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풍경
항상 창 밖이 보이는 왼쪽 모퉁이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과제를 했다. 그러면 하루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하늘이 맑구나, 오늘은 비가 오겠구나. 2층 높이로 훌쩍 솟은 나무는 처음엔 초록빛이었다가 붉게 물들었다가 어느 날 서서히 잎을 떨구었다. 그 나무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잎이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 적은 없는데 매일 아침 나무를 확인해보면 전 날보다 나무는 앙상해져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하늘색과 풍경 덕에 하루 종일 창 밖만 바라보아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기말 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오후 다섯 시쯤, 하늘이 형광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그런 색의 하늘을 처음 보아서, 너무 벅차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핸드폰 카메라는 그 황홀한 색을 잡아내지 못했고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두꺼운 회색 빛 구름으로 하늘이 덮여 있었다. 그 찰나를 눈에 담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눈이 오지 않는 겨울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 기억 속 겨울은 늘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미끌거리는 바닥에 넘어지지 않으려 발에 힘을 주어 걸어 다녔다. 하지만 호주의 겨울은 회색과 푸른빛이 뒤엉켜 있었다. 나뭇잎은 전부 떨어졌지만 그뿐, 손을 얼려버릴 만큼 춥지 않았고 얼음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은 금방이라도 폭우가 내릴 것처럼 두터운 회색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웠지만 어느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푸른빛이었다. 그 변화를 조금이라도 오래 관찰하고 싶어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변함없는 창문을 통해 본 세상은 늘 크고 작은 변화가 일고 있었고 익숙해진 그 자리에서 일상을 만들고 이상을 꿈꾸며 나 또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