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이 되면 '축하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뻘쭘하다고나 할까? 나는 어제와 내일과 같이 달라진 것 없는 나일뿐인데 갑작스러운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어쩐지 뻘쭘하다.
어쩌면 곧이곧대로 직설적으로 말해주면 조금은 감동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게 좋구나', ' 네가 없었다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았겠니?'
손발이 오글아 드는가? '생일'이란 글자를 빼고 무미건조하게 '축하해'라는 말만 들으면 '죽지 않고 살아있네? 축하한다'라고 들리기도 한다. 한돌, 두 돌.. 그렇게 서른 몇 해를 걸쳐 고비를 넘어가며 살아있어서 할수 있것이기에 사실 정말, 진심으로 축하하고 감사할 날이다. 축하할 날임이 분명함에도 살아있는것은 항상 당연했고 내일도 당연히 살아 있을 것처럼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가족 단톡방에 하나뿐인 남동생이 '큰누나~ 생일 축하해~'라고 이모티콘을 잔뜩 올렸다. 그것을 본 내 반응이 어땠냐고? 그래~ 생일 축하해. 하며 뒤늦게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선물을 급하게 고르면서도 한편으로는 '큰누나만 누나냐? 넌 둘째 누나 생일은 한 번도 챙기지 않더라' 꼭 이런 식으로 넌 큰누나 생일을 챙기는데.
나는 항상 니 덕에 남의 생일을 축하해 줘야 하는 사람이더냐?
축하는 각자 했으면 좋겠는데 왠지 등 떠밀려 하는 축하는 달갑지 않다.
나도 기념일에 대해 꼬박꼬박 챙기고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니 괜찮아! 하는 위로와
어찌 한 번을 내 생일 챙겨준 적 없는 동생이라는 사실보다
누나를 차별하나? 하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은 언니 조차도 그 '생일'이라는 것에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거다.
본인의 생일은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윤달인데. 3년에 한 번 기념할 수 없으니 그 근처 어느 날? 인가. 음력 인가로 매년 생일을 챙기기는 하지만 정작 진짜 본인의 생일 '3년 마다 오는 그 생일'을 잊고 지나갈 땐 가족들이 무심하다나.. 정말 말 그대로 생일 이몽이다. '남동생에게 생일 축하를 받으니 너는 좋겠다.' 하는데 그것조차도 완벽하지 않았다니..
생일이라는 건 당최. 기분 좋아야 하는 날이 맞는 건지.
기념일을 안 챙기면 섭섭함을 느낀다거나 집안 어른의 생신일 땐 그날 꼭 가족모임을 가져야 한다는 상황 때문에 얹잖은 일들도 생기니 말이다.
나의 어느 생일날 때다. 한참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카카오톡에 자동으로 생일이라는 알람이 뜨고서는 이것저것 기프트콘이 파티를 하듯 모여들었던 적이 있는데 나랑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생일 축하인사도 못 들었는데.. 어라? 저 사람이 나랑 친했나? 하는 사람에게는 선물을 받을 때 역시, '내가 생각하는 이 사람과의 거리, 그리고 저 사람이 생각하는 나와의 거리가 다를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감정은 측정할 수 없으니 다를 수도 있지만 어느 선에서 선물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정선이 없으니 온 만큼 돌려주는 수밖에. 그렇게 친한지 안 친한지 모르는 사람에게 건네받은 선물은 받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서 꼭 돌려주어야 했다. 그 후로 어떤 의미에서 뭘 줘야 할지 선물 고르기에 어려움이 생기고 쓸 때 없는 에너지 낭비라 여기며 생일 알람을 끄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생일을 챙기는 지인들은 없어졌다.
생일이면 어김없이 '생일 축하해' 다음으로는 좋은 날 돼라. 좋은 거 해라. 좋은 곳 가니? 좋은 거 먹었니?라는 질문들이 쏟아져서 아무것도 안 하면 내가 쓸쓸한 사람이 되는 게 마냥 싫어서 보란 듯이 더 잘 보내고 싶다고나 할까? 생일날에 하는 나의 행위들은 나를 위해서인 건지. 나를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인 건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생일은 참, 즐겁지 않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이야기를 일 년에 두 번씩 세 번씩 들을 수 있는데 생일날이 정해져 있는 관계로 한 번만 듣고 사는 건 아닐까?
되돌아올 나의 생일은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살아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보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