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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Jul 05. 2024

행복

독서기록 202407: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최근 인터넷서점들을 둘러보면, 유독 쇼펜하우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적은 없었는데, 최근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종종 접하게 되는 그의 말들에 공감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었고, 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는 그렇게 해서 집어들게 된 책입니다. 새삼 알고리즘의 위력을 느낍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말년인 1851년에 출간했던 '소품과 부록' 중 '소품'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1851년은 조선이 철종 2년이었던 때로,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켰던 해입니다. 여기에서 나폴레옹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으로, 그는 이 쿠데타를 통해 황제에 즉위합니다. 즉, 상당히 오래전 책인 셈인데, 지금 다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1788년 지금의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태어난 쇼펜하우어는 그단스크가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었을 때 함부르크로 이주해 정착했습니다. 이후 그에게는 많은 적들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철학자들이 포함됩니다. 사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출간 시점에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말년에 '소품과 부록'을 발간하면서입니다.


책을 읽으며, 그에게 적들이 많았던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젊은 시절의 그가 본인의 지적 능력과 관점을 굳이 감추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과시를 위한 목적은 아니었고, 단지 '입에 발린 소리' 대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바른 소리'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까지 포함되면서 적이 늘어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적이 많았던 한 철학자가 말년에 쓴 행복론입니다. 즉, 행복한 삶을 위해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는 권고와 격언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한 훈계도 있고, 그가 경험해야 했던 시행착오들을 다른 이들은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회도 있습니다.


이 책의 분량은 행복한 삶을 위한 권고와 격언이 50%, 그 전제와 배경에 대한 설명이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전제와 배경부터입니다. 그는 사람이 행복을 얻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로 구분합니다.


1. 개인의 본질: 넓은 의미의 인격으로, 건강, 아름다움, 기질, 도덕성, 지능, 교육수준 등이 포함됩니다.

2. 개인의 소유물: 모든 범위에서 재산이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것들입니다.

3. 개인의 외관: 개인에 대한 타인의 생각으로, 명예, 지위, 명성으로 세분됩니다.


그는 개인의 본질이 절대적인 가치를, 개인의 소유물이나 개인의 외관은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개인의 본질은 스스로 판단하는 바에 따르는 것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낮은 반면, 개인의 소유물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개인의 외관은 타인의 판단에 의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인의 본질에는 객관과 주관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객관은 외부의 영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영역인 반면, 주관은 외부의 영향과 무관하게 변화하지 않는 본질적 영역을 의미합니다. 다만, 그는 외부의 사정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사상, 감정, 의지 등을 초래하는 선에 국한되며, 이러한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 스스로의 정신 활동으로 채워진 고독에 귀결된다고 얘기합니다.


그는 이 책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분류된 53개의 권고와 격언들로 마무리 합니다.


1. 개인의 본질, 개인의 소유물, 개인의 외면 → 일반적인 것 (#1~3)

2. 개인의 본질 →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 (#4~20)

3. 개인의 외면 →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 (#21~46)

4. 개인의 본질, 개인의 소유물, 개인의 외면 → 세상사와 운명을 대하는 태도 (#47~53)


그가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개인이 타인의 의견과 생각에 노예가 되는 상태입니다. 다만, 개인, 구체적으로 스스로의 정신 활동이 왕성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을 인정합니다. 대신, 타인의 시선을 통해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의 범위와 속성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경계가 필요한 리스크들을 구체화 합니다.


명예는 같은 상황에 있는 누구나가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공정하게 심사하는 이들이 있으며 시기심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명예를 가진 자가 죽으면 명예도 사라집니다. 반면, 명성은 예외적인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 기반하기 때문에 시기심의 표적이 됩니다. 다만, 명성을 얻게 된 이유가 존속하는 한 명성을 가진 자가 죽어도 명성은 유지됩니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이 두 가지 있습니다.


우선, 현실의 많은 부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에 비하면 의아할 만큼 국가의 권위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본질과 개인의 외관에 대해 심도있는 관점을 제시하는 것에 비하면 개인의 소유물과 관련한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어렸을 때 프랑스에서 2년간 지냈던 적이 있는데, 이 시기를 행복하게 기억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공화정을 수립한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와 왕정 복고 등을 거치며 정치적 혼란이 계속됐습니다. 그 와중에서 혁명의 계기가 되었던 양극화는 다른 양상으로 되살아납니다. 이미 거대했던 혁명을 경험한 사람들로서는 무기력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쇼펜하우어에 열광하는 이유 또한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때와 유사한 부분이 있어서것 같습니다.


한편, 스스로의 수양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해내고자 했던 점은 동양철학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이유는 자신이 도달한 결론과의 유사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동양철학을 서구 세계에 긍정적으로 소개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물론, 스스로의 수양을 통해 개인의 행복에 방해가 되는 많은 장애물들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다만, 그 방법이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100% 확신이 있지 않습니다. 고독한 정신 활동은 종종 과대망상이나 피해망상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극I인 저에게 고단한 사교 활동은 과대망상이나 피해망상 여부를 자가진단하는 기회로써의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이 고단한 사교 활동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의 권고와 격언이 유효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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