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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tsbie Jan 07. 2022

주제 : 삼시세끼

언론고시 작문

언론고시 중 작문 시험을 준비할 때 작성했던 글입니다.

작문이란 랜덤 주제 하나를 갖고 자유롭게 재밌고 독창적인 글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제한시간은 60분으로 두고 작성했으며, 언론고시 준비생분들이 이 글을 보며 이런 글도 있구나, 하는 짧은 인상만 받아도 좋을 것 같단 생각에 올립니다.



시작은 아주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부엌에서 밥을 하다 말고 한 여성이 국자를 휙 집어던졌다.

“이 놈의 역병 때문에 매일 불 앞에 있는 게 보통일이 아니야. 웬 놈의 재택 근무다, 홈 스쿨링이다. 덕분에 삼시세끼를 맨날 하고 앉아 있어.”

아침을 차리고 나면, 점심 준비. 점심 차리고 나면, 저녁 준비. 잠에 들기 전 미리 아침 준비. 하루 종일 밥만 차리고 있는 본인의 처지를 한탄한 여자의 외침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불만으로 쌓여갔다. 

“여보~ 오늘은 쇠고기 무국으로 부탁해~ 맵싹하게! 알지?”

손도 많이 가는 쇠고기 무국을 부탁하는 남편이, 꼴 보기 싫어보였을 정도.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역병이 길어지고 가족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오랫동안 서 있느라 허리는 끊어질 정도였고 엄청난 설거지 거리에 손은 퉁퉁 불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꿈에서도 밥을 차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폭발해 버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녀는 평소 본인이 즐겨 찾던 맘카페, ‘새끼클럽’에 혁명의 불씨를 지펴올렸다. 


‘제목 : 저와 함께 이 세상 주부들의 노고를 알릴 분, 함께 해주세요.

작성자 : 삼시새끼


집에 있는 식구들이 세 끼 다 챙겨먹는 게 당연한 줄 알고 꼬박꼬박 밥 달라고~ 밥 달라고~ 아주 당연하게 말하는데. 이거 저희 가만 있어서 되겠습니까? 저희의 노고가 당연한 걸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 여기 계신 분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오늘부로, 혁명의 불씨를 지펴올리고자 합니다. 저희 주부들의 숨겨진 노고들을 낱낱히 파헤치고 세상에 드러내어 치하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저와 선봉장으로 동참하실 분은 아래 댓글로 함께 해 주시죠.’


그러자 두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미운 우리 새끼 : 제가 적임자인 거 같군요. 함께 하겠습니다.’

‘내 눈에만 예뻐보이는 내 새끼 : 저도 뜻을 같이 하겠습니다. 밀회 장소는 저희 집 다락방으로 하시죠.’

혁명의 돛는 순풍을 달았다. 세 명의 새끼 클럽 회원들은 가족들이 잠든 새벽마다 조용히, ‘내 새끼’ 집의 다락방에 모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모여서 한 행동은 바로..! 


논문을 써내려가는 일이었다.


그녀들은 주부이기 이전에 멋진 여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삼시새끼는 경제학, 미운 우리 새끼는 사회학, 내 눈에만 예뻐보이는 내 새끼는 통계학을 전공했다. 그야말로 이 트리플 전공 조합은 완벽한 논문을 쓰기에 적합한 환상의 콤비였던 것이다.


“주부가 밥을 하지 않고 파업을 선언할 때 생기는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은 무엇이죠? 식구들의 당혹감, 비싼 웃돈을 얹어가면서 사먹어야 하는 외식비.. ”

“학생이 집밥을 못 먹었을 때 생기는 파생적인 비용은요? 배고픈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을 못 하고, 선생님은 더 크게 목소리를 내어 외쳐야 하고, 그러면 선생님도 배고파지고....”


수많은 가정들과 계산식 속에 논문은 하나씩 완성되고 있었다. 그들은 본인들이 발표하게 될 논문이 세상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될 지도 모른 채 은밀하게, 하지만 매우 위대하게 글을 써내려 갔다.


‘COVID19 상황에서 미처 산정 되지 않은 가사노동의 가치_삼시세끼의 경제학적 효용을 바탕으로’ 

(이하 삼시세끼 효용 논문이라고 부른다)


꼬박 1년을 투자한 논문이 드디어 완성됐다. 세 사람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 논문을 신문사에 투고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저, ‘삼시새끼’님 맞으시죠? 스웨덴 왕립 과학원입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스웨덴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무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말이다. 정황은 이랬다. 변두리 자그마한 경제지에 실려 올라간 ‘삼시세끼 효용’ 논문이 우연찮게 외국인 신문 편집자에게 들어가게 됐고, 그 편집자가 해당 논문을 SNS에 올리면서 논문이 엄청나게 바이럴된 것이었다.


‘삼시세끼 효용’ 논문은 한국인 주부에게만 어필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메리칸 주부, 멕시칸 주부, 재패니즈 주부 등 국경을 넘나들어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주부들이 환호의 shout out을 보냈다.

“I definitely agree with it!”

“好好!!!”

모든 주부가 자신들의 숨겨진 노고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준 해당 논문에 공감했다. BBC, NBC 등 굵직굵직한 해외 언론사들도 이 논문에 주목했다.

‘COVID 19 속, 모두가 놓치고 있었던 주부들의 추가적인 수고로움을 상기시켜준 올해 최고의 논문!’


그렇게 된 경위로, 세 주부는 한국인 최초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 것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세 주부가 올해의 경제학상을 거머쥔 것에 이의가 없었다. 그만큼, 세상에 꼭 필요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논문이었던 것이었다. 노벨상 발표가 난 직후, ‘삼시새끼’와 2명의 공동저자에게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이렇게나 위대한 논문을 써 낸 사람이 누구인지, 이 세상 모두가 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소감 한 마디 해주세요!” “어떠한 이유로 논문을 쓰기 시작하셨나요?” “논문 작성을 할 때 주안점을 뒀던 부분은요?”

쏟아지는 질문들 속, ‘삼시새끼’가 말문을 열었다.

“우선, 나와 함께 해 준 ‘우리 새끼’ ‘내 새끼’들에게 감사하고 집에서 밥 달라고 외쳤던 나의 남편에게도, 논문을 작성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주부들이여, 당신들의 노동은 정말 가치 있습니다! 이 말을 먼저 드리고 말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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