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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ul 23. 2021

자연, 너에게 말을 건다.

# 001 첫 번째 이야기

장기 프로젝트의 첫 발을 끊은 주제는 식물학이었다. 말이 거창해서 "식물학"이지, 계기는 간단했다. 집 밖으로 발을 내놓는 그 순간부터 아이들은 자연에 둘러싸인다. 자연히 주변에 피는 꽃들과 풀들, 나무들과 열매들이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고, 우리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이름 모를 풀들을 알아가고 싶었다.


언제나 거니는 산책길, 익숙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아이들


먼저, 아이들과 함께 풀들과 꽃들을 채집하기 위해서 산책을 나섰다. 겨울이라고 하기엔  봄 날씨 마냥 햇살이 좋은 남부 포르투갈의 작은 산책로로 길을 나섰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가는 마다 보이는 색다른 풀들과 꽃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항상 보아오던 풀들도 있었고, 예전에 함께 지내왔던 Odemira의 땅에서 채집해서 알게 된 풀들도 있었고, 이름 모를 새로운 풀들도 보였다. 이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채집도 하고, 곤충들 구경도 하고, 새들의 지저기는 소리도 듣다 보니, 어느새 오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잎의 모양에 따라 분류해 보기
수집해 온 꽃들과 잎들을 종이에 가지런히 놓아 말린다.


이튿날, 아이들과 채집해온 풀들을 한데 모으고 같은 종류들끼리 분류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이 중에 한 부분은 잘 말려서 채집 수집 책을 엮기 위해서 하얀 A4용지 사이에 넣어서 두꺼운 책 사이사이에 꽃아 두었다. 그다음 날에는 나머지 가지고 온 풀들의 모양과 뿌리의 모양에 따라 분류되는 종류의 이름들을 적어놓은 분류표와 Daniela가 준비해온 꽃과 나무의 구조를 바탕으로 한 퍼즐을 책상 위에 배치해 두었다. 이렇게 말없이 배치해둔 것들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식물 채집까지는 즐거워했었지만 분류 작업에는 관심이 없던 Federico와 율Yul이도 열심히 식물 이름을 알기 위해 App의 도움을 받아가며 찾아서 적어놓은 식물도감이 벽에 걸리자,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별도로 꽃, 나무. 잎들의 구조와 이름들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은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가지고 가서 해 볼 수 있도록 자료들을 준비했다. 집시의 집으로 단촐하게 들어오는 바람에 모든 걸 정리한 터라, 우리에겐 프린트기가 없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문구점이 문을 닫은지라, 복사할 길이 없어서 아이들을 위해 꽃, 나무, 잎들의 구조와 이름들을 직접 일일이 그리고 썼다. 여러 장을 반복해서 하고 있으니,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이것저것 하던 율이와 가이아도 엄마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성질 급한 율이는 그다음 날 친구들과 함께 해도 될 것을, 미리미리 다 해버리고 만다. 언제 하든지,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목적이니, 일단 목적은 달성했다고 해야 할까? 또한, 비주얼에 강한 율이는 자신이 해놓은 것들을 벽에 걸어두면 본능적으로 읽어 내려가는지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벽에 붙여놓았다. 반복을 좋아하는 가이아는 엄마가 한 것을 반복해서 그려보고, 글자도 제법 잘 따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복을 하니, 자연스럽게 나무, 꽃, 잎의 구조들의 이름들도 익숙해진다.

 


처음, 꽃들과 풀들을 채집하면서 뿌리 부분을 간과했었다는 것을 일주일 뒤 식물도감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우리가 만드는 식물도감의 뿌리들을 다시 찾아와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고, 관심 있는 몇몇 아이들이 자진해서 뿌리들을 캐서 가지고 와주었다. 또한, 평소에 광물들을 캐기 위해서 가는 몇몇 장소에서 아이들은 자연히 여러 식물들의 뿌리들을 땅속에서 캐내고, 뿌리의 종류들을 알아맞히는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뿌리 종류에 따른 분류
광물 캐러 가서 식물 뿌리들도 덤으로 캐오는 아이들
뿌리째 뽑아오기!

또한, 채집해온 풀들과 꽃들을 이용해서 판화를 찍어보기도 하고, 실제 풀들과 꽃들을 보면서 실사 그림이나 수채화를 그려 보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파스타 기계를 이용해 수집해 온 풀들과 꽃들을 판화 작업하는 과정


한창 아이들이 해리포터 Harry Potter를 좋아하기 시작하던 시기인지라, "마법의 묘약 만들기" 놀이를 Daniela가 구상했다. 이는 각 종이마다 한 식물의 특징이 적혀 있어서, 각자가 뽑은 종이에 적힌 식물의 특정 부위를 찾아서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재료를 가지고 오자, 마법의 묘약을 만드는 방법이 적힌 종이가 펼쳐졌다. 이로써, 모두가 가지고 온 재료들을 짜거나, 빻거나, 잘게 자르거나, 찧어서 테이블 위에 준비했다.

 

마법의 묘약 레시피를 읽고 있는 Nina와 자신의 미션 종이에 적힌 퀴즈를 풀고있는  Lçorcan
semi di caruba를 쪼개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망치로 시도 중인 아이들
각자 자신의 종이에 적힌 재료들을 가져다 놓았다.
마법의 묘약을 만들기 위한 레시피에 따라 쪼개고, 으깨고, 짜고, 떼어내어 준비된 재료들


묘약의 재료가 모두 준비되자, 아이들은 마법의 묘약을 만들기 위해서 재료들을 하나씩 넣었고, 마법의 묘약은 보물 지도 하나를 내뱉는다. 이 지도를 보고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원체 우리 땅을 어른들 보다도 더 훤히 잘 아는 아이들은 이미 어디에 가면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드디어 보물 지도에 X 표시가 된 위치에 모두가 도착을 했다. 아이들이 발견한 보물은 작은 투명한 통 안에 아이들 명수에 맞게 넣어놓은 초콜릿과 "식물학 놀이"를 도안해서 만든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5 종류로 나뉜 샐러드, 과일, 콩, 뿌리식물, 줄기 식물들 중 한 종류를 모두 가지게 되는 사람이 이기는 테이블 게임으로, 그리스 신화 테이블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직접 만들어 보았다.  아이들은 시간을 들여 얻은 보물을 만족스럽게 손에 들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 공간인 "Casetta°에 돌아와서 게임을 시도해 보았다. 이미 그리스 신화 테이블 게임에 익숙한 율이가 친구들에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아이들은 여태껏 3주에 걸쳐서 배워온 식물들을 놀면서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단 한 명도 뒤처지지 않게 함께 가기 위해서 작은 아이들부터 일렬로 줄을 서서 가기를 시도 중인 아이들
초콜릿과 함께 발견된 식물 테이블 게임
5종류로 나뉜 식물 테이블 게임 카드
초콜릿으로 배를 채우고 식물 테이블 게임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 율 Yul, Federico, Nina, Mailo


종강에는 뒤풀이가 있듯이, 마지막 주는 다 같이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는 시간으로 정했다. 식물학 시간이었던 만큼, 메뉴는 바로 야채 수프! 먼저, 준비된 재료들을 샐러드, 과일, 콩, 뿌리 식물, 줄기 식물이라고 쓰인 푯말에 분류해서 놓는 간단한 놀이로 시작했다. 각자가 준비해 온 칼과 도마, 강판에 재료들을 잘게 자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에 설레어하며, 고사리처럼 작은 손으로 야채들을 싹싹 잘도 잘라간다. 커다란 냄비에 잘게 썰은 야채들을 넣고 물과 소금, 후추, 약간의 올리브 오일을 넣고 30분을 끓였다. 아이들은 스스로 직접 요리해서 모두 함께 나눠 먹는다는데에 상당히 뿌듯해했다.

 

열중해서 진지하게 요리 준비중인 아이들


큰 냄비에 가득 채운 콩과 야채들


이렇게 한 달을 식물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끌어가면서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배우는 게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 주변을 거닐면서 평소에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풀들과 꽃들에도 더 눈이 가게 되었고, 익숙한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 이것이 배움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한 달 동안 함께 배운 것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 이후에도 계절이 바뀌는 풍경에 따라, 자연에 두 눈을 활짝 열고 이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언제나 자연은 아이들의 최고의 놀이 장소이자, 친구이며, 자신보다도 더 커다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커다란 스승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과의 놀면서 배워가는 프로젝트의 스타트가 시작되며, 나의 배움의 열정에도 불이 지펴졌다.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함께 배워가며 다시금, 새로운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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