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방송에서 연초가 되면 자주 써먹는 회심의 카피가 있다. “한 살 더 먹어도, 한 살 더 어려 보이는 화장법, 혹은 코디법.” 설이 지나도록 매년 아주 제법 잘 먹히는 비기다. 이 ‘매직 워드’의 시절이 왔다. 결혼하지 않은 비혼자, 다시 혼자가 된 돌싱, 기러기 아빠, 여기에 결혼하고도 혼자 사는 박쥐 같은 나까지 합세해 전체 4가구 중 1곳은 1인 가구라는 통계에 우리 모두는 놀랐다. 작년 내가 일하는 홈쇼핑에서도 디패키징(묶음 판매를 소분하여 판매하는 것)이 두드러졌다. 4인 가족 기준 넓이 100㎡ 이상의 집이 아닌 싱글 인테리어 가구가 각광을 받았다.
작년 한 해는 유난히도 나 홀로 라이프에 시선이 쏠렸다. 연초부터 <나 혼자 산다>를 통해 티브이 속 연예인들이 소소한 위로가 되어주었고, 1인 가구를 그린 <식샤를 합시다>나 아빠들의 ‘나 홀로 육아’처럼 혼자 사는 다양한 방법들이 안방을 수놓았다. 우리 모두는 혼자구나 하는 생각은 이제는 부끄럽지도 궁상맞지도 희한하지도 않은 예사롭고 일상적인 그림이 되었다. 마케팅에서는 솔로(SOLO)족을 이렇게 정리한다. 셀프(Self: 자기 지향), 온라인(On line: 온라인 지향), 로프라이스(Low price: 저가 지향), 원스톱(One stop: 편리성 지향). 혼자 사는 일을 비주류가 아니라 어쩌면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로 바라보는 시류는 내 고독을 한결 줄여주었지만, 실제로도 그랬을까? 내 나이보다 오래된 연식의 아파트 1층에서 혼자 맞는 겨울은 올겨울 최고 히트 아이템 방한용 뽁뽁이와 암막 커튼, 온수 매트를 둘러도 늘 추웠다. 게다가 정말이지 <히든싱어>나 <개그콘서트>는 혼자 보면 확실히 그 재미가 반감된다!
혼자 맞는 연말연시는 혼자 늙어간다는 상상 때문에 공포다. 한 살 더 먹어도 어려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대신에 세상은 내면의 성장을 온전히 요구한다. 이런 부담감으로부터 퇴행해 어리광 부리고 싶은 나를 누르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홀로서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이다. 한 뼘 더 자란 척이라도 해야 한다.
나잇값과 꼴값의 양단 기로에서 헤맬 때 혼자남, 혼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티브이가 친구였다. 1월 6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스물아홉도 아니고 무려 서른아홉의 혼자 사는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혼자 사는 생활을 연말 정산해보니 온통 적자라 억울하긴 한데 그렇다고 세상에 쉬운 게 없다. 드라마에서 부잣집 며느리로 행복할 것만 같았던 최정윤도 알고 보니 완벽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해오지 않았나. 마흔 앞에 아직도 싱글인 김유미, 다시 혼자가 된 유진, 고군분투 결혼 생활 중인 최정윤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마도 예스일 테다. 한 살 더 먹어도, 이룬 것 없어도, 겁이 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