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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줌 Jun 23. 2022

생일이라는 묘한 날

생일축하해


생일날이 되면 '축하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뻘쭘하다고나 할까? 나는 어제와 내일과 같이 달라진 것 없는 나일뿐인데 갑작스러운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어쩐지 뻘쭘하다.

어쩌면 곧이곧대로 직설적으로 말해주면 조금은 감동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게 좋구나', ' 네가 없었다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았겠니?'

손발이 오글아 드는가? '생일'이란 글자를 빼고 무미건조하게 '축하해'라는 말만 들으면 '죽지 않고 살아있네? 축하한다'라고 들리기도 한다. 한돌, 두 돌.. 그렇게 서른 몇 해를 걸쳐 고비 넘어가며 살아있어서 할수 있것이기에 사실 정말, 진심으로 축하하고 감사할 날이다. 축하할 날임이 분명함에도 살아있는것은 항상 당연했고 내일도 당연히 살아 있을 것처럼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가족 단톡방에 하나뿐인 남동생이 '큰누나~ 생일 축하해~'라고 이모티콘을 잔뜩 올렸다. 그것을 본 내 반응이 어땠냐고? 그래~ 생일 축하해. 하며 뒤늦게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선물을 급하게 고르면서도 한편으로는 '큰누나만 누나냐? 넌 둘째 누나 생일은 한 번도 챙기지 않더라' 꼭 이런 식으로 넌 큰누나 생일을 챙기는데.

나는 항상 니 덕에 남의 생일을 축하해 줘야 하는 사람이더냐?  

축하는 각자 했으면 좋겠는데 왠지 등 떠밀려 하는 축하는 달갑지 않다.



나도 기념일에 대해 꼬박꼬박 챙기고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니 괜찮아! 하는 위로와

어찌 한 번을 내 생일 챙겨준 적 없는 동생이라는 사실보다

누나를 차별하나? 하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은 언니 조차도 그 '생일'이라는 것에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거다.

본인의 생일은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윤달인데. 3년에 한 번 기념할 수 없으니 그 근처 어느 날? 인가. 음력 인가로 매년 생일을 챙기기는 하지만 정작 진짜 본인의 생일 '3년 마다 오는 그 생일'을 잊고 지나갈 땐 가족들이 무심하다나.. 정말 말 그대로 생일 이몽이다. '남동생에게 생일 축하를 받으니 너는 좋겠다.' 하는데 그것조차도 완벽하지 않았다니..


생일이라는 건 당최. 기분 좋아야 하는 날이 맞는 건지.

기념일을 안 챙기면 섭섭함을 느낀다거나 집안 어른의 생신일 땐 그날 가족모임을 가져야 한다는 상황 때문에 얹잖은 일들도 생기니 말이다.


나의 어느 생일날 때다. 한참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카카오톡에 자동으로 생일이라는 알람이 뜨고서는 이것저것 기프트콘이 파티를 하듯 모여들었던 적이 있는데 나랑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생일 축하인사도 못 들었는데.. 어라? 저 사람이 나랑 친했나? 하는 사람에게는 선물을 받을 때 역시, '내가 생각하는 이 사람과의 거리, 그리고 저 사람이 생각하는 나와의 거리가 다를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감정은 측정할 수 없으니 다를 수도 있지만 어느 선에서 선물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정선이 없으니 온 만큼 돌려주는 수밖에. 그렇게 친한지 안 친한지 모르는 사람에게 건네받은 선물은 받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서 꼭 돌려주어야 했다. 그 후로 어떤 의미에서 뭘 줘야 할지 선물 고르기에 어려움이 생기고 쓸 때 없는 에너지 낭비라 여기며 생일 알람을 끄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생일을 챙기는 지인들은 없어졌다.


생일이면 어김없이 '생일 축하해' 다음으로는 좋은 날 돼라. 좋은 거 해라. 좋은 곳 가니? 좋은 거 먹었니?라는 질문들이 쏟아져서 아무것도 안 하면 내가 쓸쓸한 사람이 되는 게 마냥 싫어서 보란 듯이 더 잘 보내고 싶다고나 할까? 생일날에 하는 나의 행위들은 나를 위해서인 건지. 나를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인 건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생일은 참, 즐겁지 않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이야기를 일 년에 두 번씩 세 번씩 들을 수 있는데 생일날이 정해져 있는 관계로 한 번만 듣고 사는 건 아닐까?

되돌아올 나의 생일은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살아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보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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