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내가 사는 동네 지하철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말은 친구와 지인이 만나기 더 좋은 시기이고, 지하철역은 함께 모일 약속 장소로 적당한 곳이어서 연말이었던 그날 저녁 지하철역은 여러 무리의 사람들로 꽤나 북적였다. 지하는 바깥의 추위를 잠시 피하기도 좋은 곳이니 더 붐볐던 것도 같다.
그중 대여섯 명이었던 한 무리는 머리를 맞댈 만큼 가깝게 모여 공간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는 것인지, 이제 모여 목적지를 정하는 것인지는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들에게만 집중하고 지하철역 내 다른 사람이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그들 뒤로 한 사람이 난처한 모습으로 발을 동동 굴렀던 것은. 하지만 그 무리는 그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통이라면 그 무리를 피해 갔을 텐데 그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난처해하고 있었다. 뒤늦게 알아차린 그 무리가 길을 열어주고 나서야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가 발걸음을 내딛는 바닥에는 나아가는 방향과 그 반대 편으로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이 깔려있었다.새로 생긴 것도 아니고, 그곳에 오래 전부터 그대로 있었던 것일 텐데 누군가의 길은 다른 누군가의 무관심 탓에 쉽게 막힐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역이 아니라 길이 뻗은 다른 장소에서도 그 일은 마찬가지로 쉽게 일어나고 있었을 테다.
어쩌면 세상의 여러 문제는 무관심이 아니라 무신경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머리로는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누군가의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무신경하지 않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 것, 관심까진 아니더라도 신경 쓰며 잊지 않으려는 것이 어쩌면 배려의 시작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늦었을 수도 있지만 난 앞으로 더 세상 여러 일에 신경 쓰며 살고싶어졌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2019년 1월 6일 어른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