에 숨어 울지도 못하는 친구를 찾아낸 그날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이나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름을 바꾸고 삶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엄마의 숨을 끊고 아빠의 심장을 뚫었던 그날의 모든 것이 아직 또렷하다. 할아버지의 컴퓨터에 접속해 카메라를 켜 해맑게 인사를 건넸던 다음날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 시간 됐어. 그만 열 내고 준비 해. ]
태영은 느슨한 넥타이를 고치고 아무렇게나 던졌던 옷을 챙겨 입었다. 하필이면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에 속 시끄러운 일이 생겼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어디?”
[ 1 회의실 ]
이탈리아계 미국인이기 이전에 한국계 혼혈인 태영은 이국적인 느낌이 적어 동양인처럼 보인다. 엄마와 할머니가 모두 한국인인 탓이 크겠지만,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 익숙하지만 낯선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한수르 가문을 이을 유일한 남자 태영은 아카디안 그룹의 차기 수장으로서 한 발 더 내딛기 위한 자리에 간다. 보이진 않지만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케인과 함께.
이번 프로젝트가 무사히 진행된다면 케인의 고향인 한국에 간다. 친척을 찾아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 정보원이던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야 했다.
반면 이번 프로젝트가 무산되더라도 한국에 갈 예정이다.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회의실로 가는 내내 태영은 복잡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괜히 고개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손목을 탈탈 털어 기분 나쁜 기억을 던지듯 굴기도 했다. 회의실 문이 열렸을 때 태영은 평온한 얼굴로 옅은 미소를 띠었다.
“시작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