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중인 일이 계속 지연되면서, 틈틈이 네이버 도서 페이지를 뒤적거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그곳에서 집어든 책입니다.
'불변의 법칙'은 전직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였다가 현재 벤처캐피탈 콜라보레이티브 펀드의 파트너로 있는 모건 하우절이 전작 '돈의 심리학'에 이어 출간한 책입니다. 콜라보레이티브 펀드 웹사이트에 블로그로 연재한 글들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각 챕터들은 독립적이고 글은 무겁지 않습니다.
숫자로 앞날을 예측해야 하는 업종에 몸을 담아 온 저자는, 항상 실패하는 예측의 시도들을 잠시 제쳐두고 오히려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미래를 정확히, 그것도 숫자로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 다른 가능성이 끼어들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데이터 비즈니스를 하는 제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사실 예측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정확성은 그 지향점이 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예측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특히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때입니다. 그렇게 보면, 숫자로의 예측은 효율이 낮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장 편리한 방법이기는 합니다. 다른 가능성이 끼어들 여지를 없애기 때문입니다.
"확실성에 대한 욕구는 정신이 겪는 가장 커다란 질병이다."
- 로버트 그린
저자에 따르면, 경제적 성공과 관련한 리스크의 출발점은 기대치이고, 기대치는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부풀려집니다. 즉,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리스크가 커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리스크는 조급함과 숫자에 대한 집착을 통해 더 빨리 더 거대해져 통제 가능 범위를 넘어서게 됩니다.
"창의성의 발현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조급함이다. 중간 과정을 신속하게 끝내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결과물을 빨리 내놓고 싶은 그 불가피한 욕망 말이다."
- 로버트 그린
"우리는 물질적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온갖 대책을 세운다. 그것의 가격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소홀하게 관리한다. 그것들에 가격표가 달려 있지 않은 탓이다."
- 피터 카우프먼
저자는 리스크 관리를 위한 출발점을 인내심과 희소성으로 정의하고, 장기적으로 리스크를 제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유연성이라고 얘기합니다.
"진보란 한 걸음씩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나며,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사소한 혁신과 발견이 훗날 엄청난 무언가로 변화할 잠재력을 지닌 기회의 씨앗이 될 수 있다."
- 모건 하우절
"어떤 투자 대상이나 기업이든, ‘현재의 숫자’에 ‘미래에 관한 스토리’를 곱한 결과가 그것의 가치다."
- 모건 하우절
이 책에서 유연성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본문에 직접적으로 적혀있지는 않지만, 비관론과 낙관론으로 나누어진 관점 사이에서의 유연성, 장기적 목표와 단기적 실행 사이에서의 유연성, 효율성과 불가피한 비효율성 사이에서의 유연성 등이 저자가 얘기하려는 유연성으로 생각됩니다.
저자는 이 유연성이 발현되도록 하는 근원이, 유용성이나 이윤이 아닌, 인간의 욕구와 감정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상충하는 수많은 욕구와 감정들이 접점을 찾도록 만드는 수단이 직접적 경험에 관련된 스토리라고 얘기합니다. 즉, 스토리가 경제적 성공을 위한 기회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당신이 옳은 답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당신이 틀린 답을 갖고 있지만 뛰어난 스토리텔러라면 (당분간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옳은 답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뛰어난 스토리텔러라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100퍼센트다."
- 모건 하우절
나이가 들수록 말이 갖는 힘을 실감하게 됩니다. 경력과 연차가 쌓일수록 좋은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차피 스토리텔링의 재능이 누구나네게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 보다 오히려 침묵을 통해 더 많은 내용이 더 명료하게 전달되기도 하더라는 의미입니다.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때에는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상사나 선배들의 얘기를 듣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의견을 내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이 시기에 스토리라는 개념은 없었고, 그냥 '입에 발린'소리 보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배나 상사보다 후배나 부하직원들이 많아지면서, 다시 말이 줄었습니다. 거짓말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굳이 진실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짓말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진실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면 먹고살 수는 있다. 거짓말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면 깡통을 차게 된다."
- 제이슨 츠바이크
꽤 두꺼운 책이지만, 생각보다 빨리 읽힙니다. 물론, 공감 가는 내용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내용들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접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와 이 책이 공통적으로 결국 '행복'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의 욕구와 감정이 행복으로 모여들고 있나 봅니다. 갈수록 행복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결국 정답은 스스로에게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