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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berry Apr 22. 2021

아는 것이 힘이다

미국 월세 유목기 (7)

월세 유목기 시리즈를 기획한 계기가 된 일이었는데, 본 편을 쓰기 위해 복기하면서 나 스스로 너무 지쳐서 마지막 편의 글이 너무 늦어졌다. (구독 취소 않으신 분들 고맙습니다.) 직접 겪고 글을 쓰는 나도 이렇게 지치는데 읽는 사람은 얼마나 지칠까 싶었다. 독자의 피로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글의 구성을 여러 번 다시 했지만, 이 상황 자체가 지난하고 복잡하여 두통을 유발할 수 있음을 미리 알리고 시작한다.




남편의 직장에 이변이 없다면 우리는 꽤 오랫동안 미국 남부의 이곳에 살 예정이라, 하우스 렌트 1년 계약 종료 시점에 맞추어 집을 매수하여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19 때문에 그 안에 일정을 맞추지 못하고, 집 주인과 월 단위month-to-month로 렌트를 연장하면서 월세를 $100씩 더 내기로 합의했다.

* 하우스 렌트 연장: 아파트 계약 연장과 비슷하다. 계약서에 명시된 퇴거/계약 연장 고지notice 기간이 있다. 리얼터 피셜, 특별한 양식은 없고 이 기간 내에 계약 연장 기간, 새로운 월세, 새로운 퇴거 고지 기간을 합의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 단, 모든 것은 문자, 이메일 등 기록을 남겨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원래 계획보다 조금 늦어졌지만 다행히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았다. 클로징* 직전까지 매수 일련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월세 유목 청산 만쉐이! 기쁨은 잠시, 이삿짐 업체는 가구와 박스를 옮겨주기만 한다. 모든 짐을 셀프로 싸고 풀어야 한다. 또르르.

* 클로징closing: 한국으로 치면 등기 이전. 주택 담보 대출 승인 등 모든 절차가 완료되어 집의 소유권과 열쇠를 완전히 넘겨받는 것. 전액 현찰로 구입하지 않는 경우 매도자와 집 매수에 합의한 후 약 1.5~2.5개월 정도 후에 클로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안 여기저기 박스가 쌓여있고 당장 필요한 짐만 겨우 풀어두고 있던 이사 3일 차, 전前 집 주인이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고용한 리얼터(이하 리얼터1)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집 주인 부부가 이사 및 청소(집 주인이 전문 청소professional cleaning를 요구했고 우리는 그에 응했다.) 완료 후 집을 둘러본 후 보증금*을 어디서 얼마나 제할지 책정한 내역을 전달한 것이다. 모든 내역을 합하면 $1,000이 넘었고, 보증금의 2/3 규모였다.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정당하게 제하는 비용이라면 이의 없이 내고 이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 보증금security deposit: 우리의 경우 1개월치 월세 금액($1,500~$2,000)이었다. 입주 전 입주 신청 비용, 첫 달 월세와 함께 집 주인에게 송금했다. 집 주인이 퇴거 후 집 상태를 점검한 후 일부를 제한 보증 금액을 반환한다.


1) 뒷마당 나무 다듬는bush trimming 비용 ($50)
2) 부엌 벽 얼룩 제거를 위한 페인트 비용 ($50)
3) 식기세척기 수리 비용 ($100) - 거실 화장실의 환풍기fan 고장 난 걸 함께 수리하면서 $200이 들었지만, 우리에게는 $100만 청구한다고 했다.

4) 퇴거 고지 기간 위반 (1/2개월치 월세: $750~$1,000) - 우리가 퇴거 고지move-out notice 기간(30일)을 지키지 않아서 계약서에 따라per contract 1개월치 월세를 공제해야 하지만, 본인은 1/2개월 치만 공제해도 적당하다고 덧붙였다(주1). 또한 우리가 집을 시장에 내놓는 데 협조(=말끔한 상태의 집 사진 촬영)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언급도 했다(주2).




나를 화나게 한 항목은 3과 4 항목이었다. 특히 4 항목은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3) 식기세척기 수리 비용 $100

퇴거 고지 후에 식기세척기가 고장 났다. 처음에는 돌아가다가 중간에 멈췄다. 집 주인에게 알렸더니 여자 집 주인(이하 여주인)은 팬데믹과 아이들을 운운하며 우리가 이사를 나간 후 수리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일리 있는 말이고 이사까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은 시점이라 동의했다. 이사 다음날 수리 후 식기세척기 배수구가 막혔다며(clogged) 수리비를 우리에게 내라고 했다. 우리가 입주할 때는 잘 돌아갔던 것이니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인정. 리얼터1에게 나는 애벌 세척prewash을 철저히 해서 배수구가 막힌 것이 이상하다고 소심하게 항변해 봤지만, 계약서에 식기세척기 수리도 세입자 책임이라는 조항이 있다는 말에 꼬리를 내렸다.


4) 퇴거 고지 기간 위반 1/2개월치 월세


(주1) 우리는 렌트 종료 50일 전에 이메일로 퇴거 고지를 했고, 당일 남자 집 주인의 답장을 받았다. 퇴거 고지를 한 그 달 말일, 월세 살이 마지막 달의 월세를 100% 지불했다. 한 달치 월세 전액을 지불했으니 그 기간 내에서는 이사를 언제 나가든지 집 주인이 왈가왈부할 영역이 아니었다.


(주2) 리스팅에 올린 집 사진이 엉망인 것은 우리의 잘못도 있었지만 촬영일을 갑자기 바꾼 여주인의 변덕 탓도 있었다. 우리가 퇴거 고지를 하면서 매수하는 집의 클로징 날짜를 언급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여주인이 생각한 이사 날짜(=클로징 날짜)와 실제 우리가 계획한 이사 날짜(=클로징 한참 후 월말)에는 10일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녀의 계획대로 클로징 직후에 우리가 사는 상태로 집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짐이 다 나간 빈 집을 찍고 싶어했다. 우리는 월말에나 이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야기하여 월말 이사 다음날로 빈 집 사진 촬영을 약속했다. 그런데 클로징이 밀렸다. 이사도 3일 미뤘다. 여주인에게 사진 촬영을 어떻게 할지 (원래 약속한 날짜에 짐이 있는 집 vs. 3일 미루고 빈 집) 물어보았다. 그녀는 원래 약속했던 날 사진을 찍기를 원했고, 우리는 집을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한 사진 촬영일 5일 전 밤에 그녀가 별안간 다음날 아침 집 사진을 찍을 사람(리얼터1)을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새벽까지 치운다고 치웠지만, 두 아이와 사는 집의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녀는 이것을 집을 매물로 내놓는 데 우리가 협조하지 않았다고 트집 잡은 것이다.


다음날 아침 리얼터1은 사진을 찍고 집 현관에 락박스lock box(현관 열쇠를 넣어놓는 함, 리얼터가 비밀번호로 열어서 열쇠를 꺼낼 수 있다.)를 걸었다. 누군가 집을 보러 올 때(쇼잉showing) 우리가 집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나(세입자)는 리얼터1과 긴밀하게 연락을 했다. 새 베프 생긴 줄. 락박스를 건 날부터 이사하는 날까지 일주일동안 열 두 번의 쇼잉이 있었다. 우리도 일정을 조정해야 해서 쇼잉 최소 2시간 전에 연락하여 가부可否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한 번도 거절한 적은 없었다. 집 사진이 깔끔하지 않은 것이 미안하여 쇼잉에 최대한 협조했다. 쇼잉 1시간 전에 연락이 왔을 때도 집을 비울 수 있는 상황이라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온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여자가, (1) 퇴거 고지 기간을 안 지켰다고? 증거가 있는데? 한 달치 월세를 제해야 하는데 아량을 베푸는 척하면서 반 달치가 적당하다고? (2) 갑자기 사진 찍는 날을 바꾼 게 누군데? 집을 렌트 시장에 내놓는데 협조를 안 했다고?



전쟁을 준비했다.


나는 우리가 집을 매수할 때 함께 했던 리얼터(이하 리얼터2)에게 전화를 했다. 집 주인이 이런 식으로 보증금을 부당하게 뜯으려고 하는데, 우리가 어느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리얼터2는 우리가 잘못을 1도 하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다.

• 퇴거 고지 기간을 지킨 이상 돈을 1원도 줄 필요가 없다.

• 사진을 찍을 때 집이 완전히 정돈되어 있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엄격히는 책임 소재가 없다. 법적으로 집을 렌트 시장에 내놓을 때 유책 사유가 되는 세입자의 행동은, 열쇠를 넣은 락박스를 현관 문에 못 걸게 하거나 집 사진을 못 찍게 하는 행동인데, 우리는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았다.

• 현재 세입자가 1년 이상 거주했고 현재 상태의 집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집 주인은 과거 사진stock photo을 쓸 수 있다. 리스팅에 이것은 과거 사진이고 현재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다는 것을 명시할 수 있다고 했다.

리얼터2는 이 집 주인이 특별히 나쁜 게 아니라 보통의 집 주인들이 최대한 보증금을 안 주려고 한다고 했다. 현명하게 판단하여 적당히 주고 끝내는 것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위의 1,2,3 항목과 같은 자잘한 내용은 퇴거 전 직접 처리하는 것이 보증금도 지키고 집 주인과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전쟁을 시작했다.



1차전

나는 퇴거 고지가 기간 내에 이메일로 이루어졌으며 답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리얼터1에게 전달했다. 여주인은 퇴거 고지 이메일의 날짜를 확인했는지 4 항목의 공제액을 1/2개월치에서 1/4개월치로 제안했다.


2차전

나는 여주인의 카운터 펀치를 거절했다. 나는 빈 집의 사진을 찍는 것이 미뤄진 3일 치의 렌트가 합리적인 공제 금액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법적으로는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클로징과 이사 날짜가 밀려서 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자 여주인은 리스팅 사진의 미흡한 상태로 인해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적었다며 (일리 있지만 심증일 뿐이죠.) 그에 대한 보상을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우리가 이사 날짜를 여러 번 바꿨다고 아주 길------------게 물고 늘어졌다. 우리가 처음 말한 이사 날짜(=클로징 날)보다 이사를 늦게 하면서 본인이 원래 함께 일하던 리얼터와 일정이 맞지 않아 새 리얼터(=리얼터1)를 고용해야 했다는 말도 했다. (동정심 유발 작전인 듯했지만, 우리가 계약 조항을 모두 지킨 이상 리얼터를 누구를 쓰든 우리와 상관 없는 일이다.)


3차전

굳이 따지자면 우리가 처음에 클로징 날짜를 괜히 언급하여 오해의 소지를 남긴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집 주인에게 보내는 그 어떤 문자나 이메일에서도 클로징 날짜 근방에 이사한다는 말을 흘린 적이 없었고, 이사 날짜도 딱 한 번 바꿨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메일의 모든 문장에 반박하며 빨간펜 선생님이 되었다. 빨간펜의 내용은 위에서 말한 내용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사를 월말에 하려고 했다. 그 증거(퇴거 고지일 근방에 받은 이사 업체 견적서)도 있다. 우리는 클로징 날 혹은 직후에 이사한다는 말을 절대로 꺼낸 적이 없다. 이사 날짜를 자꾸 바꿨다고 하는데 딱 한 번 바꿨다. 빈 집 사진을 원했던 건 당신이다. 퇴거 고지를 50일 전에 했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가 사는 상태의 집 사진을 월초에도 찍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등) 그래서 결론은 답정너 4 항목에 대한 적당한 공제 금액은 3일 치 렌트 금액이라고 답했다. 이것도 사진 촬영 당시 집이 정돈된 상태였다면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본인은 우리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입히기보다 새 세입자를 얼른 구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뭉뚱그려 청구했던 1,2,3 항목을 영수증을 첨부하여 실비 청구하겠다고 했다.


4차전

이제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1,2,3 항목을 손보는 자리에 내가 참관하지 않는 한 언급된 부분 외에 이것저것 수리하고서 나에게 눈탱이 씌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돈을 뜯기느니 돈이 더 들더라도 우리가 핸디맨*을 고용하여 직접 손보는 것이 나았다. 흥분 상태로 그녀에게 모두 우리가 처리할테니 집에 들어가도 된다는 허가와 차고에 있는 여분의 페인트를 써도 된다는 허가를 내달라고 했다.

* 핸디맨handyman: 페인트, 빌트인 가전, 가드닝gardening, 배관plumbing 등 집에 관련된 대부분의 수리 사항을 대부분 처리해 주는 사람. 지역과 숙련도에 따라 커버 범위와 비용이 다르지만, 한 번 부르면 시급과 출장비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200 정도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휴전 제안 및 종전

분노의 이메일을 보내고 끊겼던 이성의 끈을 이으며 찾아온 현자 타임. 만약 그녀가 집에 못 들어가게 할 경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었다. 1,2,3 항목을 실비로 정산한 금액은 4 항목의 최초 공제 금액(1/2개월 치, 1,000불 미만)보다 클 수도 있었다. 질러놓고 급 후회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본인이 1,2,3 항목 공제는 최초안(합계 $200)을 유지하며 4 항목을 1/4개월 치 공제하는 방향으로 타협을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 여주인에게 바로 답이 왔다. 그녀도 남편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렇게 상황을 종료했다.


연장전

평화로운 며칠을 지내다가 갑자기 이전 집에 놓고 온 것들이 생각났다. 서울시에서 출산 축하 선물로 받은 온습도계와 아이들이 냉장고 밑에 넣은 공룡 자석. 전 집 주인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면 바로 연락하여 놓고 온 것이 있으니 다시 가지러 가도 되겠냐고 물어봤겠지만, 지저분한 전쟁을 치른 끝에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다. 다시 며칠을 고민하다가 "내가 보증금도 뜯겼는데" 하는 생각에, 밑져봐야 본전 하며 여주인에게 연락했다. 의외로 여주인은 쿨하게 그 주말에 본인이 그 집에 갈 일이 있다며 시간대를 맞춰서 오라고 했다. 보증금 반환액을 계산하여 정산도 해주겠다고 했다. 고마움에 조각 케이크까지 사들고 가서 온습도계와 공룡 자석을 찾아왔다.




이사 일주일 후, 이사한 집의 식기세척기가 2 항목과 똑같은 증상으로 돌아가다가 멈췄다. 내가 문제구나! $100과 함께 배수구 막힘을 떠올리며 너튜브에서 식기세척기 막힘(dishwasher not draining, dishwasher clogging)으로 검색한 동영상을 보고 그대로 필터를 뜯어 비웠더니, 잘만 돌아간다. 부들부들. 나 같은 문외한도 5분만에 해결할 수 있는 건데 $100을 뜯겼다. 며칠만 더 일찍 멈추지. 흑.



이사한 집 근처 호수공원 산책하며 마음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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