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감히 정의내리자면, 나의 존재의의를 타인에게 맡기는 행위라고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와 타인은 다르다. 나의 생각을 타인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이유는 원래 없거나, 나 스스로에게 있곤 한다.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고자 하는 이유는 나라는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나보다 소중한 누군가를 갖게 된다. 이 현상에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명명해보겠다.
인간은 모두 자유롭게 태어났다. 인간은 너무나도 자유롭게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이때 우리는 나에 대한 사랑을 발명해낸다. 내가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나의 쾌락을 위해서 나는 나 스스로를 사랑한다. 어릴 적에는 이런 나에 대한 사랑-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기로 함-이 있다. 하지만 점점 사회로 나아가며, 우리는 다양한 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고 익히곤 한다.
이것이 사회화라는 현상인 동시에 또다른 타인에게 사랑을 원하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 의의를, 무너지면 그만인 존재의의를 가볍디 가벼운 타인에게 맡기는 것. 이것이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즉 타인에 대한 사랑은 내 안에 있던, 내재되어있던 세상에의 존재의의를 타인에게 전가하여, 외재화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나보다 소중한, 나를 이 세상에 묶어두는 사랑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은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 나의 존재의의와 존재의미를 타인에게 맡기는 일종의 부탁을 하는 과정인데 여기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람을 믿고, 신뢰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존재의의를 맡기기로한 올바른 선택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믿고 나아갈 뿐이다. 그 결말에 무엇이 있던지간에, 다른 사람에게 한번 던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의 존재의의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끝나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면, 이 존재의 이유를 완전히 서로에게 맡기는 것이고,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갈 견고하고 의지가능한 외재적 존재이유를 만들 수 있다.
무자비한 세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음으로 무자비한 세계를 이겨내고 견뎌낼 의지가능한 외재적 존재이유를 만드는 것, 이는 우리의 텅빈 삶 안에 견고한 하나의 건물을 짓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것이라 명명할 수도 있겠다.
이것이 사랑을 의미있게하고, 아름답게 하며, 동시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발명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도구의 발명이 아니다. 사랑의 발명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은 이 부조리한 세상안에 존재하기를 선택한 유일한 존재이고, 이 선택의 이유를 발명해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이러한 숭고한 행위를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존재의의를 발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몇번의 발명, 몇번의 실패, 몇번의 성공에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사랑일까 이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