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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명 May 01. 2017

하늘에 이르는 차마고도 따라 ‘살아있는’ 빙하를 만나다

란우호, 미퇴빙천 - 최종명의 중국 대장정 (10)

방향을 남쪽으로 살짝 틀어 두 시간을 더 달려 란우호(然乌湖)에 도착한다. 해발 3,750m 지점에 있으며 길이는 29km, 면적은 22평방km에 이르며 최고 수심이 50m이다. 황산염이 함유된 담수호로 11월부터 5월까지 결빙한다. 반년 이상 얼음이 어는 까닭은 추워서이기도 하지만 산 붕괴로 형성된 언색호(堰塞湖)이기 때문이다. 

란우호
란우호주변에서 쉬는 티베트 사람들

소 몇 마리만 어슬렁거리고 있다. 멀리 보이는 설산이 호반 위에 반영이라도 되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각도를 맞춰본다. 한여름이라 만년설도 ‘귀향’했는지 눈(雪)과 눈 맞추기 참 어렵다. 그늘에 누워 낮잠 자는 사람만 찾았다. 다른 곳보다 호수 주변에 야생초가 많이 자라니 소를 풀어놓고 늘어지게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정지된 듯’ 마냥 평화로운 티베트 사람에게 땅은 그저 누울 곳인가 보다.


다시 30여 분 달리면 국도 옆에 미퇴빙천(米堆冰川) 매표소가 나타난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라는 말이 선명하다. ‘가장 아름답다(最美)’는 말은 중국 곳곳에서 워낙 많이 봐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매표소 문 안쪽에서 살짝 드러난 설산으로 눈이 갔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풍겨 나온다. 약 4km에 이르는 미퇴촌으로 갈수록 설렘을 더욱 짙어진다. 분명 고산 반응 때문이 아니다.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다. 

미퇴빙천 통나무 다리
미퇴빙천의 돌무더기

차에서 내려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른다. 해발 1,000m 정도라면 그냥 평지다. 말을 타고 가는 사람도 있다. 빙하가 흐르는 도랑은 통나무 다리로 건넌다. 서낭당 앞에 돌무더기를 쌓듯 빙하가 마주 보이는 공터에는 크고 작은 돌이 쌓였다. 관음보살, 재신(财神)에게 봉공하듯 지폐로 끼워 넣었다. 주봉은 해발 6,800m에 이른다. 얼음으로 둘러싸인 빙하의 높이는 800m나 된다. 온통 새하얀 빛을 멀리까지 분출하고 있는 이유였다. 


미퇴빙천은 세계에서 아주 드문 빙하다. 1988년 7월 15일 밤에 갑자기 빙하가 갈라져 호수로 쓸려 내려오는 현상이 발생했다. 마치 화산이 분출하듯 빙하도 ‘약동(跃动)’한다니 신기하다. ‘활빙하’라 해도 좋지 않은가? 중국에는 4만 6천여 개의 빙하가 있는데 단 두 개만이 ‘살아있는’ 빙하다. 또 하나는 200km 떨어진 난자바와(南迦巴瓦) 산 줄기에 있다. 

미퇴빙천의 말과 빙하
미퇴빙천이 반영된 호수

호수 위에 쏙 들어온 설산이 참 예쁘다. 데칼코마니를 이룬 모습, 그 반영은 본디 모습보다 더 경이롭다. 잔잔한 흐름을 따라오는 바람도 어느덧 숨을 멈춘다. 다시 긴 호흡을 내쉬면 호수는 몸서리를 치고 설산은 대칭이면서도 자기 모습을 감추듯 살짝 비튼다. 주름 같은 흐느낌은 짜릿한 오르가슴 같다. 빙하와 호수는 그렇게 한 쌍의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것 같다. 


눈은 호수를 정화하고 도랑으로 흐르다가 개울이 돼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미퇴하(米堆河)는 논밭과 삼림을 적시고 란우호에서 내려온 팔룽짱보(帕隆藏布) 강에 합류한다. 대부분의 티베트 물줄기처럼 티베트를 남북으로 가르는 젖줄인 얄룽짱보(雅鲁藏布) 강으로 들어선다. 근원을 알아야 하는 법, 사람이나 자연이나 마찬가지다. 설산의 DNA는 어느 바다에 머물지 몰라도 그냥 H2O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빙하마을 미퇴촌

시리도록 눈부신 설산을 뒤로하고 도랑을 따라 내려온다. 연기가 모락모락 솟는 지붕, 관광지로 변한 마을에도 저녁이 온다. 공예품을 파는 가게 몇 집 보이고 좌판에는 티베트 특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마치 눈꽃이 피기라도 한 듯 아담한 설연화(雪莲花)에 눈길이 간다. 해발 3~4천 m 바위에서 자생하는 국화이다. 

미퇴촌에서 만난 설연화

보미(波密) 현에는 아직 3시간을 더 가야 한다. 어두운 산 너머 여전히 햇살이 발버둥 치는 하늘을 응시한다. 흔들리는 차량에 나른한 몸을 맡긴다. 소르르 졸음에 빠지다가 언뜻언뜻 설산 그림자를 따라 눈을 떠보기도 한다. 빙하의 인상이 강해서인지 차마고도를 잠시 잊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지는 듯하다. 꿈에라도 마주하고 싶은 마방 행렬인데…. 하늘에 이르는 길, 별처럼 높디높은 고개를 지나 호수와 빙하를 만난 날이다. 오늘 밤꿈에는 별이 오려나 보다.

보미 가는 밤길
미퇴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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