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라문디 Jun 12. 2022

종강과 시험

한 학기 네 과목

1) Revenue Management 

Victoria University의 종강은 한국보다 3주 정도 빨랐다. 모든 수업을 종강하고 6월에 따로 시험을 보기 때문이었다. An의 말로는 정말 많은 학생들이 함께 시험을 보는데 그 학생들이 모두 같은 시험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인 시험의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뭐 그건 열흘 뒤 문제이고 어쨌든 나는 첫 종강을 맞이했다. 


내 자존감을 높여준 Revenue Management 조원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어 한국에서 가져온 책갈피를 하나씩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 그랬는지 고맙다고 몇 번이나 하며 정말 기쁜 표정을 지었다. 선물을 기쁘게 받아주어 내가 더 고마웠다. 


한국에서도 듣지 않았던 수업이라 내게는 참 어려웠다. 처음엔 강의를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포기하고 다른 짓을 했던 것 같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걸 알면서도 순간 스트레스받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포기했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그동안 왜 수업을 안 들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고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터라 집중하려 해도 강의 내용이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유일하게 물어봐 주신 교수님이었는데,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몇 년 전 너희 학교 선배를 가르쳐 본 적이 있다고, 괜찮은 학생이었다고 말씀해주신 친절한 교수님이었는데. 늘 후회는 다 지나가버린 후에 다가온다. 이 수업을 다시는 못 듣는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2) Live Performance Management

Live Performance Management, 내 자존감을 온통 깎아내려버린 그 수업의 종강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12주 동안 매 순간이 고역이었지만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그냥 후련했다. 그래도 교수님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드렸다. 부끄러웠지만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서 이력서도 뿌려봤는데 뭔들 못 하겠어하는 심정으로 당신이 생각하는 관광은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한국 학교 과제냐고 하시는 질문에 그냥 혼자만의 프로젝트라고 했더니 멋지다고 해 주시며 관광은 세계를 연결하는 것 (Tourism is connecting the world)이라고 답 해 주셨다. 영어는 안 늘고 뻔뻔함과 요리만 늘고 있다. 


3) Introduction to Event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빡빡하게 수업하셨던 Introduction to Event 교수님은 어쩐지 끝까지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내가 느끼기로는 영어권 학생들과 비영어권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같은 기준을 적용하셨고 그 덕에 과제도 시험도 정말 어렵고 힘들었지만 열심히 공부했다. 어차피 Pass 아니면 Fail로 기록될 성적이지만 노력 없이 간신히 Fail만 면했다 라는 생각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영어와 전공 공부를 동시에 하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 주신 교수님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결국 이 교수님께는 질문을 드리지 못했지만 이 과목을 수강하며 나 스스로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4) Introduction to tourism

한국에 돌아가면 Martin 교수님은 일본을 참 많이 좋아하셨던 강의에 대한 열정이 넘치시는 교수님으로 기억될 것이다. 유일한 한국인 학생으로 소외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왜 교수님은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을까 하는 궁금증과 한국을 조금이라도 알리겠다 라는 오기를 끄집어 내주셨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건네주시던 G’Day! How’s it going? Please Come in 이 엄청 그리울 것 같다. 마지막으로 What do you think is tourism이라는 질문을 하자 내게 관광은 너무나 복합적인 것이라 한 문장으로 대답해줄 수가 없으니 메일을 보내면 답변해주겠다 라는 관광학 교수님 다운 답을 해주셨다. 처음 내가 공책에 적어달라고 했을 때 no라고 하셔서 거절당한 줄 알았는데 더 심도 있는 사고를 하도록 이끌어 주신 것이었다. 


처음 3주간 한국인 학생이 이 수업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셨던 교수님께서 내가 한국인 학생이라는 것을 인지하시기까지 거의 8주가 걸렸다. 그 후 어느 순간부터 other countries from Japan, Germany, China…라고 말씀하셨던 교수님께서 Japan, South Korea…라고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나 관광학부로서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작은 변화가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5) Introduction to tourism - Trini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닌데, 한국어로 하면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영어로 말하려니 어휘도 생각이 안 나고 문법이 꼬였다. 튜토리얼 수업에서 Trini는 주제를 던져주고 그룹 별로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주로 렌, 모모코와 함께 했고 내가 발표를 맡았다. 머리가 하얘지고 말이 자꾸만 꼬였고 수업 시간이라 느리게 말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Trini는 끝까지 듣고 내가 한 말을 한 번 정리해 주셨고 네가 하려는 말이 이것이 맞니?라고 되물으시며 이건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조언해 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했던 첫날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에 가끔 답을 하기도 했고 처음보다는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몇 개의 튜토리얼 중 너희 수업이 가장 즐거웠다고 가장 참여도가 높았다고 말씀해 주신 것도, 외국인 학생이라는 것을 배려하여 정말 이해했냐고, 질문 있냐고 계속해서 물어봐 주신 것도, 엉뚱하게 꼬여버린 내 말을 이해하시고 간결하게 정리해주신 것도 정말 감사했다. 언젠가, 어디선가 또 만날 수 있기를, 좋은 인연이었기를.

작가의 이전글 축제의 도시, 멜버른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