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 후 함께 그네를 타며 웃는 아이들의 간지러운 웃음소리가 유난히 듣기 좋다. 비 현실적일 만큼 완벽히 행복한 오후다. 오늘 낮, 유언장을 쓴 시간들을 덮을 만큼 말이다.
기억해. 이 행복을.
"아, 이건 모양이 너무 안 좋네요. 안 좋을 가능성이 많아요."
유방 초음파를 하러 찾은 동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내 가슴을 보자마자 한 말이다.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초음파 보기도 전에 안 좋데. 안 좋으면 뭐 암이라도 된다는 건가? 뭐야 진짜 기분 나쁘게'
라고 생각하며 초음파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화면에 보이는 검은 점들이 거슬렸다. 그 크기를 재느라 쉬지 않고 계속 딸깍거리는 마우스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었다.
'왜 이렇게 길어? 2cm? 왜 계속 나오지? 하나가 아니야?'
한참을 체크하던 선생님은
'역시 모양이 좋지 않아요. 바로 조직검사 할게요. 좀 아파요'라고 했다.
초록색 수술보 밑에서 계속 생각했다.
'내가 왜 지금 이러고 누워있는 거지?'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남의 이야기 인터뷰 하듯 의사 선생님께 의미 없는 질문을 해댔다.
"선생님, 2cm면 크기가 너무 큰 거 아닌가요?"
"왼쪽은. 이 정도이면 그렇게 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초기는 아니에요. 그리고 다발성이네요. 림프절도 부어있어서, 다른 이유일 수도 있지만. 함께 제거하셔야 할 거예요. 오른쪽은 모양은 나쁘진 않지만. 역시 다발성입니다. 함께 제거하시는 쪽이 좋을 거 같아요. 결과는 다음 주 화요일 정도 나올 거고 연락드릴게요. 지혈하고 가세요."
난 회복실로 옮겨졌고. 지혈을 위해 올려놓은 납덩이를 안고 있었다. 그제야 가슴이 욱신거렸다. 검사받을 땐 무서워서 아픈지도 몰랐는데. 회복실에 혼자 누워있으니. 그제야 가슴 여기저기가 아리고 아프다.
내가 이렇게나 내 몸에 무신경했던가. 내 몸을 이리도 돌보지 않았던가. 회사 다닐 땐 잘 쓰기 위해서라도 잘 관리했던 거 같은데. 회사를 그만두고, 첫째 육아에 전전긍긍하다가, 둘째를 낳고, 첫째와의 관계가 극도로 틀어졌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던 시간. 그런 몇 년이 흐르고. 이제 육아를 좀 알겠고. 살만해졌다 싶었는데.
암일지도 모른다니.
암일지도 모른다니.
너무 억울했다.
왜 내가 암인데.
약국에서 약을 타는데, 그제야 눈물이 났다. 우산도 없이 집까지 울면서 걸었다. 비가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오늘 아침 아이들이 이상하리만큼 사랑스럽더라니. 오늘만 같으면 육아하겠다싶더니. 정말 모든 게 완벽한 아침이 더라니. 이제 좀 내가 나와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생겨서 이런 이벤트가 찾아온 걸까?
집에 와서 혼자 있으니 불안했다. 내 몸에 있는 것이 암이라면. 나에게 펼쳐질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네이버에 '유방암 중기'를 검색했다.
1) 유방암 5년 생존율 93%, 유방암은 완치율(5년간 재발 안 하면 완치라 본다)이 가장 높은 암이지만. 재발률(전이) 또한 높다고. 그래서 평생 잘 관리해야 하는 암이다.
2) 사이즈로 봤을 때, 전이 여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1-2기 사이임으로 바로 수술을 할 것이고. 다발성임으로, 부분 절제술은 안되고 전 절제술을 할 것이다. 요즘엔 전절제술을 하더라도 복원술을 동시에 시행할 수도 있다고 한다. 생각만 하던, 하지만 너무 아플 거 같아 무서워서 못했던 가슴수술을 이렇게 하게 되는 것인가?
3) 수술 후엔 항암 치료를 한단다. 3-4주 간격으로 4-8회. 머리카락이 빠지겠지. 아... 내가 지난달에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생머리를 급하게 단발로 자른 것이. 이때 받을 충격을 감하기 위해서였나? 세상 사는 게 참. 허투루 일어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 같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괜찮을 거라는 말만 계속하던 남편. 그래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지. 호들갑스럽지 않음이 고마우면서도 편안했다. 그래도 눈물이 났다. 무섭다고 했다. 퇴근하고 바로 온단다. 남편도 무섭구나.
그래도 너무 무서웠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혼자 있지 말란다. 친구가 있는 책방에 갔다. 지금 이 마음을 글로 쓰란다. '아싸 병이 왔다.'라는 제목으로. 저 친구 제정신인가? 마음먹기에 따라 지금이 지옥도 천국도 된다지만. 젠장. 난 아직 그 정도 내공은 아닌 거 같은데.
그래서 책을 펼쳤다. 혹시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책 속엔 답이 있을까 해서. 무슨 책을 읽을까 하다.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책, 나를 가장 많이 도와준 책. '자기 사랑노트'를 폈다. 아름답지만 그렇게 와닿지 않았던 페이지. 오늘 그 짧은 문장을 읽는데. 눈물이 났다.
'모든 것이 축복입니다.'
죽음이 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지금 아등바등하는 것들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죽음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의 무게를 재어보니 그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숨 쉬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나의 생존 외에 무엇이 문제일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축복입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았다. 반년 동안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에게 유방 조직검사란 이벤트가 찾아온 것일까? 이제 충분히 알겠으니. 다음 주 화요일 검사결과가 음성이라고 나왔으면 좋겠다. 혹시 양성이라면 남은 평생 내 몸을 잘 챙기며 살아야 하겠지. 나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려고 온 이 이벤트 또한 축복이구나. 아... 축복은 그런 뜻이었구나.
갑자기 이 상황이 버거웠다. 그래서 유언장을 썼다. 사람일은 혹시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유언장이 구구절절 남은 이들에 대한 당부사항이다. 당장 내 목숨도 어찌 될지 모르는 판에 남은 이들에 대한 눈물의 당부사항이라니. 난 아직 이 세상에 미련이 많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살기로. 그리고 다시 생존 계획서를 썼다. 남은 이들의 슬픔까지 걱정돼 두 눈 감지 못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찌 살아갈지 말이다.
1) 음성이라면?
난 지금부터 남은 인생동안 내 몸을 가장 먼저 챙기고 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이다. 병원을 다녀온 22년 9월 1일 10시부터 5시간 동안 느꼈던 이 감정을 절대 잊지 말자. 하늘이 무너질 듯 서럽고. 나를 아끼지 않은 순간이 원망스럽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미워하며 지낸 것을 한탄했던 5시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양성이라면?
2-1)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생존의 의지를 접지 않아야 하겠지
2-2) 그리고 치료를 받는 시간 동안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은 부탁을 하게 되겠지. 관계가 어려워 도움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극도로 꺼리던 나였는데. 그 주고받음이 싫어, 함께 하는 것을 피해왔는데.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겠구나.
2-3) 무엇보다 나의 행복이 가장 먼저인 삶을 살자.
이 상황에서 유언장은 뭐고 생존 계획서는 또 뭔가, 뼛속까지 ISTJ인 내가 웃겼다. 하지만 웃긴 게 대수인가. 덕분에 지금 난 미치지 않고 놀이터에서 아이들 그네를 밀어주고 있지 않은가. '오기'여도 좋고. '광기'여도 좋다. 일단 살자. 어떻게든 살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