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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Jan 08. 2023

우아하고픈 욕구 vs 난폭하고픈 욕구

독서기록 202301: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 + 인간의 품격

작년 하반기에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겪게 되면서, 막연히 느껴오면서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상황을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하다 보니, 사람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머리 아픈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어 가면서, 그에 대한 조금 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해졌습니다. 앞으로도 준비가 안된 채로 같은 문제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배우기는 했지만, 사실 이러한 생각들이 어떤 배경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는 몰랐고, 굳이 깊이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후 바쁜 대학 생활과 직장 생활을 보내면서, 이토록 심오한 주제를 붙들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없었던 것은 시간적 여유가 아니라 정신적 여유였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조금 구체화되기 시작한 계기는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이었습니다. 숫자를 다루는 일을 했었지만, 업무의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그 숫자를 납득시키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그 숫자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필요했고, 집어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다양한 사람들의 성향을 분류하여 유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 재미삼아 해봤던 혈액형별 성격을 기웃거려 봤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본인의 혈액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DISC나 MBTI를 활용할 수 있는 경우들이 있기는 했지만, 부담스러운 테스트가 필요해 한계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유용했던 분류 체계는 민족에 따른 성향의 차이였습니다. 물론, 자칫 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리스크가 있는 접근입니다. 하지만, 어느 민족이 더 낫거나 못하다는 판단을 위한 목적이 아니었던 데다, 무엇보다 다양한 민족을 상대해야 했던 당시 상황에서는 효과가 즉각적이었습니다. 크게 보면 유태인, 앵글로색슨, 코카시안, 히스패닉, 중국인, 인도인 정도가 큰 비중을 차지했고, 관찰을 통해 알게 된 각각의 공통적인 성향을 기록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활용했습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러한 분류 체계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이 있다는 점인데, 민족을 막론하고 '이중적인 성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하나는 '우아하고픈 욕구', 다른 하나는 '난폭하고픈 욕구'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우아함과 난폭함의 정의와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고, 심지어 같은 민족 사이에서도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사람마다 달랐던 셈이고, 업무적 이해상충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해야 하는 일들이 의도치 않게 지연되면서 연말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읽지 않은 채 책장에 방치했던 책 두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상충하는 인간의 이중적 본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반면, 접근 방법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가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라는 책인데, 와이프가 사서 읽고 책장에 두었던 책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품격>이라는 책으로, 가족들과 산책 길에 들른 동네 서점에서 책 한 권씩 사기로 한 후 별생각 없이 제가 집어 들었던 책입니다.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


저자인 마크 고울스톤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로, FBI에 인질협상 관련 자문과 여러 기업들에 인간관계 관련 자문을 해왔습니다. <나는 왜 내가 제일 힘들까>라는 저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본업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이중적 본성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합니다. 뇌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동일한 상황에서 행동 패턴이 달라지는 현상을 비교적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뇌를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파충류의 뇌(뱀의 뇌): 가장 안쪽에 있으며, '투쟁-도피 반응'을 관장한다. 즉각적 행동과 반응이 전부다. 위기를 감지했을 때 '한밤중에 헤드라이트 앞에 뛰어든 사슴'처럼 당신을 얼어붙게 만든다.


포유류의 뇌(쥐의 뇌): 중간층을 차지하며, 감정을 주관한다. 일면 '내면의 오버쟁이'다. 사랑, 기쁨, 슬픔, 분노, 비탄, 질투, 증거움 등의 강렬한 감정이 일어나는 곳이다.


영장류의 뇌(인간의 뇌): 가장 바깥쪽에 있으며, TV 시리즈 <스타트렉>의 닥터 스포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상황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의식적으로 실행계획을 세운다. 영장류의 뇌는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에서 수집한 정보를 조사하고 분석해, 실용적이고 현명하고 도덕적인 결정을 내린다.


저자는 사람들이 누구나 이 세 가지의 뇌를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우위를 점하는 뇌가 다른 것으로 얘기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뱀의 뇌, 쥐의 뇌, 인간의 뇌가 순차적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뱀의 뇌는 동물적인 보호 '본능'만이 발현되도록 하고, 쥐의 뇌는 '난폭하고픈 욕구'가 발현되도록 하며, '인간의 뇌'는 '우아하고픈 욕구'가 발현되도록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와 관련하여, 스스로 뱀의 뇌나 쥐의 뇌가 작동을 멈추고 인간의 뇌가 작동하기까지 기다리거나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그다음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간의 뇌가 작동하기까지 기다리거나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도록 할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 인간의 뇌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는 어떤 액션을 취하기보다 빠른 손절을 권합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의 본질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이 내부에 있으며, 통제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품격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언론인으로 일해왔습니다. 여러 방송사 및 언론사에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며, <보보스>라는 저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이중적 본성을 종교적 또는 철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실제 인물들의 사례를, 특정 종교나 철학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종교들과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설명해 나갑니다. 이 책의 출발점은 성경에서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상징하는 '아담'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아담1: 커리어를 추구하고, 야망에 충실한 우리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력서에 담길 덕목을 중시하는 외적인 아담이다. 아담1은 무언가를 건설하고 창조하고 생산하고 발견하길 원한다.


아담2: 특정한 도덕적 자질을 구현하고 싶어 한다. 그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내적 인격을 갖추길 원하며, 옳고 그름에 대한 차분하지만 굳건한 분별력을 갖고 싶어 한다. 그는 선한 행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아담1은 '난폭하고픈 욕구'가 발현되도록 하며, 아담2는 '우아하고픈 욕구'가 발현되도록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은 아담2 없이 아담1만 발현되는 것으로,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불완전한 인간 누구에게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얘기합니다. 즉, 문제의 원인은 통제 불가한 영역에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제 가능한 내부의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통제할 수 없는 문제의 원인과 씨름하는 것보다,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노력을 삶의 여정 전체에 걸쳐 이어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며, 그러한 노력이 쌓여 완성되는 궁극적인 결과를 '인격'으로 정의합니다.


"우리 본성의 한쪽 면에는 원죄가 있다. 이기적인 데다 타인이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또 다른 면은 신의 모습을 닮아 있다. 초월과 덕을 추구하는 것이다. 삶의 근본적인 드라마는 인격을 쌓아 가기 위한 과정이다. 절제되고 훈련된 습관을 몸과 마음에 되새기고, 선을 행하려는 성향이 자리를 잡도록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아담2를 통해 아담1의 부정적 에너지를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기법'을 제시하는데, 이를 '중용'으로 정의합니다. 저자가 저서나 기고문 등을 통해 동양 철학에 근간을 둔 중용의 미덕을 서구인들에게 소개하고 권해왔던 이력의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중용의 미덕을 지닌 사람은 극도로 상반된 특성을 가진 사람이다. 따라서 애초에 양 극단의 성격, 이를테면 분노와 질서에 대한 욕구를 둘 다 엄청나게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일할 때는 아폴론처럼, 놀 때는 디오니소스처럼 행동한다. 굳건한 믿음과 깊은 의혹이, 아담1과 아담2가 공존하는 사람이다."


이 두 책을 연달아 읽으며,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 두 저자가 유태인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유태인들입니다. 대단한 과학자들이 즐비한 데다 전 세계 돈의 흐름을 관장하는 유태인들이지만, 실제로 만나본 유태인들 중 수학적 재능이 탁월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학적 재능이 탁월하다고 느꼈던 경우는 인도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만, 유태인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언어적 재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되는 경우, 창의적 해법을 내미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하게 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책을 읽으며 얻은 첫 번째 가르침은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관계로든 엮이게 된 상대방 또한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 또한 잊지 않아야 니다. 어떤 얘기를 꺼내기 전에, 내가 상대하는 것이 뱀의 뇌인지, 쥐의 뇌인지, 인간의 뇌인지, 또는 아담1인지, 아담2인지를 먼저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대방을 과연 나 자신은 인간의 뇌 혹은 아담2로 상대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 가르침은 언어의 힘을 인정하고 그 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다양한 문제들도 일단 언어로 정의되고 나면 원인과 해결 방법이 생각보다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숫자 다루는 일을 하고 있지만, 숫자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낼 뿐, 결국 사람의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은 언어인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는 일들 또한 사람을 통해 진행되고 소비됩니다. 즉, '생각'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언어가 가장 큰 동력일 것 같습니다.


갈 길이 바쁜 스타트업 창업자로서 작년 하반기의 경험은 무척이나 뼈아픈, 그리고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시행착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 다시는 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선구안이 좋지 못한 저는 비슷한 상황을 앞으로도 수없이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 다시 처했을 때에는 꼭 템포를 늦추고 이 두 책의 가르침을 되새겨야겠습니다.


이제 상황 정리가 마무리 단계에 있으니, 한동안 멈춰있던 엔진을 다시 가동해보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선뜻 손을 내밀어준 이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 앞으로도 어려운 상황들을 수없이 마주하게 될 테지만, 그로 인해 주저앉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불완전함이 항상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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