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선생님이 될 수 없는 현실 육아의 세계
육아의 단추가 언제부터 잘못 끼워졌을까. 큰 아이를 태교 하던 때 그깟 토익공부를 한다고 무리해서 앉아 있어서 일까, 아님 전기세 좀 아낀다고 무더운 여름을 선풍기 한 대로 난 탓일까. 첫째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육아의 세계에 난 늘 속수무책이었다.
첫째는 무척이나 예민한 아이였다. 뱃구레가 작아 조금 먹고 금세 젖을 찾았다. 잠들었다 싶어서 바닥에 살그머니 눕혀 놓으면 어느새 폴딱 깨곤 했다. 남편과 교대로 아이를 안고 어르며 깨어있던 밤이 숱하다. 100일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각종 육아서적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이를 눕혀놓고 재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안아주면 손타서 안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도무지 안지 않고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방도가 없었다.
조금 더 자란 뒤에는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식을 하려고 소고기며 채소를 정성껏 갈아서 입안에 넣으면 푸우, 하고 뱉어내기 일쑤였다. 오래간만에 외식을 하려고 음식점에 가면 유아 의자에 좀체 앉아있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돌아가면서 정신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한 사람이 아이를 안고 어르면, 다른 사람이 식사를 해야 했다. 유아 의자에 자녀를 앉힌 채 유유히 식사를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부러울 따름이었다.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갈 때는 늘 유모차와 아기띠를 준비해야 했다. 잠시 유모차에 있는가 싶으면 안아달라고 떼를 썼다. 결국에 한 사람은 아이를 안고, 또 다른 사람은 유모차를 끌었다. 아무리 가벼운 아기라도 한참을 안고 있으면 팔부터 뻐근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아이를 안은 손은 힘겹기만 했다.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우리 첫째는 7살이 되기 전까지 저 혼자 걸은 걸음이 만보도 안 될 거라고.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본 누군가는 아이의 버릇을 잘못 들인다고 했다. 너무 아이의 뜻을 받는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아이를 마냥 울릴 수가 없었다. 조금만 불편한 기색이 보여도 어떻게 하면 아이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할까 고민하던 초보 엄마, 아빠였던 것이다. 어쩌면 B급 엄마에게 트리플 A급의 특별한 아이가 찾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은영 박사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아이의 행동을 수정하려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며, 군것질을 하려고 하는 아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단호하게 여러 번 이야기해도 바닥을 뒹구는 아이의 팔다리를 못 움직이게 제압하기도 했다. TV에 나온 것처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끝까지 버텨보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버둥대는 아이를 채 십 분도 안되어 놓아 버렸다. 아이의 눈에 담긴 원망과 글썽이는 눈물을 보고는 맥이 풀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 탓일까. 나의 육아는 진흙탕을 구르듯 매번 고달팠다. 아이를 보면서 웃음 짓는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했고, 아이의 웃음에 내 마음은 물 젖은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았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의 문제행동을 제대로 제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나의 말에 잘 따르지 않는 아이를 볼 때마다 엄마로서 나의 존재감이 한없이 바닥을 쳤다.
'다른 집 아이는 순한데, 우리 아이는 왜 그럴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보다 수용적인 성향의 아이였다면 키우기 좀 더 수월했을 거라 생각했던 적도 여럿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의사표현이 확실한 첫째의 성향을 담기엔 나의 그릇이 옹색하다.
오늘도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 앞에서, 동생과 싸우는 아이 앞에서, 집안을 어지르고 치우지 않는 아이 앞에서, 음식 투정을 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만다. 정신이 들고 나서야 생각한다. 오은영 박사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고 단호하면서 일관되게 아이에게 설명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나에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얼마 전 출간된 오은영 박사의 책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샀다. 10년 차 엄마이지만, 아직도 초보나 마찬가지인 나를 위한 격려의 선물인 셈이다. 130개의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 까닭은 무엇인지 조곤조곤 풀어놓은 책이다. 네모칸 안에는 붉은 글씨로 아이에게 해 줘야 할 대사도 적혀 있다. 소리 내어 읽으라며 친절한 조언을 덧붙이기까지 한다.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아이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해주어야 한단다.
우리 아들, 정리하는 능력은 좀 약하네.
잘하는 게 더 많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지만 정리 정돈이 너무 안 되는 것 같아.
고칠 수 있는 건 고쳐볼까?
잘 못하는 것에 대해 모욕감을 주면 아이는 자신의 모습이 비난을 받을까 봐 솔직하고 당당하게 행동하지 못한다고 한다. 미숙한 모습도 그대로 인정해 주어야 아이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단다.
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게 좋다고 한다.
아, 동생이 밉다고 느끼는구나. 네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평가하지 않고 부정적인 마음도 그대로 인정해주어야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아이의 대화에서 이기려고, 또는 아이를 설득하려고 애쓰지 말고 아이의 마음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전한다.
맛없다고 투정하는 아이에게는 협박도 애원도 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라고 한다. 다른 사족을 덧붙이지 말고 가볍고 즐겁게 말하라고 한다.
맛있게 먹어보자.
음, 맛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오은영 박사의 지혜에 감탄한다. 10년이 되어도, 또는 그 두 배이상의 시간이 흘러도 엄마의 공부는 끊임없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책에 나온 것처럼 이렇게 단단하고 따뜻한 엄마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은 물렁물렁하고 조그만 자극에도 금세 터져버릴 듯한 위태위태한 B급 엄마다. 매일매일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는 A급 엄마가 되어가기를 소망한다.
큰 아이는 이제 10살이 되어 어른스러운 말도 제법 하고, 동생도 잘 돌본다. 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한 첫째와의 부딪힘은 떼어낼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아이가 자라나듯 나의 그릇도 점점 더 커져야 함을 매일 느낀다. 아직은 부족하고, 앞으로도 부족하겠지만 조금 더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자고 다짐한다.
따지고 보면 사랑만 주기에도 시간은 촉박하다. 언제까지나 아이들이 내 품 안에 안겨 있고 싶어 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뱃속에 있을 때 뭐든지 다 해줄 듯 아끼고 사랑하려던 처음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나라는 부족한 사람을 엄마로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사랑하는 마음뿐일 거다. 내일은 오은영 박사의 책에 담긴 말을 아이들의 눈을 맞추며 꼭 해주어야겠다.
엄마는 네가 내 아이라서 진짜 행복해. 사랑한다.
엄마는 널 보면
'우와, 어떻게 이런 보물이 태어났나?'하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행복해.
아이의 입에 매달릴 미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벌써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