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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선 Sep 14. 2023

마흔하나, B컵이 되었다.

암과 가장 행복하게 헤어진 엄마, 정경선

"정경선 님. 눈뜨세요. 이제 병실로 이동할게요. 잠들지 말고 두 시간 동안 호흡 잘하셔야 마취가스 다 빠져나와요.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 쉬세요."


'흠~ 하~. 흠~ 하~.'


갓 태어난 아기가 첫 숨을 내쉬듯, 내 유일한 할 일은 호흡인 것처럼 정성껏 호흡을 한다. 4시간 동안 멈춰 있던 내 폐의 폐포 하나하나에 산소가 돈다.


'무사히 잘 끝났구나. 다시는 널 수술대 위에 눕히지 않을게. 잘 견디어 줘서 고마워'

대견한 나의 몸과 마음에 깊은 감사를 보냈다.


얼마 후 교수님이 병실로 오셨다.

"수술 잘 끝났어요. 아이고 아직 옷도 못 입었네. 많이 아프죠. 살살 움직여서 옷 입어봅시다. "

 

전동 침대가 조금씩 올라온다. 가슴에 납덩이라도 올라간 것처럼 묵직한 통증이 밀려온다. 가슴이 볼록 솟은 환자복이 낯설다.


'아. 나 이제 B컵이지!'


40 평생 깡마른 A컵으로 살던 나에게, B컵 인생이 시작되었다.




작년 9월 양쪽 가슴에 유방암이 찾아왔다. 그날은 대학원 엠티날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학생들과 환영의 축제로 모두가 행복하던 저녁. 병원 전화 한 통으로 나는 막장드라마행 롤러코스터에 강제 탑승하게 되었다.

  

"정경선 님. 최종 검사 결과가 나왔고.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암이 맞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


그리고 의사 선생님과 나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작은 동네 병원이라 암 환자는 선생님도 처음이신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계신 듯했다. 좀 전까지 학생들과 춤을 추며 행복하던 나였는데. 전화 한 통에, 이 세상 가장 불쌍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전화를 끊자.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내 이성도 같이 끊어졌다. 보름 전 첫 검사 결과가 애매해서 추가의 추가 검사를 하며, 암이 맞다. 아니다. 몇 번 뒤집어졌었다. 그때마다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매일 다른 색깔의  눈물을 흘렸기에. 더 이상 흐를 눈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  당신은 진짜 암환자라는 그 짧은 전화 한 통에 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형수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암이라고? 나 이제 겨우 40살인데? 내가 평생 얼마나 성실하게 착하게 살았는데! 왜 내가 암이야! 왜 내가! 억울함과 함께 새로운 눈물 밀려왔다.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대로 모든 걸 놓고 싶었다. 하지만 난 두 아이의 엄마였다. 내 아이 크는 거 끝까지 봐야 했다. 그래서 암과 잘 헤어지겠다 결심했다. 어쩌면 오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좋았다. 무슨 힘이던 빌어서 살아야 했다. 겨우 7살, 3살인 아이들 곁에 어떻게든 있고 싶었다.






나는 암과 잘 헤어지기 위해 병원치료를 적극적으로 받기로 결정했다. 단단히 결심했고 치열하게 암에 대해 공부했다. 외과적인 수술과 함께. 지금껏 암이 올 수밖에 없었던 마음의 믿음 체계와 생활습관을 함께 바꾸기로 했다. 남은 인생 다시는 암과 만나지 않으려면, 그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과 마음을 준비해도 수술, 항암, 방사선, 호르몬치료로 이어진 지난 일 년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특히 마음이 힘들었는데. 마음 PT라는 일을 안 했으면 어쩔뻔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롤러코스터를 탔다. 재작년부터 마음 PT라는 브랜드로 살며 사람들에게


내 행복을 사수할 힘이 나에게 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원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자.


라고 외친 것은. 어쩌면 암과 헤어지는 동안 나를 살리기 위한, 하늘의 큰 뜻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암을 만난 나의 마음은 태풍 앞 촛불처럼 위태로웠고. 마음 근육을 키우는 마음 PT는 매일 나에게 절실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일 년간의 표준 치료가, 22일 전 가슴 재건 수술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초승달처럼 사라졌던 가슴은 다시 보름달처럼 차올랐다.

낙엽처럼 떨어졌던 머리카락은 봄날의 새싹처럼 다시 돋아났다.  


로 지난 일 년에 마침표를 찍기엔 너무 많은 일과 변화가 있었다. 암을 만난 건 힘든 일임은 분명했지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암 덕분에 나와 우리 가족은 엄청난 성장을 했고, 관계가 회복되었다. 암과 헤어지기 위해 어차피 쓸 에너지. 문제에 휩싸여 그 문제를 걷어내는 데에만 쓸 것이 아니라. 내 행복한 오늘을 사수하는데 써야 한다. 그 힘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믿고, 이미 행복한 나를 본 것처럼, 내가 원하는 오늘을 나에게 선물처럼 파티처럼 펼치자. 내가 원하는 오늘을 사는 나는 당연히 행복하고. 그런 삶이 점점 쌓이면 어떤 문제가 와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암과 헤어지는 지난 일 년의 기록을 남기려 한다. 나의 수치의 시간만큼 암과 헤어지는 사람들의 고통의 시간이 줄어들고, 나의 기쁨의 시간만큼 그들의 기쁨의 시간이 늘었으면 좋겠다. 나의 기록이 이제 막 암을 만난 이들에게 닿아. 암과 헤어지는 이들의 오늘이 행복과 사랑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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