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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마나 Dec 31. 2020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

완벽한 이야기를 만나는 기쁨

모든 이야기가 끝난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진 민낯의 욕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고등학교 화학교사인 월터는 늦둥이를 임신한 만삭의 아내 스카일러와 뇌성마비를 가진 고등학생 아들을  중년의 가장이다. 생계를 위해 세차장 아르바이트까지 뛰어야 하는 그이지만 실은 그는 한때 노벨화학상 기여 공로를 인정받은 화학자요, 시가총액 수조 원대에 이르는 화학기술기업 그레이매터(Gray Matter) 공동창립자였다. 학문적 역량이라는 것이 물건처럼 사라지거나 잃어버릴  있는 것은 아닐 테니 우리는 자연스레 묻게 된다 – 어쩌다, 그런데 지금은 . 그러나 극으로부터 받아드는 질문은 이게 다가 아니다. 건강해도 모자랄 판에 폐암 말기를 선고받은 월터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고 남겨질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자 마약제조에 손을 댄다. 극은 화학교사 월터가 그의 압도적인 화학지식을 바탕으로 마약제조왕 하이젠버그가 되어가는 과정과  이후를 보여준다.  과정에서  드라마는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흔한 반전이나 의외의 전개가 없다. 오히려  반대다. 극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월터가 결국 죽게 되리라는 불안, 뛰어난 마약단속국 요원이자 월터와는 동서지간인 행크가 언젠가는 ‘하이젠버그 실체를 밝혀낼 것이라는 또렷한 예감, 잠시 봉인해 두었던 화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마약업계에서 대체불가의 마약제조자가 되어가는 월터의 성공에서 느껴지는 쾌감을 버무려내면서 장면 장면마다 반박 불가능한 개연성과 필연성을 부여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드라마는 봐야  이유가 충분하다. 긴장감 넘치는 상황설정과 치밀한 심리묘사 그리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있는 장면 간의 연결고리 등은 이미 ‘완벽이라는 수식어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드라마는 여기에 하나가  있다. 바로 완벽한 전개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 - ‘도대체 월터는  돈벌이로 마약제조를 선택했을까’. 그레이매터를 공동창립했던 엘리엇이 월터의 천문학적인 수술과 치료비용을 커버할  있는 의료보험을 포함하는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 제안을  왔음에도 월터는 그들의 손을 잡지 않았다. 처음에는 엘리엇의 아내인 그레첸이 월터의 과거 연인이라 사이가 껄끄러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역시 시원한 대답은 아니다. 월터는 죽음을 앞두고 있고, 마약제조에 손을  생각을  정도로 ‘돈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마약조직도 상대할  있다고 생각하는 그가 과거의 인연이나 자존심 때문에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확실한 그레이매터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점은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도대체 월터는 라는 질문은 이야기가 전개되어 갈수록 해소되기는커녕 되려 커져만 간다. 마약중독에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면까지 가진  제자  동업자인 제시가 번번이 문제를 일으켜 월터를 곤란에 빠뜨리는데도 불구하고 월터가 그토록 그를 아끼는 모습도, 충분한 돈을 벌었음에도 월터가 쉽사리 마약제조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모습도,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도대체 월터는 라는 질문에 오히려 우리가 집중할  있도록 돕는다. 그러한 면에서  드라마가 가진 완벽한 구조와 탄탄한 개연성은 ‘도대체 월터는 라는 질문에 시청자가 집중할  있도록 돕는 장치라는 생각마저  정도이다. 드라마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마지막까지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덕분에시청자 각자는 월터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게 되는 자신만의  순간에 이야기의 구조만으로 반전을 꾀하는 여타의 이야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반전 경험을 누리게 된다. 월터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 그래서 월터가 제안을 거절했구나!’, ‘! 그래서 시한부라는 설정을  두었던 것이구나!’, ‘! 그래서 제시를 그토록 아꼈던 것이구나!’, ‘! 그래서 월터는 정말 악당이 되어갔던 것이었구나!’, ‘! 그래서!’, ‘! 그래서!’라며 연신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이다. 물방울이 톡톡 터지듯, 하나의 판인  몰랐던 퍼즐이  번에 도르륵 맞추어지는 듯한 쾌감은 여느 스릴러나 추리물과는  색과 맛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드라마가  최고 평점으로 기네스북까지 등재되었으며  그토록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준다. 천재 화학자이지만 고등학교 화학교사로 살며 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온 그에게 폐암 선고는 어쩌면 원하는 것을   있는 면피의 수단이었으며 태어날 아기와 뇌성마비 아들 그리고 아내 또한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을게다. 그리고 제시가 토드의 개처럼 마약을 만들던 제조실로 찾아가 반짝반짝 윤을 내며 빛내던  관리된 도구들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루만지던 월터의 눈빛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월터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나처럼 극이 전개되는 내내 ‘알고 보면 월터 저놈이 진짜 나쁜 놈이야라며 욕지거리를 해댔다면 마지막 순간 월터에게 미안해질 수도 있으니 적당히 하시길 조언한다.


 되도록 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기실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에서는 스포일러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소한 장면들까지도 이야기의 핵심으로 역할을 하는 촘촘한 전개, 편차 없이 안정적이고 하나같이  역할에서 완벽하게 선보이는 배우들의 연기, 성급한 정보제공 없이 끈기와 인내로 극을 끌고 나가는 감독의 집요함까지, 보는 내내 연신 ‘미친, 나쁜 놈들이라는 말로 제작진에게 찬사를 보내게 되는  드라마는 가히 같은 시대에 만나는 고전이리라.


 그런데 더욱 반전인 것은 빈스 길리건 제작진의 최종 목적지는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가 아니었던 모양이라는 점이다. 완결되었다기에 마음 놓고 정주행한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를 끝내고 밀려오는 헛헛함이나 달래고자 시작한 스핀오프 시리즈 《베터  사울, Better call Saul》은 더하다 – , 정말이지 나쁜 사람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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