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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음 Aug 02. 2023

눈물이 헤픈 사람

감정은 다스려야 할까, 보듬어야 할까.


  오후의 여유로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간만의 연차거든요. 오늘은 매년 돌아오는 아버지 기일입니다. 이날이 더는 슬프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돌던 시기는 지난 듯 하네요(어쩌면요). 재즈를 틀어 두고 차분한 마음으로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이쯤 시간이 무색하다는 고리타분한 말을 꺼내야겠습니다. 그날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어"라는 싸구려 위로를 건네고 "네가 이제 가장이다" 같은 막중한 책임감을 전하던 어른들과는 연락하지 않습니다. 손 뻗으면 꼭 잡아줄 것만 같았던 사람들의 무심함에 서운함을 느낄 여력도 없으니까요. '혼자 사는 세상 아니잖아?'라는 유명한 말도 있다만 정작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미담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동정은 쉽고 도움은 어려우니까요. 어머니는 기나긴 소송과 지인의 배신에 눈물이 늘었습니다. 태생부터 말랑한 감수성 탑재 인간인 저 역시 덩달아 마음이 축축해지곤 합니다.

  눈물이 헤픈 저는 웃음도 많습니다. 힘들 때 도리어 헛웃음을 짓기도 하고 때로는 별것도 아닌 일에 복부 근육이 당길 정도로 박장대소하기도 합니다.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웃음을 나누면 배가 되고 눈물은 절반이 된다는 격언이 떠오릅니다. 서로 슬픔을 덜어주고 기쁨을 보태 주지는 못하더라도 감정 표현에 솔직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슬프다. 기쁘다. 괴롭다. 행복하다. 이런 말이 촌스럽게 여겨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얼마 전 점심시간의 일입니다.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어쩐지 신이 나서 배시시 웃으며 사무실을 배회하니 선배가 "기분 좋아요? 맑다. 맑아"라며 어이없다는 듯 덩달아 미소 짓더군요. 피부가 새하얀 눈처럼 뽀얗고 웃을 때 드러나는 반달 모양 보조개가 참 예쁜 선배입니다(맑은 눈의 광인 같다는 의미는 아니길 바랍니다). 맹한 인간처럼 보였을까 봐 잠시 걱정하다가 아무렴 좋다고 정신 승리를 이룹니다. 감정을 억제하고 제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순간에는 어쩔 줄 몰라 꽁꽁 숨거나 끙끙 앓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는 마음을 꼭 붙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럴 때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자고 다짐하곤 했지요. 앞으로는 보듬어 줄 생각입니다. '다스리다'의 유의어는 '거느리다'고, '보듬다'의 유의어는 '보살피다'입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우리말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나저나 모르는 단어가 생기면 꼭 국어사전에 의미를 검색해 보라고, 유의어나 반의어도 살펴보라고 알려준 선배도 같은 분입니다. 좋은 습관을 들이게 해 준 선배에게 고맙습니다.

  오늘 기분은 '맑음'입니다. 아까는 어머니가 장을 보고 와서 사소한 일에 "잘했지, 별점 몇 점이야?"라고 제게 평점을 물어봅니다. "응, 별 두 개"라고 답하고 둘다 웃었습니다. 오전에 한바탕 싸운 터라 우리 대화가 더 어이없습니다. 종종 통화할 때 울먹이는 어머니에게 그만 좀 하라며 볼멘소리를 퍼붓는 못난 딸이지만 오늘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눈물이 헤픈 사람보다 웃음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눈부신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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