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그리는 무늬 - 최진석
나는 평소에 음식을 자주 만들어 먹는다.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요리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론 모두에게 맛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나는 만족하면서 먹는다. 친구들은 종종 물어본다. 왜 굳이 돈 쓰고 시간 써가면서 요리를 하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요리하는 게 좋아서 라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지금은 대답할 수 있다.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를. 나는 내가 요리한 음식을 먹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최진석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일부분을 읽어 보자.
사람으로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 있는데 것은 바로 성욕과 식욕이 발동되거나 실현될 때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을 때와 성행위를 할 때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투철하게 혹은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고 확인합니다. p68
음식이 목구멍으로 들어갈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조금 돌려 말하면 경계가 허물어질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평소 익숙해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언제 살아날까. 외부의 것들이 경계를 넘어올 때 살아난다. 예를 들어보자. 수영장에서 발을 헛디뎌서 물에 빠져 본 적 없는가? 머리가 핑 돌고 눈앞이 캄캄해질 때 수면 위로 다급히 올라간다. 이때 허겁지겁 마시는 숨 한 모금. 이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지 않은가?
요즘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은 음식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기적이 아니라 겨우 생명을 연장하게 해주는 보충제 같다. 인공호흡기와 다르지 않다. 한 끼 때우려고 식당에 앉을 때가 아니라 재료를 사고 재료를 손질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한 숟갈 한 숟갈이 소중하다.
나는 남들을 위해서 종종 요리를 한다. 일하는 곳에 빵도 구워 가고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해주기도 한다. 남을 위한 요리는 사랑의 표현이다. 상대방에게 음식을 해 주는 것은 그들에게 잠시나마 생명을 주는 행동이다. 미약하지만 사랑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사실 살기 바빠서 밥도 제 때 못 먹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이게 무슨 신선놀음이냐고 말할 수 도 있다. 하지만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위한 식사를 준비해 보라. 혀로 맛을 느끼고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가는 익숙한 과정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