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nterberry Dec 12. 2020

내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미국 월세 유목기 (2)


아파트 #1.

3년 4개월 거주 (최초 계약 + 계약 갱신 2번 + 월 단위 계약month-to-month lease 4개월)

2층. 카펫 바닥. 차고 연결attached garage.



전편 <미국 아파트, 탐색부터 거주까지>에서 언급한 대로 치안과 위치(한인 마트 3분, 코스트코 7분)를 고려하여 게이트가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되었다. 집과 단지에 대체로 만족했다. 운 좋게 정남향 유닛이라 집이 밝았고, 메인터넌스maintenance 요청도 대부분 당일이나 다음날 오전까지는 처리해 주었다. 특히 양 옆집 소리가 들린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미국 아파트나 타운하우스 경험이 있는 사람 상당수가 공감할 옆집 소음 이슈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입주 1년 반이 되었을 때, 과장 조금 보태 현관문에서 서른 걸음 거리에 시에서 대대적으로 조성한 산책로가 났던 것도 이 아파트의 매력도를 더했다.


좌. 거실 창에서의 뷰. 나무 사이로 난 길 바로 앞에 산책로가 있었다. - 우. 산책로 가는 길 봄꽃.



2년 반째, 첫째 출산 전후로 단지 내 분위기 변화를 감지했다. 

1) 주차장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 적이 없었는데 며칠에 한 번씩은 꽤 크게 들려왔다. - 노래 한 곡 정도의 시간을 넘긴 적이 없었으니 별 일 아니라 생각했다.

2) 저녁 시간에는 주차장 여기저기서 이동형 그릴에 바베큐를 해서 해질녘만 되면 밖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실내에서 불fire을 쓰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아파트 내에는 가스 스토브 대신 전기 스토브가 있었다.) - 저녁 시간에 베란다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킬 때 냄새가 들어왔지만, 문을 닫으면 냄새가 들어오지 않았고 담배 냄새도 아니니 문제 삼지 않았다.

3) 입주 초기에는 걷기 전의 아주 어린 아기들이나 미취학 아동 몇 명 정도만 보였는데, 어느새 5~10세 정도 아이들이 많아져서 주차장에서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고 뛰어노는 소리가 많이 났다. - 아이들 하교 시간인 오후 3시 전후부터 저녁 식사 시간까지, 아이들 몇 명이 떠드는 소리 정도라 약간은 거슬렸지만 애들이 많아졌네 하는 생각만 했다.


입주 3년 차였던 당시 월세는 계약 갱신을 두 번 하여 최초 계약 월세($R)보다 $200 정도 높게 내고 있었다($R+200). 최근 신규 입주 월세는 얼마인가 쓸데없는 호기심이 일어 아파트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우리가 내는 월세보다 신규 입주 월세가 $100 가량 낮았다($R+100). 오후~저녁 시간에 바깥이 소란한 것 말고는 별다른 불만은 없어서 당장 이사할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재계약을 두 번이나 했는데 월세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오피스에 협상이나 해볼 요량으로 반경 5마일 내 아파트 시세를 알아봤다. 방과 화장실 개수가 같고 비슷한 면적에 차고도 없는(격리 차고detached garage도 아닌 야외 주차장) 아파트의 월세가 더 비쌌다($R+300 이상).


수수께끼가 풀렸다. 위치나 구체적인 내외부 스펙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 조건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하게 보자면 아파트 #1은 교통과 편의시설이 거의 같은 근처의 다른 아파트 대비 월세가 저렴하여 이전(=우리가 처음 이 아파트에 입주할 때)과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찜찜했지만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계약이 끝날 때까지 이사하지 않았다. 세 번째 계약이 끝날 즈음 남편은 이직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언제 이사를 할지 몰라 한 달 단위로month-to-month로 매달 웃돈short-term lease fee $300($R+500)을 내기로 했다. 월 단위 계약 2개월 차 남편의 이직 계획이 좌절되고,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이 도시에서 더 지내야 했다. 월세를 낮추기 위해 6개월 이상의 재계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때 아이와 산책을 나갔다가 단지 내에서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이웃을 몇 달만에 마주쳤다. 그녀가 다음 달에 이사를 한다고 해서 축하한다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고작 3마일 떨어진 아파트로 간다며 덧붙이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지난달에 우리 앞동에서 슈팅shooting(총기 사건) 있었잖아. 여기 처음에 안 그랬는데 지금 이상한 사람들 너무 많아. 당장 떠나야 해." 빌딩 외벽에 슈팅 자국이 있다며 나를 데리고 가서 보여주었다. 우리집 앞동의 옆동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밖에서 빵 소리가 몇 번 났던 날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독립기념일도 아닌데 (겨울이었다.) 누가 불꽃놀이를 하나 보네 했었다. (역시 독립기념일이 아니면 불꽃놀이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떤 남자(외부인)가 여자친구(아파트 주민)를 해하려는 시도였단다. 단지 입구 게이트가 고장나도 재깍 안 고치고 몇 개월째 활짝 열어놔서 게이트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퇴근한 남편에게 당장 이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슈팅까지 듣자마자 주변 아파트 검색을 시작했다. 그동안 아파트 물이 안 좋아졌다는 대화를 여러 번 하면서도 여러 이유(직장, 계약, 아이와 함께 셀프 이사)로 이사를 보류하고 있었다. 생명의 위협도 아닌데 조금만 더 참다가 이직과 함께 이사하자고 합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생명의 위협)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출처: 이말년 시리즈)


바로 다음날 큰길 건너의 단지를 투어 했다. 한 달 후 입주 가능한 유닛이 딱 하나 있었고 그 자리에서 입주 신청서application를 쓰고 나왔다. 그 다음날 아파트 #2의 입주 승인을 받자마자 아파트 #1에 퇴거 고지move-out notice를 했다. 약 한 달 후 돌 직전의 아이를 데리고 모든 짐을 직접 싸서 이사했다. (셀프 이사 광광)


아파트 #1을 떠나고 한참 지나 문득 다른 사람들은 이 아파트를 어떻게 평가하나 궁금해서 구글 리뷰를 살펴봤다. 리뷰가 1점과 5점으로 나뉘었다. 1점의 이유에는 오피스 직원의 무례함과 비전문성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도난(1층 유닛에서 베란다 문을 통해 침입, 오피스에서 적극적 조치 없었음) 여러 건, 유닛 내외부 담배 냄새, 늘 오픈 마인드인 게이트 등이 언급되어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참 좋아했던 곳이었다.




그렇게 안전을 찾아간 아파트 #2에서는 안전을 제외한 최악의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