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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berry Jun 23. 2020

사리가 나오려고 한다

[미국 육아] 코로나 시대의 가정 보육



내가 사는 주에서는 3월 말부터 재택 명령stay-at-home order이 내려졌지만, 아이들이 감기 증세가 있었던 3월 첫 주부터 모든 일상생활을 중단하고 집에서만 지내기 시작했다. 집콕 생활을 시작한 지 꼬박 4개월이 되어 간다.


사리가 나오려고 한다.





코로나19 이전의 삶


락다운lock down과 재택 명령이 있기 전에는 평일의 스케줄을 소화했다. 나는 원래 게으른 인간이지만 임신을 한 후부터 매일 밖에 나가는 다소간의 부지런함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콧바람도 쏘여주고 다양한 자극을 접하게 할 목적이었다. 몸이 피곤해도 시간이 금방 갔다.


• 평일 오전: 공립 도서관 스토리타임story time, 피트니스 센터 차일드 케어child care

• 평일 오후: 아기 체육관gym 수업, 동네 공원/놀이터, 장을 봐야 하면 간단한 그로서리groceries 쇼핑

• 가끔 모든 일정 무시하고 어린이 박물관children's museum과 동물원

•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피트니스 센터에서 아이들과 수영, 공원/놀이터 나들이, 주중에 무거워서 못한 그로서리 쇼핑

• 영상(너튜브): 일주일에 한두 번, 한 시간 정도씩. 남편이 주중에 아주 늦은 야근을 하는 날




코로나 시대의 집콕 생활


이렇게 일주일 꽉 채워 오전 오후로 나다니던 아이들과 집에 갇혔으니 그 답답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코로나 이전의 독박 육아는 마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걸 알게 됐다. 몬테소리나 유아교육을 공부했던 육아맘들의 소셜 미디어를 팔로우 하지만 게으른 내가 따라할 수 있는 것만, 준비 시간이 짧은 놀이만 몇 가지 해준다.


1) 마당에서 놀기

집콕 초반에는 마당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마당을 최대한 활용해 보았다. 3월 초부터 여름이 시작되는 남남부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물놀이: 가정용 수영장(inflatable)과 물놀이 테이블에서 물놀이를 마음껏 하게 했다. 마당 잔디에 물을 줄 때 호스를 주고 물을 주게 했다. 둘이 호스를 서로 잡겠다며 싸우는 게 귀엽다.

미술놀이: 물감으로 도장 찍기, 붓으로 그리기, 색연필로 그리기, 스포이드로 물감 뿌리기 등을 시켰다. 마당에서는 청소 걱정도 잔소리도 없다.

모래놀이: 물놀이 테이블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게 했다.

촉감놀이: 물놀이 테이블에서 밀가루 촉감놀이를 시켜줬는데 의도와 달리 밀가루를 털어내기 바쁘다.

비눗방울

그러나 준비와 뒷정리를 합하면 30분 이상 걸리는데 아이들이 재미나게 노는 시간은 길어야 한 시간. 5분 놀고 그만 한다고 한 적도 있다. (빠직) 마당에서 놀고 나면 흠뻑 젖거나 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들어오면 바로 씻어야 한다. 4월에 들어서며 아침부터 푹푹 찌니 핑계 삼아 마당에서는 3~4일에 한 번 저녁 목욕 시간 직전 잔디에 물 줄 때만 논다.


2) TV 시청

나는 초기 유아기early childhood의 미디어 노출을 지양한다. 첫째는 18개월에 처음 티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번에 15분, 일주일 2회 정도였다. 아이가 크면서 티비 시청 시간도 늘었지만 주 2시간을 넘은 적은 없었다. 마당놀이를 한참 할 때만 해도 집콕 전과 비슷한 빈도(주 1~2회, 한 시간씩) 유지했다. 남편이 3월 말부터 재택 근무를 시작했고 아무래도 남편이 집에 있으니 그의 근무를 방해하게 되었다. 마당놀이의 한계도 느끼고 있었다. 휴식 시간 1도 없는 독박 살림+독박에 가까운 두 아이의 육아에 기약 없는 격리라니, 나는 바짝 말라갔다. 라고 하지만 게으른 엄마의 변명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두 시간 동안 티비를 보여줬다. 거의 매일. 코로나 이전 도서관이나 피트니스 센터 활동이 영상물로 대체된 것이다. 그 두 시간 동안 아침 설거지, 점심과 저녁 준비를 마친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놀면서 청소와 빨래를 한다. 단점은, 티비도 자주 보니 아이들의 주의를 오래 잡아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격리 이전에는 티비를 끌 시간이 되면 울던 첫째가 이제는 나에게 "엄마 이제 티비 꺼."라고 한다. 코코멜론Cocomelon은 아이에게 생각보다 많은 걸 가르치고 있다.

집콕 기간이 길어지며 다시 산책을 늘리기로 했다. 집밥도 덜 해 먹으며 영상 노출도 일주일 2~3회로 줄였다.


3) 산책

더위를 핑계로 일주일에 한두 번 저녁 산책만 나갔었다. 저녁이라고 해도 섭씨 29도(화씨 90도)다. 한적한 주택가지만 인종 차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좋은 핑계였다. 격리 3개월이 지나면서 문득 아이들이 집에만 있어서 스트레스를 풀 구석이 없다는, 너무 당연한 생각이 났다. 아침에 아이들 식사를 챙기며 기온을 확인하니 섭씨 27도(화씨 81도). 지금이다! 더워지기 전에 나가야겠다! 매일 아침 30분 정도씩 산책을 나간다. 둘째는 넘어지기도 하고 흙도 파먹어서 집에 들어오면 목욕을 해야 한다. 욕조에 둘째를 넣으려고 하면 첫째도 알아서 들어와 둘이 좋다고 노니 시간도 잘 간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남편도 함께 저녁 산책도 나간다. 대인 방어가 가능하여 자전거도 킥보드도 챙긴다. 차를 타고 5분 거리 공원에 나가 호숫가를 한 시간 정도 돌거나 동네 골목을 더 멀리까지 나갔다 온다.


4) 실내 놀이

요리: 머핀 믹스를 사서 머핀을 굽고, 피자 도우dough를 사서 치즈 피자를 만들었다.

플레이 도우play doe: "엄마가 해봐." 무한 반복.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플레이 키친play kitchen미끄럼틀을 샀다. 키즈카페 부럽지 않다.

트랙 돌기: 거실-다이닝룸-부엌 트랙을 이유 없이 뛴다. 아이들은 이걸 가장 신나 하지만 엄마아빠는 열 바퀴 돌면 지친다.

역할극: 첫째가 두 달째 아기돼지 삼 형제, 토끼와 거북이 역할극을 시킨다. 쉬지 않고 입바람을 불고 엉금엉금 걸어가야 한다.


5) 독서

엄마가 하나인 게 문제다. 첫째가 책을 들고 무릎에 앉으면 둘째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책을 가져간다. 다른 걸 줘도 꼭 첫째가 보는 그 책을 가져간다. 첫째가 소리 지르며 둘째를 때리고 둘째는 울고 아수라장이다. 반대로 둘째가 무릎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첫째가 다른 책을 가져와서 둘째를 밀어낸다. 다시 아수라장이다.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타겟Target에서 아이들 책 2+1 프로모션을 한다. 좋아 보이는 책을 상시 카트에 담아두었다가 프로모션 할 때 와장창 산다. 벽장에 숨겨두고 1~2주에 한 권씩 꺼내 준다. 격리 기간 동안 둘째가 좀 컸다고 취향이 생겨 매일 같은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도 하고 첫째가 읽는 책을 같이 보기도 한다.


6) 드라이브

온라인 주문은 대부분 택배로 받지만 매장 픽업만 가능하거나 당장 필요할 때가 있다. 직원이 차로 가져다주는 서비스curbside pickup로 주문해서 아이들을 태우고 나간다. 아이들은 차에서 못 내리지만 바깥 구경이라도 한다. 집에 오는 길엔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메뉴를 사온다. 나도 콧바람 쐬고 한 끼 식사도 해결한다.


7) 장 보기

장 보는 패턴도 변했다. 자주 가는 곳(코스트코, 홀푸드, 한인 마트) 각각 1~2주마다 가서 필요한 만큼만 사왔었다. 그러나 재택 격리를 시작하며 모두 한 달에 한 번을 원칙으로 하니 어디든 다녀만 오면 냉장고와 팬트리가 가득 찬다. 이렇게 미니멀리스트의 꿈은 멀어진다. 아이들을 카트에 태우고 구경하는 재미도 없어졌다. 남편과 나 중 한 명만 오전에 나가서 장을 봐온다. 마스크도 쓰고 비닐장갑도 낀다. 갔다 온 사람은 사온 식품과 물건들에 70% 알콜을 스프레이로 뿌려 소독하고 다른 사람이 소독된 것들을 냉장고와 팬트리로 넣는다. 나갔다 온 사람은 바로 샤워하고 입고 나갔던 옷은 바로 세탁한다.





경제 재개 후의 삶


3월 말 재택 격리를 시작할 즈음엔 두 달이면 안정세가 올 줄 알았다. 그 두 달이 지난 현재 조기 경제 재개reopen로 바깥이 더 위험해졌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은 마트의 주차장에서는 태반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걸 볼 수 있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5월 마지막 주) 수영장 파티와 해변 휴양도 충격적이었다. 경제 재개=코로나 종식이 아닌데. 나갔다 올 때마다 코로나19를 극복한 미국의 모습을 미리 보는 기분이다.


내 맘대로 두 달 정도 격리를 예상했다가 그 두 달이 지나고 기약 없는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함은 이내 무력감이 되었다. 같은 날 첫 확진 사례가 나왔지만 모국과 거주국의 초기 대응 적극성 차이에서 비롯된 현재의 인명 피해 상황은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작년에 한국에 갔다가 사정 상 1월에 미국에 들어온 게 뼈아팠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인종 차별과 혐오 범죄 뉴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좋은 핑계였다. 엄마가 몸과 마음을 놓을 때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더 늦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부쩍 큰 첫째가 엄마랑 집에 있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통한 인지, 정서 발달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지만, 엄마 사랑이라도 듬뿍 받아라. 둘째가 말문이 트이기 전 영어 환경에 노출시켜 귀를 트이게 할 시기에 도서관 스토리타임에 못 가는 게 가장 아쉽다. 가을 학기부터는 아이들을 일주일 두세 번 어린이집(Mother's Day Out)에 보낼 계획이었는데 내년 초에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 와중에 피트니스 센터와 어린이 박물관, 아기 체육관은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킨다며 재개장 공지를 해온다. 재개장 한 달이 다 되도록 확진자 소식이 없는 건 확진자가 정말 없어서일까 검사를 안 해서일까 하며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다음 주에는 동물원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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