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에는 윈난 최대의 티베트 사원 송찬림(松赞林)이 있다. 보통 송찬림사라고 알려지는데 ‘송찬’은 천상에 있는 신이 거처하는 지방이고 ‘림’은 사원을 뜻한다. ‘사’를 굳이 쓰는 이유가 있겠지만 ‘역전앞’과 비슷하다. ‘작은 포탈라 궁’이라는 호사를 누리는 사원이다. 고개를 끄덕일 만큼 독특하고 웅장한 자태를 품고 있다. 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정문에서 바라보면 하늘색과 어울려 화사하기조차 하다. 구름이 두둥실 스치면 풍성하기까지 하다.
티베트 사원 송찬림 전경
송찬림에는 계율을 받은 승려가 거주하는 캉찬(康参)이라는 건물이 8채 있다. 연꽃의 여덟 잎을 상징한다. 승려 20여 명씩 공동생활을 하는 미찬(密参)도 많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광장으로 들어서면 본전인 자창(扎仓) 앞에 이른다. 자창 대전은 승려의 학원으로 1,600명을 수용할 만큼 큰 공간이다. 왼쪽 오른쪽에는 각각 티베트 불교의 종교개혁가이자 최대 교파인 겔룩파의 창시자인 총카파(宗喀巴) 대전과 석가모니 대전이 위치한다. 석가모니 불상에게 봉공하면 반드시 응답한다고 알려져 있다. 1936년 여름 장정 중이던 홍군의 허룽(贺龙) 장군도 이곳을 찾았다. 수많은 병사를 거느린 장수가 전쟁 중에 참배했다면 덕장이라 할만하다.
송찬림자창대전
법륜과 사슴 한 쌍
5층 높이 대전 지붕은 화려한 장식으로 눈부시다. 비첨에는 맹수가 노려보고 있고 원통의 마니룬(玛尼轮)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법륜 옆 사슴까지 햇살의 울림이 상당하다. 모두 도금으로 장식한 까닭이다. 티베트 사원 지붕에 법륜과 함께 등장하는 사슴 두 마리는 석가모니의 최초 설법지인 녹야원을 상징한다. 수레바퀴처럼 부처님 말씀이 널리 온 사방에 퍼져나갈 듯 송찬림 지붕은 유난히 금빛 찬란하다.
총카파에 의해 발전한 겔룩파 법왕이 달라이라마(达赖喇嘛)다. 노란 모자를 쓰는 황모 파라고 부른다. 티베트 불교에는 다양한 교파가 존재하지만, 겔룩파가 가장 많다. 1959년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라마 14세 텐진가쵸(丹增嘉措)는 현재 대부분의 티베트 승려와 서민의 존경을 받는다. 눈 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에서 지켜온 역사와 문화를 남기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송찬림은 달라이라마 5세 말기인 1681년 준공된 사원이다. 우여곡절 속에도 달라이라마의 지위를 간직하고 온 고난의 역사는 차분하게 되돌려 볼 필요가 있다.
서서히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따라 고성으로 향한다. 고성은 거북처럼 야트막한 구이산(龟山)과 접해 있다. 산자락에 대불사라는 자그마한 사원이 있다. 사원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마니룬(또는 마니차)이 나타난다. 여섯 글자의 주문인 ‘옴마니밧메훔’을 새긴 원통이다. 대부분 손에 쥐고 다니거나 사원이나 광장에 아담하게 설치돼 있다.
두커쭝고성의 거대한 마니룬
높이가 21m, 지름이 6m에 이르고 무게가 60톤이나 되니 열 명 정도가 돌려도 끄덕하지 않는다. 여덟 가지 길상인 소라, 깃발, 매듭, 연꽃, 항아리, 물고기, 양산, 법륜이 차례로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모여 영차 하며 힘을 쓰면 서서히 돌아가는데 모두 신바람이 난다. 불자가 아니어도 한바탕 신나게 돌리고 나면 온갖 시름을 씻은 듯하다.
고성으로 들어서면 왁자지껄하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서민적인 마을과는 사뭇 다르다. 세계적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객잔, 카페, 공예품 가게, 식당이 즐비하다. 처음 고성에 갔을 때가 2013년인데 이듬해 1월 11일 새벽 커다란 화재가 발생했다. 한 객잔 주인이 만취 상태에서 자던 중 침실 난로에서 발화했다. 목조건물인 고성은 순식간에 큰 피해를 봤다. 2016년 1월과 8월에도 다시 갈 기회가 있었다. 이제 다시 복원돼 옛날의 화려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고성에 밤이 오면 카페에서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오고 밤늦도록 이상향이라는 착각이어도 좋은 시간이 흐르고 흐른다.
샹그릴라 고성의 밤
러시아인 피터 굴라트는 1955년 출간한 <읽어버린 왕국>에서 ‘수많은 말발굽과 마방 무리로 넘쳐났다’고 고성 분위기를 기록하고 있다. 차마고도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을 때이다. 지금은 흔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차를 싣고 티베트로 향하는 마방의 안식처이던 고성이다. 관광의 성지라고 해도 과거의 흔적을 다 태워버릴 수는 없다. 여전히 티베트의 향기가 고성 곳곳에 풍긴다. 마음속에는 어떤 해와 달이 뜨는지, 향내 나는 추억을 담으며 늘 떠오르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