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퇴근길 난 털레털레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집에 간다는 마음에 신이 났지만 사무실에서 나온 뒤 긴장이 풀리자 어김없이 피곤이 몰려들어 몸이 무거워졌다. 바짝 추워진 날씨와 매서운 바람 탓에 지친 몸이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기도 했다.
터벅터벅 걸어서 회사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 옆으로 최근 설치된 '추위 대피소'가 눈길을 끌었다. 서초구가 '서리풀 이글루'라고 이름 붙인 간이 시설물이었다. 철골 구조물을 비닐로 덮어 잠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둔 것이었다.
타야 할 버스를 앞에서 놓친 나는 추위에 떨며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는 대신 이글루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가 나를 감싸며 환영해줬다. 온기 때문일까,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 묘한 감정이 내 안에서 솟구쳤다. 배려받는 느낌, 누군가 나를 신경 써준다는 기분이 문득 들었다.바깥 한 면에 적혀 있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여기 오신 여러분,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잠시 쉬워가세요"라는 문구는위로의 말처럼 느껴졌다.
이 설치물은 워낙 구조가 단순해 이를 설치하는 데 대단한 아이디어가 투입되지는 않아 보였다. 비용 역시 그리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서리풀 이글루 안에는 값이 제법 나갈지도 모를 작은 온열기구가 설치돼 있긴 했지만 이것 없이 기둥과 비닐로만 더 단순하게 만들어졌다 해도 정류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잠깐의 온기와 위로를 충분히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10분쯤 난 추위 대피소에서 머무른 뒤 나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멀어져 가는 서리풀 이글루를 보며 문득 '왜 이제서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구 '강남 따숨소', 관악구 '동장군 대피소' 등 비슷한 시설물을 최근 서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긴 하지만 분명 수년 전까지만 해도 드물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도 온기와 위로를 충분히 건네주는 이 시설물들이 왜 이제서야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걸까. 큰 비용을, 대단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이제서야. 조금 더 일찍 많은 곳에서 배려받고 있다는 기분을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외면하고 싶은안타까운 사건사고들이 뉴스를 매일 장식하는 오늘날,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어울리는 요즘을 살고 있는 나는 우연히 만난 온기에 감동하며 조금 더 빨리 이런 것들이 많이 생겼더라면, 온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더라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덜 각박해지지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배려와 위로보다는 언제나 비용을 줄이는 것, 효율을 높이는 것, 내 이익에만 몰두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오랜 기간 사회를 지배한 탓에 사람들의 마음이 차가워지고 날카로워지고 좁아져 배려보다는 외면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라는 후회스러운 생각도 했다.
'왜 이제서야'라고 적었지만 어쩌면 '이제라도 다행'인 건지 모르겠다.따뜻함을 느낀 누군가가 다른 이들에게 온기를 나눠줘야겠다고, 배려하고 위로하며 살아가겠다고 늦었지만 마음먹고 다짐했을 수도 있을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난 소망한다./ 2019년 12월 12일 어른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