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15 선은넘지마오
나는 동이 하나뿐인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어.
새 아파트에 가기 위해(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잠시라는 마음으로 머물고 있지만
벌써 여기 산 지 3년 차가 되고 있어.
우리 아파트는 몇 십년이 됐고, 엘레베이터도 없고,
경비아저씨는 한 분, 9시부터 7시까지 일하기 때문에 택배기사님이 경비실에 물건을 맡기면
가끔 난감해. 아저씨랑 나랑 근무시간이 겹쳐서 물건을 원하는 시간에 못 찾는거지.
휴. 그래도 어쩌겠어. 엘베없는 꼭대기층은 나라도 반사하고 싶을거야.
그래도 늘 와주시는 쿠팡기사님 알럽
낡고 오래된 우리 아파트의 70%는 족히 15년 이상은 산 분들이 대다수인 것 같아.
그 와중에는 '내가 이 아파트의 터줏대감이다'라는 인상을 폴폴 풍기는 아주머니가 계셔. 총무라고.
내가 처음 이사왔을 때 내 옆집 문앞에는 옥상으로 가는 계단까지 점령한 초록소주병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었어. 이후에도 한 일년간은 본드박은 것처럼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 옆집에 이사온 나를 우연히 마주친 아주머니는
안녕하세요. 나는 누구에요. 대신
그 소주병 니꺼? 니가 쓰레기 만듦? 물어봤었어. 이 질문이 다소 의도적이었던 건 나중에야 알았어. 그거슨 텃새였어. 내가 아주머니 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부살이 하는 것도 아닌데 텃새라니?
이 아파트는 재활용쓰레기를 정해진 곳에 두면 경비아저씨가 분리수거를 해준다고 했어. 그 얘긴 첫 번째 경비아저씨에게 들었어. 이사온 지 2~3달인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내 뒤통수에 아주머니 3~4명이 모여있다가 한 마디 하는 걸 들었어. "저거 일반 쓰레기 아니야?" 대장 아니 총무 아주머니가 내게 쪼르르 와서, 베스킨라빈스 뚜껑을 일반쓰레기로 버리라고 했어. 패트병은 분리수거되지만, 나머진 안 된다고. 울 아파트는 큰 아파트랑 달리 작아서 안 된다고 말이야. (그러다 벌금내면 어쩔?) 모여있는 아주머니들의 눈초리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보고 있었어. 나는 이후 경비아저씨를 생각해 아무도 그렇게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내 나름 지킬 것은 지키자는 마음으로 종이, 패트병, 비닐 등을 따로 배출해 버렸어. 아주머니가 활동하지 않는 이른 출근 시간에 말이야. 그후 몇달 후에는 나보고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어. 1층에 립스틱이 묻은 꽁초가 버려졌다고. 나는 흡연하지 않아.
얼마 전에는 런닝머신이 있냐고 물었어. 밤새 런닝머신 소리가 들린다고. (내가 2박 3일 출장으로 집에 없었을 때도 그 소리가 났다는) 런닝머신을 둘 공간도 없지만 그걸 밤새 탈 똘아이도 나는 아니야. 런닝머신이 아니라 옥상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아니냐며, 최대한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의 도움을 드리려 했지만, 이후 놀러온 내 동생에게 같은 질문을. 그 윗집에 사는 딸이 했다는 걸 듣고 어이가 없었어.
며칠 전 한달간의 굵직한 일을 끝내고 놀러온 친구와 회포를 풀었어. 그리고 밤 10시가 넘은 시간 그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어. 친구가 베란다에서 담배 피는 걸 보고 전화를 한 거야. 밖에서 울집을 바라보던 중에 담배를 피는 친구를 봤고, 3층으로 불꽃이 들어갔다고, 담배를 피지 말라고 따졌어. 아주머니가 사는 집도 아니고... 무슨 상황이야 진짜. 6층 베란다에서 태운 담배의 불꽃이 3층으로 들어갔다면,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친구가 얘기했어. 솔직히 나도 거리에서 담배 피는 사람들을 좋게 보진 않아. 바람을 타고 내 콧구멍에 담배연기가 닿으니까. 근데 여긴 집이잖아. 금연아파트라면 법없이 못사는 내가 결코 못하게 말렸을 거야.
마치 방화라도 저지른 사람을 본 것마냥 밤 10시가 넘은 시간 담배 폈다고 전화하는 걸 보고 나 역시 화가 났어. 내가 아닌 손님들에게까지 그러다니. 그동안 나름 알랑방귀 뀌면서 예의있게 지내려고 했는데 내 노력은 헛수고였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어. 나도 살면서 꼴보기 싫은 일을 겪을 때가 있지만, 법적으로 문제도 없는데 하지말라고 소리치지는 않아. 본인이 오래 산 아파트에서 누군가 담배 피는 게 보기 싫을 수도 있지만, 나도 밤 10시가 넘은 시간 담배폈다고 뭐라하는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
아주머니가 그동안 내게,
소주병, 분리수거, 립스틱 묻은 꽁초, 런닝머신 등에 관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난 친구를 비난했을 수도 있어.
혹시라도 네가 실수했을 수 있다고, 그냥 미안하다고 하자고.
하지만 아닌 건 아니잖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아끼자.
세상엔 늘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키세라세라
흡연을 막고자 한다면
담배를 안 팔아야하는 거 아니오?
무조건 눈치주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