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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숲 Apr 13. 2024

아무 생각 없이 떠난 나라, 태국

방콕과 파타야


 기다리고 고대했던 태국 여행. 사실 태국이란 나라로 정한 건 아무 곳이나 되는대로 찍은 거고 사실은 해외여행이 가고 싶었다. 비행기가 타고 싶었다. 꽉 막힌 도시에서 아이 돌보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빙빙 돌던 뻔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저가 항공 특가 상품 중 베트남을 제외하고(3번이나 갔으니) 비행시간이 가장 짧은 곳으로 대충 골랐다. 그렇게 고른 게 방콕이 되었다. 딸아이가 비행기 오래 타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 5시간 정도면 아이도 좀 참아줄 것 같았다. 날짜는 개중에 저렴한 가격에 갈 수 있는 날 중에서 겨울방학인 날로 골랐고 그러다 보니 2월 말이 되었다. 나의 엄마는 사순절 기간에 어딜 가냐며 환불하라고 성화였지만 그날이 저렴하고 아이 학교 개학 전 가능한 날인 걸 어째. 한바탕 싸우고 그대로 밀고 나가니 나중엔 잘 다녀오라며 찬조금까지 주시는 엄마. 병 주고 약 주시네. 어쨌든 감사.


베트남 여행 준비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태국 여행 준비는 이상하게 더 어렵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GNL, EXK 카드, 환전 문제가 나에게 더 복잡하게 다가왔기 때문일까. 베트남은 그냥 달러로 바꿔가서 현지 시장에 있는 유명한 환전소에서 환전했고 나머지는 VISA 기능이 있는 체크카드로 결제했기에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여행이란 건 준비를 하면 할수록, 아는 게 많아지면 많을수록 더 복잡하고 귀찮아진달까. 유심은 검색 끝에 유심사 이심으로 했는데 처음 이용해 보는 거라 설치 과정에서 고객센터에 질문해 가며 하다 보니 친절하게 답해주시긴 했으나 어쨌든 번거롭고 성가신 건 사실이었다.


요즘 결정장애도 심해지고 행동도 굼떠져서인지 여행 준비는 도통 진도를 나갈 생각이 없었다. 겨우겨우 숙소들을 예약하고 손 놓고 있다가 대충 일정을 생각해 쿠킹클래스와 마사지를 예약하고 나머진 현지에서 상황 봐가며 해야겠다 생각하고 출발했다.


태국은 교통체증이 있다고 하더니 역시 차가 많았다. 베트남에서 봤던 오토바이 부대는 덜 한 대신 차들로 꽉 막힌 도로가 있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도 교통체증을 생각해서 꺼리게 되고, 그렇다고 전철역 근처의 숙소도 아니었기에 대중교통 이용은 아이를 데리고는 무리였다. 하루에 한두 개의 일정, 수영, 그리고 끼니를 챙겨 먹는 것만 하기에도 시간은 정말이지 금방 갔다. 가장 실수한 부분은 저렴한 숙소를 여러 개 경험해 보겠다고 2일마다 숙소를 옮겨 다닌 것이다. 숙소를 옮기는 시간에는 다른 일정을 계획하지 못했고, 짐을 싸고 푸는 것 또한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베트남에서 그렇게 다녔을 때 좀 힘들었다고 이젠 안 그래야겠다고 다짐해 놓고, 또 막상 숙소 예약할 때 되니 욕심이 도진 것이다. 방콕은 베트남보다 교통 문제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냥 돈 조금 더 주고 괜찮은 곳에서 3일 이상 묵는 것이 최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몸으로 느꼈다. 


날짜는 고작 8박 10일이면서 준비는 몇 개월 전부터 한 달 살기 할 것처럼 스트레스받아가며 서칭 해놓고, 막상 짜인 틀도 없이 그때그때 상황 맞춰 하자며 정확하게 일정은 짜놓지 않아서 고민과 고생을 둘 다 했던 것 같다. '그냥 생각 없이 푹 쉬고 와야지.'와 '그래도 여기랑 여기는 가야 하지 않을까' 사이에서 고민을 했던 스트레스에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래도 아이는 즐거웠단다. 그래, 그거면 됐지. 나도 다녀오고 보니 '그래도 이건 가봐야지' 하면서 여기저기 무리해서 갔던 것들이 더 추억이 된 것 같다. 결과적으로 몇 가지의 아쉬움을 빼고는 그래, 만족하자. 그래도 순간순간 즐거웠으니.


방콕에서의 4일이 가고 파타야로 갔을 때가 내겐 좀 더 여행같이 다가왔다. 도시였던 방콕은 사실 내 취향은 아니었으나 동남아 최대 관광도시인 방콕인데 그래도 며칠은 있어 봐야지 하고 일정에 넣었다. 파타야와 후아힌을 고민했으나 많이 들어본 파타야가 좀 더 친숙했기에 파타야로 별 고민 없이 정했다.


파타야에서는 좀 더 요령이 생겨 명소라는 곳을 하루에 한 곳씩 일정에 집어넣었다. 나중에 한국 돌아와 보니 이것만큼 잘한 게 없다. 방콕에서의 쿠킹클래스. 파타야에서는 타이거 파크에서 새끼 호랑이를 만져본 것, 거대한 목조 건축물인 진리의 성전을 들렀던 것, 물 색깔이 너무 예뻤던 산호섬 투어와 패러세일링을 한 것. 


각각의 체험들은 태국에서만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이고 태국인들과 소통하며 태국의 자연, 혹은 그들의 문화 안에 스며들어 보고, 맛보고, 느꼈다는 만족감이 컸다. 그 각각의 체험 하나하나가 나와 딸이 태국이라는 나라에 새롭게 눈을 열고 그들의 것을 받아들이는 기회가 됐으니까. 쇼핑센터나 맛집 투어보다 더 인상적이었고 내면세계에 잔잔한 충격을 주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음에 또 태국을 가게 된다면 그땐 안 가본 곳들도 가보고 싶다. 거대한 왕궁과 왓포의 대규모 석가상, 왓아룬 뷰가 보이는 리버사이드 루프탑에서의 저녁 식사도. 아이와 함께 즐기고 싶은 건 많았으나 오히려 아이를 신경 쓰느라 정작 가보지 못한 그곳들에 대한 미련을 그땐 풀어볼 수 있을까. 다시 갈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미처 봐주지 못한 태국의 곳곳들을 그때에는 살포시 만져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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