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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선 Sep 26. 2023

암, 이별 공식

나에게 왜 암이 왔을까?

암을 만난 사람이라면,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계속 자신에게 묻고 있지 않을까?


나에게 왜 암이 왔을까?

나에게 어떤 앎이 필요해서 암을 만났을까?



암을 만날 즈음 그런 신호가 많았다. 내가 늘 지니는 것들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한여름에 자동차 핸들 열선이 꺼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헤드라이트가 불이 안 들어왔고, 핸드폰 액정이 말도 안 되는 작은 충격에 깨져버렸다. 물론 불편했지만, 참고 지낼만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제대로 살펴보고 수리하기엔 내 삶이 너무 바빴다.


그리고 그해 가을 암을 만났다. 대학병원에서 최종 진단을 받고 바로 그다음 주에 수술을 했다.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난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라고 말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암이란 충격 그 자체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이제 좀 마음 PT로 사는 게 재밌어지려 하는데. 이 훼방꾼 암덩어리 수술로 빨리 때어버리고 내 일로 성공하고 싶었다.


암 수술은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수술은 매우 잘 되었고, 몸의 회복도 놀랍도록 빨랐지만. 문제는 마음이었다. 병원에 있는 16일 동안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와 살아있는 것에 대한 분노로 내 마음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감사는 알아줬지만, 분노는 눌러 벼렸다. 마음공부 제법 했다는 사람이. 이만한 일로 분노해서 되겠는가. 나에게조차 한마디도 못하게 했다. 스스로도 대화가 안 되는데 그 누구에게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저 매일 억울한 울음을 삼킬 뿐이었다.


수술로 끝이라 생각했던 암 치료는 향후 10년간 계속된단다. 애초에 수술로 끝일 수 없었는데 나 혼자 최상의 시나리오를 써놓고는 그리되지 않음에 또 분노했다. 감사가 줄어들고. 분노가 잦아졌다.

 

첫 항암을 앞두고 이번엔 타이어가 2주 연속 찢어졌다. 차 없인 꼼짝할 수 없으니 바로 수리를 했다. 갑자기 오랫동안 방치해 온 것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귀찮음을 이기고 카센터에 들려 헤드라이트를 갈고, 없는 부품에 대기를 걸어놓고 다음날 핸들을 고쳤다.


고치고 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반년을 불편하게 살았던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어차피 고칠 거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바로 고쳤다면. 몸과 마음의 불편한 시간은 굳이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보니. 오랫동안 방치해 온 내 마음이 보인다. 


몸의 증상만 병원과 약에 의존해 걷어내었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내 마음과 만난 시간은 정작 얼마 되지 않았다. 찢어진 타이어처럼 당장 못쓰는 게 아니라고 가장 먼저 만났어야 할 만나야 할 내 마음을

내가 미루고 또 미루었구나. 이 암은 내가 나를 제대로 만나야 끝이 나겠구나.



암이 나에게 온 것은

내 마음을 제대로 만나란 앎을 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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