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말미에 '인간의 활동은 이것도 무력화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인간의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공업, 자원, 운송 등의 측면은 뻔한 설명이다. 자연생태계 차원에서만 설명해 보자.
인간은 작물을 개량하여 활용하는데, 농지에 심긴 작물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활용된다. 따라서, 인간이 그 식물에게 특정의 지역과 환경에 살게 하고, 용도를 고정하게 되면, 그 대가로 그 작물이 변하는 기후에 적응하여 생존하도록 개발해 주어야 한다.
생산량과 품질, 연관 산업 체계와 사회 활동, 문화와 종교적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각 작물에 대한 요구를 변경하기 힘들게 된다. 따라서, 각 작물은 기후에 적응하여 변형되고, 집단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하며, 인간의 용도에 덜 적합해진다. 이렇게 '생존과 활용' 측면의 두 균형이 자리 잡도록 인간의 추가적 역할이 기대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죄다 실내에서 기르자 한다. 세상의 모든 건물과 자동차의 에어컨을 가동하면, 도시의 거리를 걸어 다니기 함들 정도로 뜨거워질 것이다. 만약 세상의 모든 작물을 실내에서 기르기를 성공한다면?
아마도 태양에너지를 포함한 엄청난 양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수탈하여, 자연은 피폐해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조화와 균형이며, 앞으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복원력' 일 것이다. 나는 '가뭄에 강한 벼 있나요?'라는 질문을 듣곤 한다. 뭐, 훌륭한 과학자는 5살 짜리도 알아듣게 설명하라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아니, 그런데 좋은 질문을 해 줘야 한다. 5살짜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늘의 구름이 흘리는 눈물이 비'라고 하는 편이 그 아이의 이해나 미래, 정서적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대답이 세상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5살짜리는 '균형, 조화, 복원'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5살짜리 소년은 배가 고프다 울겠지만, 실은 우리가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은 변을 배출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생명의 위협이다. 이 모든 것의 배경은 '균형', '조화'를 지향하는 각 요소의 '복원력'에 있다.
이미 그 개념은 대단하지도 않다. 'Resilience'라는 개념이 더 적합한 용어로 활용되고 있는지 한참이다. 어떤 위기에 잘 적응하느냐, 강하냐 하는 질문은 정확하지 않다.
더 좋은 두 개의 질문을 안내한다.
1. 견딜만하냐
2.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냐
어찌 보면, 이것은 기후위기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무지, 무심, 무치, 무례, 무성의.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또는 사회가 어떻게 스트레스에 대응할까.
위 두 질문을 던져본다. 기온이 올라간다. 식물들이 죽어간다. 용하게 변이를 일으킨 한 식물이 있다. 그 식물이 꽃가루를 암술만 살아남은 다른 식물들에게 나눠 준다. 그렇게 작물은 살아간다.