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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니 Nov 07. 2023

우울해지기 좋은 직업, 마케터

뷰티 마케터라면 한 번쯤 겪을 법한 성장통에 대하여

 마케터는 참 우울해지기 좋은 직업이다. 

 인스타그램을 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케터는 트렌드에 민감해야 되는 직업이라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화려한 셀럽들을 팔로우하면서 나의 현실과는 괴리감 있는 삶에 늘 노출되어 있다. 유명인들의 인스타그램에 너무 오래 노출되다 보면 그들의 삶이 마치 '세상을 잘 사는 기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삶도 충분히 가치 있고 행복함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돈, 명품, 차, 혹은 살고 있는 집의 크기 등으로 그들의 삶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직업이 마케터가 아니었다면 '잘 사는 사람이네, 부럽다' 생각하고 넘기기 쉬웠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마케터이지 않나. 

 "요즘 그 친구 핫하다는 데, 얼마야?" 

 멀리서 보기에는 셀럽과 일하면서 빅 이벤트를 만드는 화려한 직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매출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해 셀럽의 유명세를 빌려서라도 성과를 내야 하는 직장인일 뿐. 심지어 셀럽과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내가 속한 마케팅 부서부터 대표, 회계팀까지 설득하고도 영업팀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회사에서 마케팅은 돈을 '쓰는' 부서로 인식되는 편이 흔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과정을 다 버텨내고 셀럽과 협업을 했더니 나의 경우 오히려 더 큰 괴리에 빠지기도 했다. 이미 차고 넘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내 연봉과 맞먹는 혹은 그보다 더 큰돈(광고비 혹은 모델료)을 주고 협업을 하는데, 협업의 성공 실패 여부와 별개로 내 삶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셀럽은 내 연봉 혹은 그 이상의 돈을 벌어 또 하나의 화려한 인스타 콘텐츠를 만들어 올릴 것이고, 회사의 매출은 고공행진을 하고 제품은 없어서 못 파는 품절 현상이 이어지더라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작은 수준의 연봉 인상이나 인센티브 일 것이다. 혹은 명예뿐이거나. 내가 기획한 협업과 마케팅 아이디어를 마치 K-POP 프로듀서들처럼 저작권을 등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어쩌면 명예마저도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함인지 모른다. 


 사실 나는 셀럽의 삶은 나와는 다른 것, 보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삶으로 여기면서 내 삶과는 비교하지 않는 것에 자신 있었다. 다만, 일이 크게 힘들고 버거워지기 시작한 후 순식간에 사고와 시야가 흐려졌다. 나 또한 정말 하루가 부족하게 일하고 열심을 다 하는데 돌아오는 보상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몸이 지친 시기였고, 지친 몸을 이끌고 일을 하다 보니 우울함과 불안이 금세 나를 덮쳤다.  


 어느 날은 우울이 곧 나를 덮쳐오겠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유심히 지켜보면 인스타 셀럽의 계정들을 언팔로우했다. 다시 정말 내 '취향'에 맞는 팔로우만으로 인스타그램을 정리해 보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한 스텝. 마케터도 개인의 취향이 있고 삶의 단계와 속도가 다른데, 대학 때 광고를 전공하면서 '광고인(혹은 마케터)이라면 어떤 제품, 브랜드도 팔 수 있어야 해'라는 교수님의 한 마디에 늘 내 관심사는 뒤편에, 소비자라는 사람들의 관심사와 취향에 집중해 왔던 것 같다. 정작 그 소비자가 누구인지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몸이 지치고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던 찰나에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에도 시간을 쏟지 못했다는 사실을 마주하니 슬픔을 참기가 힘들었다. 처음으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서 택시 안에서,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우울과 불안이 높다는 소견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나를 다시 아껴주고 있으니 혹시라도 걱정하는 독자분이 있다면 걱정은 마시라. 


 마케터도 인간이고, 똑같이 늙고 나이 들고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렵기도 하고, 나만의 특이한 취향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꼭 지금의 본인이 가장 잘 알고 무기가 될 수 있는 분야에서 마케팅하시기를 바란다. 배우가 나이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꼭 맞는 배역이 달라지듯, 마케터도 그리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지금 내가 겪고 아파하는 이 시간을 지나서 나에게 더 꼭 맞는 마케팅 분야를 만나기 위해 떠나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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