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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May 30. 2021

네가태어나기까지

#025스물다섯 번째이야기


2020년 12월 15일 낮 11시 50분, 지오르지오 Giorgio와 나의 세 번째 아이 이안 Ian이가 태어났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에서 하나의 생명이  몸속에서 만들어져 우리의 품에 안기기까지 40주라는 경이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 이안이를 연결해주던 탯줄을 끊고, 이제 이 아이의 독립된 계체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제왕절개 수술을 한 나를 배려한 남편 지오르지오 덕에, 1주일간은 레스토랑 관계로 렌트하고 있는 바다 앞에 있는 집에서 지내며 몸을 추스려 본다. 언제나 커뮤니티 가족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던 율이와 가이아도 우리의 새 식구인 이 조그마한 동생 이안이와 함께 지내는 1주일 동안 가족에 좀 더 집중하고, 어떻게 하면 서로가 도와줄 수 있는지 배워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곁에 새로 온 이안이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간다. 하루도 친구들과 떨어져서 지내는 것을 상상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커뮤니티가 있는 집시의 집으로 한나절을 보내러 나갔다.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이 떠나가고 병원에서처럼 이안이와 나만의 조용한 시간이 생겼다. 이로써, 처음으로 이안이를 안고 집 앞의 바다로 산책을 나서본다. 1주일채 안된 이 조그마한 아이는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바다가 선사해 준 이 평온함과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생각에 잠겨본다.

 


예전 부족사회에서는 단순하지만 무엇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지, 자연의 이치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고 삶의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법을, 처음으로 내 몸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생김을 계기로,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 첫째 아이 율이머리가 밑으로 내려오지 않아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며칠을 우울해했었더가? 이런 나를 남편 지오르지오는 `예전 같았으면 아기도 엄마도 목숨이 위험했을텐데, 의료 기술의 발달 덕에 간단한 수술로 모두가 살 수 있으니, 중요한 건 어떻게 나오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무사히 나오는 거`라고 몇번이고 나를 설득하곤 했었다. 허나, 일명 황소고집인 나는 그렇게 쉽게 설득되지 않았었다.


둘째 아이인 가이아가 태어날 때에는  어떠했던가? 다행히 아이의 머리가 밑으로 내려왔고, 이로써 자연 분만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재왕 수술 이후에도 자연분만하는 사례들을 조사해가며 나와 남편을 설득했고, 이로써 몇 달을 친정 엄마와 장거리 전화로 싸우곤 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어가던 중, 예정일보다 열흘 먼저 양수가 터졌고, 응급실로 급히 갔으나, 진통이 오지 않는 관계로 24시간 기다린 끝에 결국은 수술실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세 번째.... 두 번의 제왕절개 수술을 한 이 여자가 세 번째에 자연분만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의사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다보는 것 같았다. 자연분만의 가능성을 상의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병원 시스템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잘 모르는 시기이니,,,,,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세 번을, 각기 다른 나라에서(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수술받은 나로서는,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어쩌면, 상황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달라진 것일까?

 

수술실에 눕혀져 있는 나와 이안이를 중심으로 많은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나의 새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서 자신의 역할에 힘을 다한다. 또한 내게 힘을 주기 위해서 상황들을 설명해주고 나를 안심시켜주는 섬세한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 인간적일 수가! 수술실에 모인 모든 스텝들에게 고마웠다.


이제사 돌아보니, 첫 번째 수술 또한 특별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스페인, 세비야의 병원 수술 대기실에서 환자복을 입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술받기 위해서 나는 눕혀져 있었다. 수술실에 옮겨진 나는 입술이 덜덜 떨려 두렵냐는 근심 어린 간호사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도 힘들었었다. 이런 나를 위해 따뜻한 미니 히트를 틀어주고 나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던 나이 지긋이 든 간호사. 그녀가 불러주던 노래는, 프랑크 정권에 반대 시위를 하던 한 여성이 갖 태어난 자신의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죽음을 맞이하는 비장하고도 슬픈 프랑크 시절의 스페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La voz dormida"에서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에서 이 여성은 한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자유와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사형 선고를 받은 그녀의 배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새 생명을 스페인 프랑크 정부는 죄가 없다고 여기고, 이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그녀를 살려둔다. 그리고 이 아기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사형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엄마는 이 아기를 위해 자장가를 불러준다. 무언가 상충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자장가는 내 가슴 깊이 새겨졌었고, 수술실에서 이 자장가를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hyxDiBbQKI


이탈리아에서 둘째인 가이아를 낳았을 때에는 어떠했던가? 예상치 못하게 진행된 수술에 가슴에 돌을 하나 얹어놓고 있는 듯한 느낌과 자괴감에 쌓여서 그때에는 미쳐 알지 못했었다. 그들의 누구보다도 신속하고 정확한 손길들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었고, 가이아가 나오자마자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위해서 가이아를 내 얼굴에 맞대어 아이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고, 이에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었더랬지! 또한, 남편 지오르지오가 수술실 바로 밖에서 바로 아이를 건네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배려들을. 이렇게 소소한 것 같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은 일들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또한, 포르투갈에서의 세 번째 병원행은 코로나로 인해 병원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갈지 잘 몰라 불안했었다. 더욱이, 남편을 비롯해 그 어느 누구의 방문도 허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포르투갈어가 서투른 나는 더욱더 불안했었다. 허나, 마스크에 그들의 얼굴은 반쯤 가려졌지만 그들의 인간미와 친절함은 가려지지 않았다. 또한, 포르투갈어가 서툰 내게 그들은 나와의 커뮤니켸이션을 위해 천천히 다시 얘기해주거나 영어나 스페인어를 쓰거나 번역기를 돌려 이탈리아 말로 보여주는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었다.


이렇게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배를 3번에나 갈라 보고서야 깨달은 것을 보면 정말 내가 황소고집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진짜 중요한 건 자연에 가깝게 낳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와 산모가 건강하고 무사히 나오는 것이었을진대,,,,,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 깨닫지 못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안이가 세상에 나온 지금,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 아이와 함께 할 세상을 우리 손으로 일구어가고 만들어 갈 생각에 다시금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아이들과 함께 해온 시간들과 커뮤니티가 아닐까 싶다. 2020년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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