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확 티가나고, 다 퍼주듯 모두 줘야 성이 차는, 사랑의 줄다리기처럼 제면서 하는 복잡한 연애에 서툰 아이였다. 이런 나의 뻔히 보이는 애정 방식은 매력적이지 않았거나 너무 쉬워서 싱거워 보였는지,남자복은 정말 없었다. 그래서인지 서로가 뜨거운 눈으로 응시하게 될 때면 끝도 없이 그 눈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현재 나와 함께 살을 맞대고 산지 10년이 된 나의 인생의 동반자인 지오르지오와의 연애 초반 때가 생각이 난다. 서로가 너무 좋아서 죽고 못 사는, 너무 가슴이 설레어서 같이 있으면 잠도 못 들던, 둘 사이에는 들어갈 틈도 없이 꼭 껴안은 채로 잠이 들던 그 시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오늘 밤은 혼자 지내고 싶다고.... 뭐??? 왜??? 그 말에 나는 상당히 많이 상처를 받았었다. 나를 밀어내는 느낌이랄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었던 걸까? 아니면 벌써 그의 마음이 식기 시작한 걸까? 이렇게 좋은데 왜 혼자 있고 싶다는 거지? 등등. 엄마에게서 버려진 아기 고양이 마냥, 상처 받은 나의 마음을 부둥켜안고 피해자인 양 그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었지만, 돌아오는 그의 대답을(너와 있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때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도 10년을 지내는 동안,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 볼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다. 아니, 이해해 볼 노력도 해보지 못하고, 그냥 상처 받은 마음을 돌보기에 급급해하지 않았었나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5년 텀을 두고 늦깎이로 태어난 셋째 아들 이안이와 지낸 지 거의 10개월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오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남편의 빡쎈 4개월 간 지속되는 여름 시즌 일이(남편은 여름 시즌에만 일하는 이탈리안 셰프이다.) 끝나가는 무렵, 남편만치 나 또한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꽤 지쳐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사랑스러운 셋째 아들 이안이는 아직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시기이다. 이런 이안이를 돌보느라 혹시라도 첫째 아들 율이와 둘째 딸 가이아에게 부족한 마음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느라, 정작 나 자신에게 할애할 시간은 엄두도 내지 않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며 온 나에게 마음속 저 깊숙이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라고.... 내가 요구하면 언제든 만들 수 있는 시간이었건만, 내게 써버리면 그만큼 아이들을 못 챙길까 봐 전전긍긍한 것일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상대방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이거나,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채움으로써 주변의 이들에게도 이를 나누어 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나의 불도저 같은 사랑방식은 나나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해자나 피해자처럼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첫째 아들이 태어나고서도, 둘째 딸이 태어나고서도 깨달았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변하지 못한 나였다. 어쩌면,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조금 더 자주 온다면, 어쩌면 모 아니면 도 같은 성격의 나도 변할지도? 10분이든, 30분이든, 1시간이든, 2시간이든 나만을 위한 고요하고 은밀한 대화의 시간을 마련해,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본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편지를 써본다.
내 카메라에 내 사진이 없는게 너무 당연한 듯 살아온게 미안해서 다시 나를 예쁘게 찍어주고 싶었던 날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