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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May 09. 2022

태풍의 눈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3학년이다. 고작 스물둘, 만으로 스무 살 밖에 되지 않은 한국에 있는 나의 친구들은 취업 걱정을 조금씩 하고 있다. 대외활동, 봉사활동, 학점관리, 어학공부.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어떤 스펙을 더 쌓아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기 앞에 주어진 기회들을 붙잡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때로는 너무 버겁다며 다 놓아버리고 싶다고 그냥 한바탕 울어버리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해야 할 일들을 찾고 있다. 나와는 다른 세상, 다른 이야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랬었는데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파란 하늘만 바라보다 보니 고요하고 평온하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비 오기 전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고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에는 따뜻하기까지 하다. 태풍 역시 그 중심은 아주 평화롭다. 내가 지금 딱 그런 상황인 걸까. 학기가 끝나갈수록,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올수록 왠지 모르게 조급해진다. 


그러지 말자고, 이 순간을 누리자고 다짐하고 약속했는데 자꾸만 불안하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나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고 돌아간다면 내가 적응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이미 천천히, 느리게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진 내가 다시 숨 막히게 바쁜 나날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 묻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부족해 보일 때 그 기회비용은 더 빛나 보인다.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대외활동 모집 공고와 아르바이트 공고를 뒤적인다.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아직 꽤 많이 남은 시간들의 퍼즐을 맞추고 있다. 그놈의 효율성을 참 비효율적이게 이곳에서 따지고 있다. 


그래, 차분히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관광을 공부하고 있고 이 공부를 좋아한다. 외국인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다. 그러면서도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법을 알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특히 시장과 골목길에 관심이 많다. 꼭 그 나라의, 그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아, 그리고 나는 테마파크도 좋아한다. 일상 속의 비일상, 현실과의 차단. 그 속에서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이런 불협화음 같은 조화가 정말 좋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보단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더 좋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돌아다니고 것이 더 좋다. 머리 쓰는 일보다는 몸 쓰는 일이 더 적성에 맞는다. 관광은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누려야 할 권리이고 이런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마땅히 기여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런 일이다. 


태풍은 적조 현상을 막고 대기와 해수를 정화하며 지나가는 지역에 충분히 물을 공급한다고 한다. 지금 이 불안감은 나에게 깨끗한 물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이 바람에 온통 부서지지 않도록 흔들리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나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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