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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겸점심 Nov 23. 2018

버닝 (BURNING,2018)

빈칸은 스스로 채워야 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영화가 끝나고 부터가 영화의 진짜 시작이라고 한다. 영화가 끝났을 때 수많은 의문점이 끊이질 않는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2007년에 개봉한 ‘밀양'이 대표적인 예다. 진정한 구원과 용서의 의미, 주인공의 방황, 어느 하나 시원하게 정리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만큼 오래 고민해보고 곱씹어보는 영화이다.

종수 - 남산타워에 비친 햇빛

올해 개봉한 ‘버닝’에는 많은 메타포들이 존재한다. 첫번째는 남산타워 유리창에 반사되는 빛이다. 종수는 해미와 성관계를 하다 벽에 비친 햇빛을 발견하고 이를 계속 응시한다. 어린 종수를 두고 도망간 어머니의 옷들을 직접 태워버린 종수이다. 그에게 해미는 비어있는 마음을 채워 줄 존재다. 한줄기 빛이라고 할 수 있다. 해미의 방은 북향이라 직접 햇빛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남산타워 창문에 비춰진 햇빛이 잠시나마 방으로 들어온다. 종수의 인생은 시원하게 햇빛 한번 들어오지 않는 북향집같은 삶이다. 반사된 빛일지라도 해미는 종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해미 - 귤까먹는 마임

두번째는 해미가 종수 앞에서 보여주는 마임이다. 해미는 귤까먹는 마임을 하며 종수에게 말한다. ‘귤이 있다고 믿는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거야’라고. 해미의 삶 또한 종수의 삶만큼 외로운 삶이다. 해미는 마임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외로운 삶을 이겨내 왔다. 행복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잊고 살더라도 한번씩은 느낄 것이다. 행복이 어딘가에는 있지만 본인에게는 없다는 걸. 그럴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아프리카 부시맨들이 춘다는 ‘그레이브 헝거’의 춤이 아닐까.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을 간 이유이기도 하고.

벤 - 비닐하우스

마지막 메타포는 비닐하우스이다. 벤은 2달마다 취미로 비닐하우스를 태운다. 지저분해 보이는 비닐하우스를 보면 자신에게 태워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그 비닐하우스를 태우면서 희열을 느낀다. 벤은 인생을 살면서 한번도 슬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젊은 나이에 논현동 주택에서 살고 포르쉐를 타고 다닌다. 그에게 행복은 소모품 같은 것이다. 돈만 있으면 걱정이 없는 세상에서 그는 결핍이라는 것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비닐하우스를 주기적으로 태우고 희열을 느낀다는 것은 소모적인 행복/쾌락을 상징한다.

이창동 감독

감독은 노골적으로 줄거리가 아닌 메타포, 은유로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영화 안에서 해미는 벤에게 메타포가 뭔지 물어보고 벤은 종수에게 그 뜻을 설명해 달라고 한다. 캐릭터들의 배경이나 생각을 관객에게 많이 알려줄수록 스토리는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캐릭터에 의도적으로 공백을 두면 다양한 의미를 관객이 직접 부여해야 한다. 이 영화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비워 놓은 빈칸들을 관객이 직접, 본인의 생각대로 채워가야 한다. 하지만 스토리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없앨 수 없다. 감독의 메시지를 조금 더 드러냈으면 더 보기 수월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이창동 감독이기 때문에 한번 생각하고 넘길 것을 두세번 생각하게 된다. ‘이창동 감독이기 때문에' 새로운 해석들을 기다리게 된다.

손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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