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겸점심 Dec 19. 2018

요리하는 즐거움

인간이 그리는 무늬 - 최진석 

나는 평소에 음식을 자주 만들어 먹는다.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요리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론 모두에게 맛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나는 만족하면서 먹는다. 친구들은 종종 물어본다. 왜 굳이 돈 쓰고 시간 써가면서 요리를 하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요리하는 게 좋아서 라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지금은 대답할 수 있다.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를. 나는 내가 요리한 음식을 먹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최진석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일부분을 읽어 보자. 


사람으로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 있는데 것은 바로 성욕과 식욕이 발동되거나 실현될 때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을 때와 성행위를 할 때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투철하게 혹은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고 확인합니다.  p68


음식이 목구멍으로 들어갈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조금 돌려 말하면 경계가 허물어질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평소 익숙해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언제 살아날까. 외부의 것들이 경계를 넘어올 때 살아난다. 예를 들어보자. 수영장에서 발을 헛디뎌서 물에 빠져 본 적 없는가? 머리가 핑 돌고 눈앞이 캄캄해질 때 수면 위로 다급히 올라간다. 이때 허겁지겁 마시는 숨 한 모금. 이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지 않은가?


요즘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은 음식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기적이 아니라 겨우 생명을 연장하게 해주는 보충제 같다. 인공호흡기와 다르지 않다. 한 끼 때우려고 식당에 앉을 때가 아니라  재료를 사고 재료를 손질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한 숟갈 한 숟갈이 소중하다. 


나는 남들을 위해서 종종 요리를 한다. 일하는 곳에 빵도 구워 가고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해주기도 한다. 남을 위한 요리는 사랑의 표현이다. 상대방에게 음식을 해 주는 것은 그들에게 잠시나마 생명을 주는 행동이다. 미약하지만 사랑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사실 살기 바빠서 밥도 제 때 못 먹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이게 무슨 신선놀음이냐고 말할 수 도 있다. 하지만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위한 식사를 준비해 보라. 혀로 맛을 느끼고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가는 익숙한 과정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토믹 블론드 (Atomic Blonde ,20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