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에 정전이라니!
미국 남부의 이 주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이 주에는 두 계절이 있다. 여름과 두 번째 여름. 이 지역에서 꼬박 1년을 지낸 후라 이마를 탁 치고 공감했다. 아침 9시부터 섭씨 30도는 기본, 불쾌하도록 높은 습도로 무장한 여름과, 습도가 낮고 기온은 오락가락하는 두 번째 여름이 일 년의 반반 정도인 것 같다.
2월에 들어서며 반소매 옷을 꺼내야 했고, 일 최고 기온이 섭씨 20도를 넘어가며 여름이 시작되는구나 했는데... 하루아침에 기온이 섭씨 0도를 향해 곤두박질쳤고, 일기예보는 영하 12도와 눈 기호를 자랑하고 있었다. 백몇년만의 추위라고 하는데, 이 주가 미 합중국에 병합된 시기를 고려하면 대충 역대 가장 추운 날씨라는 말이다.
이곳의 일기예보는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어젯밤부터 싸리눈이 내렸고 아침 기온은 영하 9도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정전이 되었다. 자정을 넘은 지금도 전기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여름밖에 없는 곳이지만 바닥 난방이 되지 않아 구비한 한국의 난방 텐트 덕에 아직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주 내내 영하권이라고 해서, 이 지역에서 쓸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온수매트를 어젯밤에 꺼내 틀고 따뜻하게 잤는데, 오늘 아침 바닥의 온기가 전혀 없었다. 전원 버튼을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급히 온수를 틀어보니 다행히 온수는 들어오고 있었다.
전기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지만 생존해야 한다. 뉴스에서는 모레까지도 복구가 안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는 가정도 곧 끊길 수 있으니 불필요한 전기 사용은 자제하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아무리 여름왕국이지만 눈 한 번 왔다고 온 동네가 정전이라니. #할많하않
가스 스토브도 전기를 끌어다 쓰니 음식도 할 수가 없다. 아침은 급한 대로 시리얼을 먹었다. 남편은 휴대용 가스 버너(a.k.a. 부루스타)로 점심, 저녁을 해 먹자고 했다. 내가 그렇게 반대하다가 한국 잠깐 갔을 때 남편이 이때다 하고 사둔 그것. 이사하면서 남편 몰래 버리려다 혹시나 마당에서 고기나 구워볼까 싶어 잠시 생명을 연장한 그것. 가스 버너로 냉동실에 있는 갈비탕을 하나 꺼내 데워서 찬밥을 말아먹었다. 내친김에 마당의 눈밭을 보며 스키장 기분 내며 라면도 끓여 먹었다. 이렇게 미니멀리스트의 꿈은 또 한 발짝 멀어졌다.
전기가 끊겨 냉장고를 열면 안 되는데 대체 뭘 해 먹자고 하는가!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곳의 도로는 차가 다닐 상태가 아니다. 겨울이면 사람 키만큼 오는 저 윗동네에서는 눈이 올 조짐이 보이면 제설차가 대기를 한다지만, 여름밖에 없는 여름왕국에는 제설의 개념이나 있으려나 모르겠다. 2~3년에 한 번 1~2cm 눈이 오는 미국 중남부만 해도 제설 장비가 없어서, 눈이 올 때면 온 동네가 멈췄다. 지난주 강추위와 눈 예보가 뜨자마자 이 지역 공립학교는 오늘과 내일(월요일과 화요일) 휴교령을 내렸다. 도로가 얼어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눈이 온 후 낮 최고 기온 섭씨 영하 9도에 꽝꽝 언 도로에 나갈 수는 없었다. 딜리버리delivery, 시도도 안 해봤지만 이 골목 상태를 보면 안 될 게 뻔했다. 어떻게든 집에 있는 재료로 대충 해결해야 했고 오늘은 성공했다.
첫째는 미국에 눈이 안 오는 줄 알고 있었다. 중남부에서 태어나고 남남부에 사는 데다, 이번 겨울 한국에 눈이 많이 오며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보내주신 "한국의" 눈 사진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식어버린 온수매트에서 일어나 창 밖을 본 첫째는, "엄마! 미국에도 눈이 왔어요!" 하며 뛰어다녔다.
오전에 하늘이 개고 해가 뜨면서 뒷마당의 눈이 녹기 시작했다. 눈이 녹기 전에 눈싸움을 해야 해! 아이들을 급히 중무장시켜서 앞마당으로 나가 눈을 만지게 했다. 싸리눈이라 눈사람을 만들 수가 없었다. 집 앞 골목에서 토끼와 개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아이들도 발자국을 나란히 내두었다. 둘째가 장갑도 자꾸 벗겨지고 콧물은 나고 얼굴은 발갛게 얼어 칭얼대서 핑곗김에 냉골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어릴 때 눈이 정말 많이 온 날이 있었다. 당시 살던 집 마당에서 내 키보다 큰 눈사람을 만든 기억이 난다. 장갑을 챙기다가 짝이 맞지 않았는데 엄마가 난처해하면서 짝짝이로 그냥 끼우라고 하셨던 것까지도. 아빠가 찍어주신 그날의 사진에는 내가 기억하는 즐거움이 그대로 묻어 있다. 그날의 사진과 추억이 특별해서 그 중 하나를 결혼식 식전 영상에 쓰기도 했다. 내가 딱 지금의 첫째 나이일 때였다. 내가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은 아이의 평생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첫째를 대하는 태도에 더 신중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가 넘어갈 시간에야 정신이 들었다. 정전과의 전쟁은 어두워지고 나서가 진짜다. 전등 없는 어두움과 난방 없는 냉골. 밤에도 전기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살아남기 위한 대비를 했다. 해가 지기 직전 방을 뒤져 랜턴 두 개를 찾아내고 2~3년은 모셔두었던 구스 이불을 꺼냈다. 아이들이 추위에 대응할 수 있게 저녁을 배불리 먹이고 간식도 양껏 먹였다. 잠옷 두 겹에 패딩을 입히고 양말도 두 켤레씩 신기고 난방 텐트 안에 이불 두 겹 덮고 캠핑 분위기 내며 놀다가 재웠다.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더 딱하다. 비만 안 오면 매일 같이 놀이터와 공원을 활보하던 아이들이 온몸 칭칭 동여매고 종일 집에 갇혀 있다가 잘 때까지 둘둘 싸매여 있다.
공기처럼 내 곁에 존재한 전기가 없어지며, 평소 하지 않던 생각을 조금 하게 됐다. 나는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전기에 의존해서 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불을 키는 것부터, 밥을 해 먹고 음식을 보관하는 데도, 와이파이는 물론 각종 전자기기 충전, 저녁 시간 전등 사용과 24시간 냉난방까지 전기 없이 이루어지는 활동이 거의 없다.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부분은 역시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인데,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지요. 쩝.
나는 환경 이슈에 아주 조금의 관심을 가지고(=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부러 정보를 탐색하지는 않음) 쓰레기를 줄이는 데 아주 소극적인 실천(=덜 사고 덜 버리자)을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여름왕국의 혹한기와 같은 기상 이변은 환경 파괴로부터 시작됐고, 나는 그 환경 파괴에 일조해 왔고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는 반성을 잠시 했다. 지금까지의 환경 파괴에 지분이 거의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지구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도 그 맥락에 닿아 있다. 설이 막 지났으니 올해의 목표로 삼아도 되겠다. (의식의 흐름 끝.)
제발 나의 가정이 틀리고 히터 돌아가는 소리에 눈을 뜨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2월 15일 (월) 정전 17시간째의 기록
덧. 이렇게 글을 발행하려고 했지만 데이터조차 잘 되지 않아 실패했다. 화요일 아침에는 히터 소리가 아니라 바람 소리에 깼고, 온수마저 끊겼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호텔이라도 잡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호텔도 전기가 끊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해가 들며 골목의 눈과 얼음이 완전히 녹는 것을 확인하고, 햄버거라도 사 먹자며 차를 몰고 나갔다! 햄버거와 치킨이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 나갔는데 웬 걸. 신호등은 먹통이었고 같은 블럭의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다. 햄버거 원정대가 되어 문 연 데까지 가보자며 점점 멀리 나갔다. 평소 20분(약 10마일, 16Km) 거리의 코스트코까지 문을 닫은 걸 확인하고 주유도 못했다. 가로 세로 약 10마일의 사각형 내에 있는 대부분의 집과 상점은 전기가 없는 채로 지내고 있다. 온 동네가 멈춘 중에 로우즈Lowe's, 홈 디포Home Depot 등의 각종 집 관련 자재를 파는 상점만 바글바글했다. 주변 호텔 역시 전기가 끊겼을 걸로 예상하고 그쪽까지 가지도 않았다. 햄버거 득템에 실패하고 그 중 문을 연 마트에 줄 서서 들어가 빵과 시리얼을 사왔다. 그런데 집이 제일 추워. ㅠㅠ 실내 온도 섭씨 13도. 앞집 옆집을 보니 주차장에서 차 공회전 시키며 몸도 녹이고 휴대폰 충전도 하는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 온수가 돌아왔다.
덧의 덧. 정전 48시간만에 전기가 돌아왔고, 이 글을 발행할 수 있다! 전기는 되찾았지만 혹한기 체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물이 끊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하나둘 들려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물이 나올 때 바지런히 요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