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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명 Apr 04. 2017

청보리 향기 맡으며 5,008m 둥다라산 고개를 넘다

두 국도가 교차하는 망캉 둥다라산 고개 - 최종명의 중국 대장정(07)

길, ‘길다’라는말? 사전으로 들어가 보니 뜻도 참 다양하다. 적어도 여행가에게는 길어서 생긴 말이라고 해도 좋다. 그 길이 긴 만큼 보고 듣고 느낄 일도 많은 것이니 말이다. 꼬불꼬불 끝없이 앞만 보고 가야 하는 차마고도는 ‘길’이다. 푸얼차가 아니라면 어찌 그 긴 노정을 생각하기나 했을까?


발효차는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니 지혜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2천 km가 넘는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데도 숨이 가쁜데 말은 어떻게 ‘생명’이자 ‘노동’을 승화시킨 것인가? 생명을 이어주려는 노동, 이것이 차마고도의 정신이다.


국도 214번 도로는 여전히 북쪽을 향해 달린다. 쾌청한 날씨라 선명한 빛깔의 하늘과 구름, 연두의 칭커(青稞)까지 펼쳐진 길은 눈이 부셔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다. 2시간 만에 차를 세운다. 차창 밖 칭커를 바로 앞에서 보니 더욱 짙푸른 감촉이 향기처럼 눈을 물들인다.


볏과식물인 칭커는 흔히 쌀보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노랑과 연두를 지나 연초록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수확 후 말리고 갈아서 국수도 만두도 만들어 먹는다. 게다가 술로도 담근다. 티베트에서 가장 유명한 술이라면 칭커주라 할 수 있다. 손님을 초대해 접대하는 말을 칭커(请客)라고 한다. 발음이나 뜻도 아주 좋다.


도로 안쪽에 농가가 하나 있다. 대문 앞에 아이 둘이 앉아서 무언가 열심히 먹고 있어서 다가가 본다. 푸른 콩이다. 낯선 이방인에게도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는 순박한 아이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콩에 시선이 자꾸 가니 몇 개를 넌지시 손에 담아준다. 콩을 그냥 먹고 있으니 걱정스러워서 물어본 것이었다. 정말 맛있게 훑어내며 야금야금 먹는 게 신기하다. 아이들도 먹는데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껍질을 열고 한 알을 씹었다. 그런다 무슨 달콤하면서도 싱그러운 맛이란 말인가.

생 콩 먹는 티베트 아이들

기사 쓰면서 콩 검색했다. 도대체 그냥 생으로 먹는 콩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티베트 고원만의 특별한 콩인가? 생김새는 자그마한 작두콩(중국어로는 다오더우刀豆라 함)과 비슷하다. 콧물이 콧잔등에 버젓이 남은 채 콩의 단맛을 풍기는 아이들과 잠시 눈빛을 나누고 일어선다. 저 나이 때, 배고픈 시절의 동네 꼬마를 기억해내고 아련해지는 마음이랄까? 우연으로 잠시 만난 순간마다 추억은 여행이 주는 고유한 ‘맛’이기도 하다. 다시 길을 떠나지만, 차창 뒤로 달려올 듯하다. 싱그러운 콩의 단내가.


망캉(芒康) 현으로 들어선다. 티베트 말로‘선묘(善妙)한 땅’이라고 하는데 아마도‘지극히 신비로운 곳’이라고 하면 될 듯싶다. 동경 98~99도, 북위 28~30도에 위치하지만, 평균 해발이 4,317m다. 그래서 8월 한여름이어도 몹시 덥지는 않다. 윈난에서 북쪽으로 온 사람과 쓰촨에서 서쪽으로 온 사람이 서로 만나는 도시다. 십자가의 가운데를 점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남북을 가르는 국도 214번과 동서를 가르는 국도 318번이 딱 만난다. 이제부터 라싸로 가려면 318번 국도를 타야 한다.

완만한 둥다산 고개로 가는 길
둥다산 넘어가는 길

갈림길 팻말이 조금 전 보였던 거 같은데 갑자기 가파르게 꼬부랑길이 나타난다. 산 능선을 따라 크게 원을 그리며 오르는 걸 보니 앞에 고산이 가로막고 있나 보다. 둥다산(东达山) 길은 더 이상 회똘회똘 하지 않고 완만하다. 이제 바야흐로 천장선(川藏线)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길고도 사무치게 감동적이라는 길이 시작된 것이다.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해발 5,008m라고 똑똑히 적혀 있다.

둥다산 고개

쓰촨에서 라싸로 이르는 천장선에서 두 번째로 해발이 높은 고개다.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금지 구역이라고 하며 천연의 요새, 천참(天堑)이라 부른다. 다르쵸가 휘날리고 바람도 산을 넘어갈 듯 세차게 분다. 표지판에 무경교통(武警交通)이 담당하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무장경찰은 일반 경찰보다 여러모로 세다. 국무원 교통부와 업무 협조를 하겠지만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는다. 특별한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둥다산이 있는 티베트는 평범한 곳이 아니다.

둥다산 고개를 넘어
국도 214번을 달려 둥다산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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