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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Apr 26. 2022

나의 먹거리를 책임져라

# 025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줄리아 Julia..... 그녀를 "자신이 키운 동물을 직접 죽여서 가족 식탁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여자"라고 무턱대고 그냥 말해버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볼 만하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잔칫날이면 돼지나 소를 직접 잡아서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게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다. 한데, 지금은 고기나 생선이 동네의 정육점이나 대형마트의 고기 코너에서 비위 상하지 않게  잘 잘라서 편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게 포장되어서 소비자 앞에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이 고기들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아는 것 같지만 , 정말로 알고 있지는 않다. 마치, 한 이탈리아 다큐멘터리에 "Unlearning"에서 제작자 부부의 6살 난 아이가 닭을 그리는데 다리를 4개 그린 것처럼 말이다. 이들 부부는 슈퍼에서 언제나 닭다리를 구매하곤 했는데 닭다리가 네 묶음으로 판매를 했었다고 한다. 이를 언제나 보아온 이들의 자녀는 닭의 다리를 4개로 그리는 일이 초래하였다. 이는, 삶을 변화하기 위한 전환의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이처럼 많은 아이들이, 아니 아이들만이 아닌 어른들도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 밥상 위까지 올라오는지 직접 눈으로 보기를 원치 않는다. 핸드폰  클릭 몇 번 만으로도 준비된 따끈따끈한 음식이  내 밥상 위에 도착하는 너무 편해져 버린 현대 사회에서, 동물의 거룩한 죽음과 이를 먹어야 사는 포식자 간의 갭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https://youtube.com/watch?v=y17Y5jCkZuQ&feature=share

다큐 영화 unlearning 예고편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밖에서 외식을 하거나 이탈리안 셰프 남편님이 요리하지 않는 이상, 고기 요리는 하지 못한다. 어릴 적 충격적인 일들이 있어서 생고기들을 손으로 만지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채식주의 요리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요사스럽게도 누군가가 해주면 뻔뻔스럽게 아주 잘 먹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동물 테마로 하는 프로젝트에서 '닭의 최후와 삶과 죽음의 순환 관계'에 대해서 아이들과 풀어보는 것을 제안했을 때, 꽤 충격적이면서도 매우 흥미로웠다.



줄리아는 우선 삶과 죽음의 순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리며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태어나서 살아가다가 죽어서 거름이 되어 자연의 일부로 다시 돌아감을 인식시켜 주었다.


닭의 목이 양철통 구멍으로 나오게 하여 목 혈관을 끊어 피를 뽑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보통 그녀가 닭을 죽이는 나무로 인도해 주었다. 그녀가 오늘 도살할 닭을 가지고 오는 동안 정숙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한 생명이 다하는 순간 엄숙하게 그의 죽음으로 얻을 수 있는 귀한 음식에 감사하며 마지막 순간을 대면할 것을 부탁했다. 줄리아가 데리고 온 닭에게 우리들은 원시 시대에 먹을 것을 마련해 줄 동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듯, 그에게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줄리아는 바닥이 뚫리 양철통에 닭의 머리가 아래로 가도록 넣고, 목의 혈관을 칼로 잘라 , 닭이 적은 고통과 빠른 시간 안에 죽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게 천천히 닭이 죽어가는 모습을 우리들은 고요히 바라보았다. 전날까지, 비위가 약한 나로서, 닭의 이 비장한 죽음을 두 눈 뜨고 바라볼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와서일까? 그의 죽음을 작은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필터 없이 바라보고 받아들였다.

 

닭의 털을 뽑는 과정


그렇게 닭이 죽어 힘없이 쳐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닭 깃털 뽑기 시간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모두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아이들이 모두 나와 깃털들을 뽑으며 깃털로 인디언 놀이라던가, 펜촉을 만들거나, 눈발 날리듯 깃털들을 흩뿌리며 놀기 시작하였다. 역시 무엇 하나 버릴  없다더니! 그 다음으로는 불 토치로 몸에 남은 털들을 없애고, 펜치를 이용해서 닭 발톱들을 다 뽑아내었다.


닭의 내장들과 심장을 꺼내 아이들에게 설명중인 줄리아 Julia


그다음 순서로는 해부학 시간이 이어졌다. 줄리아는 닭의 목을 치고, 배를 갈라 심장과 내장들을 차례로 꺼내어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아주 흥미롭게 보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보기 힘들어 자리를 뜨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내장들을 이용해서 만드는 포르투갈 전통 음식이 있다고 하니, 정말 뭐하나 버릴 게 없다. 그리고 나머지 닭의 살코기를 이용해서 닭고기 수프를  만들어 동물 프로젝트 마지막 날에 다 같이 먹기로 하였다.


이렇게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한 생명이 죽어서 우리 밥상 위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들이 필요한지, 특히, 한 생명이 맞이하는 죽음의 모든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대면 함으로써, 우리의 밥상의 먹거리를 조금 더 의미 깊게 바라볼 수 있게 된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의 밥상 위의 먹거리를 모두 책임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일 거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실현하기는 너무 어렵다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시도한다면, 내가 키운 토마토나 채소들이 슈퍼에서 판매되는 것과 현저히 다른 맛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 , 거기서부터 변화가 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우리를 조금씩 바꾸어 나갈 것이라고.


그녀가 직접 키우는 병아리들을 인큐베이터에 데리고 가는 일을 돕는 아이들


여행이다 뭐다 하며 겨울 동안 내버려 두었었던 텃밭을 다시 갈고 모종을 심었다. 어느새 봄비로 소리 없이 쑥쑥 자란 토마토 싹과 호박잎,  콩 줄기들을 바라보며 새삼 자연이 안겨주는 선물을 경이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줄리아 Julia의 말대로 오늘 나도 우리 집 밥상의 한 구석을 책임져 볼까 한다.


P.s : 그녀는 현재 포르투갈의 Algarve에서 20년을 살아오며 10년 넘게 자신의 정원을 퍼머 컬쳐 Permaculture(자연의 섭리에 따라 농사짓고 생활하는 삶의 방식)의 삶을 실천해가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닭들을 키워 계란과 고기를 얻고, 염소들을 키워 매일같이 신선한 우유와 생치즈를 만들고, 돼지들을 키워 살라미나 훈제 고기들을 만든다. 또한, 우리들에게 열어준 동물 도살 워크숍을 열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가진 이들의 워크숍들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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