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잔치 이후로.
마치 막 기말고사를 끝낸 듯, 후련하다.
오늘은 아이의 8번째 생일파티. 아이가 친구를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엄마와 상의도 없이 친구들을 생일파티에 초대할 줄은 몰랐다.
당황한다. 키즈카페에서 생일파티를 열 정도의 여유는 안되고, 집에서 이것저것 시켜서 먹이고 간식 사서 세팅해 놓고 자기들끼리 놀게 해 주면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아이는 친구를 통해 두 번 생일에 초대를 받긴 했으나 그때마다 사정이 있어 한 번도 친구 생일파티라는 것에 가본 적은 없었다. 나도 아이가 하나뿐이라 경험이 없어 어렴풋이 어릴 적 친구의 생일파티에 한번 가봤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하루종일 먹고 놀고 놀이터 가고 했던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아이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라는 것을 해본 적은 없다. 거 참 주변인 같은 인생. 하긴 그 시절엔 생일파티라는 개념이 그리 흔하진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더듬어 의지할 기억이 너무 빈약하다. 그저 영화에서 봤던 집에서 여는 파티의 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아, 그러고 보니 뉴질랜드에 잠깐 살았을 때 어학원 멕시코 아줌마 파티에 초대받았었네. 미국에 사는 이모네 집에 가족들이 다 놀러 갔을 때도 먼 친척 파티에 잠깐 초대됐었고. 아니 근데 그건 성인들 파티고, 아이들 파티는 아니잖아?
에이 뭐, 파티가 별 건가. 맛있게 먹고 즐기면 되는 거지. 아이가 시켜달라는 피자와 마라탕을 시키고, 아이가 좋아하는 소이 허니 치킨을 에어프라이에서 돌리고 과자와 음료수를 세팅해야지. 잠에서 깬 새벽 지난번 다이소에서 사 온 HAPPY BIRTHDAY 풍선과 색종이 조각 가득한 풍선을 불어 벽과 천장에 장식한다. 아침에 깬 아이가 행복한 미소를 짓겠지.
아이는 계속 친구를 하나 둘 초대해서 생일 전날에는 아이 어린이집 친구의 엄마에게서 연락이 온다. 자기 아이가 초대를 받았는데 맞냐고. 옆 아파트에 사는 아이라 엄마가 데려다주신단다. 사실 그 엄마는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이다. 아이들끼리는 친하지만 어른들끼리는 그다지 맞지 않는 그런...
아이의 생일. 아침부터 미역국을 끓여 먹이고 점심땐 조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아이가 잠시 수영학원에 간 사이 서둘러 막바지 생일파티 준비를 한다.
어깨를 짓누르던 대망의 그 시간이 왔다. 엄마와 함께 온다는 그 아이의 엄마는 전화해서 본인의 아이들(애가 넷이심) 친구들 생일파티는 아이가 초대해서 갔던 경우는 하나도 없다고, 다들 엄마들이 연락하거나 초대장을 준다고 한마디 한다. 아, 네... 이래서 내가 싫어했지.
4시부터 8시까지. 걱정과 긴장의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아이는 지금 가장 좋아하는 친구 한 명과 함께 파자마 파티를 하며 본인 생일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압박감이 상당했나 보다. 끝나고 나니 탁 풀리는 긴장과 함께 뿌듯함이 밀려온다. 맥주 한잔이 하고 싶어 진다. 뭔가 큰일을 치른 것 같은 보람찬 밤. 결과가 어떻든 간에 해냈다는 성취감. 그런데 아이 생일파티.. 두 번 다시는 못할 것 같다. 이래놓고 내후년쯤 또 하고 있겠지, 나란 엄마란 늘 그렇지... 오늘 하루가 끝나감을 알고 있다는 듯 내 뒤 벽에 걸린 HAPPY BIRTHDAY의 Y자가 톡, 하고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